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국민정서법' 그만해야


우리나라는 전 세계 면세 시장 1위 국가다. 정체 위기의 출국장 면세점을 대신해 대규모의 시내 면세점이 '쇼핑 한국'의 독특한 경쟁력으로 자리 잡으면서 지난 2014년 기준 전 세계 12.3%의 점유율로 1위다. 하지만 이 같은 글로벌 1위는 어설픈 정부 정책 탓에 곧 맥없이 무너질 처지다. 연 매출 5,000억원의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이 특허 갱신에 실패하며 문을 닫게 된 까닭이다. 전년도에 관세청 허가를 받고 자리를 옮긴데다 올해 말 초고층 타워가 들어서면 2개 층을 더 연결해 세계 최대 면세점에 필적하는 규모로 확대할 예정이었지만 3,000억원의 투자비를 고스란히 날리게 됐다. 지난해 업계 최고인 27%의 성장률로 '유커 가뭄'의 벽을 '나 홀로' 뚫은 점도 무용지물이 됐음은 물론이다. 이에 비해 신규 면세점들은 아직도 명품 입점에 난항을 겪고 있고 중국인 단체 관광객을 확보하지 못한 채 속을 태우고 있다.

반면 중국은 우리나라를 모방해 하이난에 세계 최대의 시내 면세점을 지은 데 이어 최근 19개의 입국장 면세점을 승인하는 등 면세점 사업 키우기에 여념이 없다. 일본 역시 관광과 면세에 걸림돌이 될 만한 규제란 규제는 죄다 푸는가 하면 국내 면세 시장의 특장점을 본뜬 활성화 방안을 쏟아내는 등 유커 공략에 공을 들이고 있다.

왜 3국의 면세 산업에 대한 접근 방법이 이렇게도 다를까. 전문가들은 본질을 외면한 채 형식에만 치우쳐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즉 글로벌 면세 기업인 롯데의 특허권 상실은 평가점수 등 객관적 지표보다 보여주기에 치중한 국민 정서적 측면이 크게 작용한 결과라고 본다. 롯데가의 형제 싸움에 면세점 독과점 논란 등을 제외하고 수십 년간의 사업 노하우와 글로벌 경쟁력, 바잉 파워 등의 경제적 논리로 재단한다면 도출되기 어려운 결과라는 얘기다.

'국민정서법'의 위력은 이처럼 막강하다. 법 위에 국민 정서가 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각종 정책과 법리 판단에 깊숙이 개입한다. 홈쇼핑 업계는 지난해 '가짜 백수오' 사태가 터지자마자 대규모 환불 소동을 겪었다. 법적 책임은 없었지만 납품 업체 대신 책임을 묻는 여론에 떠밀려 눈물을 머금고 환불을 결정했다. 그러나 정작 납품 업체는 법원에서 고의성이 없다는 취지의 무죄 판결을 받았고 홈쇼핑 업체들은 손해배상조차 청구하지 못하고 수백억 원의 손실을 떠안아야 했다.

국민정서법은 국민감정을 호도하는 의도적 여론을 조성한다 해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 특히 문제다. 최근 애플은 테러 사건 수사를 위해 휴대폰 잠금장치를 해제하라는 미국 정부와 법원의 명령을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거부하면서 전 세계적 화두가 됐다. 만일 국내에서 성범죄·유괴 수사 등을 계기로 유사한 사건이 일어난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총선을 앞두고 경제·사회적 논지에서 벗어나 국민감정에 자극적으로 호소하는 정책이 여전히 쏟아지고 있다. 법리와 기본을 넘어서는 정책이 통례가 되지 않도록 국민이 먼저 달라져야 할 때다. /김희원 생활산업부 차장 heew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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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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