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에서는 인수합병이 침체된 국내 방송통신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혁신적인 변화를 통하여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만약 인수합병으로 그렇게 될 수 있다면 당연히 환영해야 하겠지만 이번 인수합병은 서비스 품질 개선, 혁신 또는 글로벌 경쟁력 확보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특히 합병당사자인 SK텔레콤은 지난해 12월에 개최된 인수합병 관련 기자설명회에서 “CJ헬로비전 가입자들에게 자사의 이동전화 결합상품을 권유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합병당사자조차 결합상품 마케팅에 초점을 두고 있을 뿐 혁신이나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위한 현실성 있는 구체적인 계획이 전무한 상태다.
더욱이 합병당사자가 밝힌 인수합병 이후의 투자계획 금액은 ‘5년간 5조원’이므로 SK 및 CJ헬로비전의 기존 개별 투자규모 합계액(연간 1조원)과 비교하면 인수합병에 따라 새롭게 증가되는 투자는 사실상 없다고 볼 수 있고, 인수합병으로 인하여 늘어날 가입자 기반까지 고려하면 오히려 투자가 줄어들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 합병당사자가 인수합병의 효과로 언급하고 있는 케이블TV 디지털전환, 기가인터넷, UHD 도입 등은 이전부터 이미 개별적으로 진행 중이거나 수년 전에 정부의 정책과제로 선정된 것이라 인수합병과 상관없이 진행해야만 하는 사업이기에 그 효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합병당사자가 스스로 밝힌 청사진이 이러하므로 이번 인수합병은 혁신이나 글로벌 경쟁력 확보와는 무관한 전형적인 내수시장 확대 목적으로 보인다. 즉, 경쟁에 뒤쳐진 기업이 기술이나 서비스 혁신 대신 막대한 자금력을 기반으로 한 인수합병을 통해 유료방송시장을 지배하려는 시도로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인수합병이 승인될 경우 방송통신시장에서 기술ㆍ서비스 혁신 경쟁이 아닌 결합상품 판매 경쟁만이 횡행할 것으로 우려되며 그 과정에서 결합상품을 구성할 능력이 부족한 케이블TV업체들은 도태될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규제기관들은 방송통신분야의 인수합병을 쉽사리 승인해 주지 않으며 최근까지도 경쟁제한적인 방송통신분야의 인수합병에 대해 단순한 산업논리에 치우치지 않고 경쟁제한 여부와 인위적 시장왜곡 가능성에 대해 일관된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AT&T와 T-mobile 사례와 같이 아예 금지하거나 AT&T와 DirecTV 사례와 같이 승인을 하더라도 경쟁제한적 요소를 불식시킬 수 있는 엄격한 조건을 부과하는 것이다.
인수합병을 계기로 진정한 혁신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나아가면 된다거나, 침체된 국내 방송통신 산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떤 주장의 진정성을 판단하려면 주장자의 과거 행적을 참고해야 한다. 합병당사자인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 인수합병 사례를 되돌아보면, 당시에도 혁신이나 글로벌 경쟁력 제고 등을 주장했지만 합병을 승인한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 대신 국내 이동통신시장의 5:3:2 점유율이 굳어지며 15년 가까운 기간 동안 1위 사업자의 지배적 지위만 공고해졌고 SK텔레콤은 이동통신시장 영업이익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1위 사업자의 절대적 점유율과 유지기간은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으로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시장점유율의 고착화에 따라 국내의 이동통신서비스는 혁신적 품질 경쟁 보다는 보조금 경쟁 위주로 흘러온 것이 사실이다. 합병당사자인 SK텔레콤은 인수합병 이전부터 이동통신시장에서의 가입자 기반을 바탕으로 SK브로드밴드의 IPTV나 초고속인터넷 결합판매, 이른바 ‘시장지배력 전이’에 주력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 결과 SK브로드밴드의 초고속인터넷은 최근 몇 년간 이례적인 속도로 판매량이 증가했다. 그러나 정작 서비스 품질은 90년대 수준이라는 점이 언론에서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다.
과거 사례를 고려한다면 이번 인수합병이 국내 방송통신 시장의 혁신과 글로벌 경쟁력을 제고할 것이라는 희망은 근거가 박약하다. 경쟁제한적인 인수합병으로 인해 방송통신시장이 왜곡되지 않도록 정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