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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무엇인가에 쉽게 묶이게 하는 연약한 존재다. 마음이 연약하기에 또한 묶임에서 벗어나기도 쉽지 않다. 그렇기에 인간은 고민에 묶이고 번뇌에 묶이고 미움에 묶이고 억울함에 묶이고 자존심에 묶이고 나쁜 감정에 묶이고 그것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증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것들은 좀처럼 인간의 마음을 놓아주지 않는다. 그뿐이겠는가. 식탐은 어떠한가. 건강 관리상 라면수프를 넣은 국물을 절제해야겠다고 생각했어도 그것이 뜻대로 되는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은 묶일 수 있는 수없이 많은 유혹을 매일 받는다. 성적인 문화가 창궐하는 세상에서 정욕의 유혹은 말할 것도 없다. 인간은 자신을 묶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특히 묶임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린 경험이 있는 사람은 더욱 그 묶임의 자리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게 된다. 그래서 라면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더라도 다시 마음을 잡고 절제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인간은 묶임의 상태에 있노라면 자유를 잃어버린다. 식탐에 묶임으로 건강을 잃어버리면 자유를 잃어버린 격이 된다. 마찬가지로 미움, 자존심, 두려움, 불안, 번뇌, 억울함, 나쁜 감정들의 묶임에서 풀려나지 못하면 마음도 결국 병을 앓는다. 이 세상에서 험악하고 불행한 사건들은 근본적으로 인간이 자신의 마음의 묶임을 풀어내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여러 가지 묶임의 상태들이 마음에 고착되면 성품으로 굳어져 고약한 사람이 되거나 고약함을 가리고 살려는 이중적인 사람이 된다. 나이가 든 어른이 고약한 사람이 된 것은 살아오면서 묶임을 풀어내지 못하고 그만 성품화되도록 방치해놓은 결과다. 우리 인간은 매 순간 묶임에서 풀려나는 훈련을 나날이 해야 한다. 묶임에서 풀려날 때 동시에 맛보는 것이 자유다. 자유를 찾고, 자유를 누리고, 자유를 찾아주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묶임에서 풀려날수록 자유는 더욱 커지고 자유는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시킨다.
민족 통일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통일은 남북의 묶임을 풀어내는 것이고 북한 사람들에게 자유를 누리게 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시켜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 회복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라고 성경적 표현에서 나왔다. 인간이 자유를 더욱 누리고 존엄성을 회복하는 과정은 새로운 창조의 과정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8:32)." 이 말씀은 진리가 묶임을 풀어주고 자유롭게 한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인간은 인간의 의지로 묶임을 풀어내지 못하는 것임을 담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타락한 본성을 지녔기에 스스로 묶임을 풀 수 없다. 그 묶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은 진리다. 이 성경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많은 인간이 묶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의지로 노력하다가 실패한 경우가 얼마나 많겠는가.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세상 또는 육신의 묶임에서 스스로 벗어나게 하려는 극단적인 행위를 자살이라고 표현한다.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육신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의지가 아니라 신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신이 주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기를 소망해본다. 신이 주는 자유를 누림을 맛본 사람은 이 세상에 묶임을 떠나 수도원에서 살기도 했고 세상에 묶임을 벗어나기 위해 금욕주의적인 삶을 살기도 했다. 우리는 이 세상의 한복판에 살면서도 수도원적인 삶, 금욕주의적인 삶을 추구한다면 보다 넓고 풍성한 자유를 누리게 되지 않겠는가.
하충엽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