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 위선의 나라 '헬조선 500년'

■ 두 얼굴의 조선사 (조윤민 지음, 글항아리 펴냄)

욕망 덩어리 선비… 무늬만 공명정대 과거제… '500년 조선' 지탱 원동력이자 걸림돌

조선 지배층 이중성·신분제도 신랄하게 비판

두얼굴의조선사_선비
두 얼굴의 조선사
과거급제
과거급제 모습. /사진제공=글항아리

"중국과 조선의 고위관료들은 철학자들이다. 이 나라에는 유럽과 같은 세습귀족이 없고, 배운 자들만이 귀한 대접을 받는다. 이는 구약의 위대한 예언자들조차 감히 하지 못했던 수준이다".

1685년에 출간된 '여러 가지 언설'에서 네덜란드의 인문학자 이사크 포시워스는 조선을 이렇게 평가했다.

500여년을 존속한 왕조. 세계 역사상 동일 지배계층에 기반을 둔 동일 혈통의 왕조국가가 이렇게 오래 지속된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조선왕조가 500여년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두 얼굴의 조선사'는 이 같은 물음에 대해 저자가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이 여정에서 저자는 이사크 포시워스의 시각과는 달리 조선 지배층에 대한 다른 초상을 그려냈다. 기개와 청렴의 선비가 아닌, 민생을 돌보는 꼬장꼬장한 경세가도 아닌, 군주를 보필하며 왕도를 드높이려는 사림관료도 아닌, 자신의 이익과 욕망에 충실한 지배자로서의 모습에 천착했다.

저자는 조선의 실상에 다가가기 위해 조선을 대표하는 신분제와 과거제도를 촘촘히 살폈다. 이를 통해 도덕정치로 위장한 계급정치의 나라 조선 지배층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조선 사회를 가장 폭넓게 특징지었으며, 다른 모든 제도와 문화의 기반이 된 것은 엄격한 신분제였다. 전체 인구의 10퍼센트 정도에 해당하는 양반은 관직 진출을 독점했고, 지주제를 성립시켜 대규모 토지를 소유하고 경제를 좌우했다.

부를 독점하고 교육과 이념의 수혜자이자 창출자로 군림하면서 자신들의 지배를 위해 효율적인 사상과 지식을 발전시켜나가는 한편, 군역 및 요역 등 각종 의무에서는 면제됐다.

저자는 특히 양반 중에서도 소수 권세 가문에 권력 집중이 극심해 인맥정치와 뇌물이 횡횡했다.

사대부의 지위를 자손에게 세습할 수 없었던 중국과 달리 조선은 최소 증손자 대까지 그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고, 조선 후기에는 조상 중에 고위관료가 있으면 후손 대대로 양반 행세를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뇌물비리는 관료사회의 관행과도 같았고, 백성이나 아랫사람이 관리의 부정을 고발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해 관료의 부정부패는 갈수록 극심해졌다. 평민의 수탈이 심해지자 서민은 축재를 포기하고 자처해 노비가 되기도 했다. 노비 전체 규모는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15세기에서 17세기 무렵엔 인구의 30~40%에 달했다.

공명정대한 인재 등용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과거제 역시 사실 응시 자격부터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다. 과거 응시 전에 응시자의 신분과 배경을 확인했으며, 조부·외조부, 증조부의 성명, 분관 거주지 관직을 기록해 제출해야 했다. 저자는 결과적으로 과거제를 통해 양반 중심의 신분질서가 흔들리는 일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조선의 마지막을 지켜본 중국의 량치차오는 "양반이라는 자들은 모두 높이 받들어지고 넉넉한 곳에 처하며, 교만하고 방탕하여 일하지 않고, 오직 벼슬하는 것을 유일한 직업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신분제와 과거제도는 조선을 500년 이상 버틸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조선을 500년 이상 지속시키지 못하게 한 결정적인 걸림돌이기도 했다.

저자는 "조선사회가 갖춘 제도와 관습의 그늘진 부분을 들춰냈고, 지배층의 위선과 이중성을 자주 짚어냈다"며 "지금 여기, 또한 다가올 날에는 과도한 욕망과 편중된 이익의 정치가 조금은 누그러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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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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