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꾸준한 R&D 지원, 기술혁신 마중물

세계시장 선도할 신기술 개발… 하루아침에 이뤄낼 수 없어

산업 전반서 성과 거두는 지금 더욱 인내하며 투자 지속해야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올해 2월11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2014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비율은 4.29%로, OECD 34개국 회원국과 주요 7개 신흥국 중 1위였다. R&D 투자총액 부문에서는 723억달러로 6위를 차지했다.

이같이 투자비율은 물론 절대 규모면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한 만큼 R&D 성과에 대한 국민적 요구도 더욱 커지고 있다. 매년 특허·논문 등의 계량화된 과학기술 성과로 R&D투자 성과를 조사하고 있지만 산업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돼 경제성장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충분히 드러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대한민국 R&D' 하면 항상 등장하는 쓴소리가 있다. 정부의 R&D 투자비율은 세계 최고인 반면 질적인 성과는 미흡하다는 비판이다. 혹자는 정부의 지원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비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부가 물을 부어온 항아리가 실은 밑 빠진 불량품이 아니라 깊고 커다란 항아리였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계시장을 선도할 신기술 개발은 단기간의 노력과 투자로 뚝딱 이룰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충분한 시간과 넉넉한 연구자금, 실패에서 비롯된 경험축적 등 세 박자가 고르게 맞물려야 한다. 정부의 지속적이고 꾸준한 R&D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미국·독일 등의 산업선진국들은 정부의 우직한 지원과 실패에서 얻은 경험 등 이른바 '축적의 힘'을 통해 오랜 시간 동안 항아리를 채워왔다. 우리나라 역시 정부주도로 R&D 역량을 꾸준히 축적해온 만큼 임계점을 넘어선다면 기술혁신에 한층 더 속도를 낼 수 있다.

이러한 사례를 한미약품의 행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한미약품은 면역질환치료제와 항암신약, 지속적 당뇨약프로젝트 등의 혁신기술을 해외 다국적 제약회사에 8조원 규모로 수출했다.

한미약품이 혁신신약을 개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부의 R&D 지원이 있다. 한미약품은 1993년부터 20년이 넘도록 정부 R&D 과제에 꾸준히 참여해왔다. 독성발견, 전임상시험, 특허, 제형 프로세서 정립 등의 경험을 축적하며 사업화 기반을 다졌고 마침내 암세포에만 특이적으로 작용하는 후보물질 개발에 성공했다.

동양에서 서식하는 대나무 모죽(毛竹)은 씨를 뿌린 후 아무리 물을 주고 가꿔도 싹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5년이 지나면 손가락만한 죽순이 돋아나고 하루에 80㎝씩 쑥쑥 자란다. 모죽이 늦게 싹을 틔웠음에도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이유는 5년 동안 땅속 깊이 뿌리 내렸기 때문이다.

R&D 역시 마찬가지다. 눈앞의 단기 성과에만 급급하다면 어떠한 기술이든 땅속 깊이 뿌리내릴 수 없다. 정부는 거시적 관점에서 투자방향을 정하고 기술개발이 사업화 단계로 이어져 세계무대에 설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이 발간한 '2013년 산업기술수준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와 미국과의 기술격차는 1.4년에 불과하며 미국 대비 기술 수준은 83.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LCD모듈·플렉시블디스플레이모듈·디스플레이SoC·메모리소자 등의 기술력은 세계 1위 수준이었다. 비단 한미약품 사례뿐만 아니라, 산업기술 전반에 걸쳐 R&D 투자의 성과가 싹을 틔워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발전은 하루아침에 이뤄낸 것이 아닌 꾸준한 노력과 지원의 결실이다. 산업부의 R&D 사업을 보더라도 1987년 소규모로 첫발을 내디딘 후 30년이 지난 오늘날 300배가 넘는 예산으로 확대됐고 이러한 지속적 투자가 기술력 향상의 영양분이 된 것이다.

깊고 커다란 항아리에 꾸준하고 성실하게 물을 붓는 정부의 노력이 있는 한, 머지않아 대한민국 R&D 항아리는 화수분처럼 눈부신 기술들로 차고 넘치게 될 것이다.

성시헌 산업기술평가관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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