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일본의 에디슨


1970년대 초등학교에 다닌 사람에게 문방구 진열대에 있던 샤프펜슬은 말 그대로 경이였다. 연필깎이도 구하기 어렵던 시절 깎을 필요가 없이 딸깍딸깍 꼭지를 누를 때마다 연필심이 나오는 샤프펜슬은 꿈에서라도 써보고 싶은 필기도구였다. 지금은 없지만 당시에는 샤프펜슬 꼭지 뚜껑을 뽑으면 지우개가 있고 지우개 반대쪽에는 연필심 통로가 막힐 때 쓰는 얇은 철심이 붙어 있었다. 철심으로 부러진 연필심을 밀어 빼낼 때는 첨단기기 사용자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필기도구로는 혁명에 가까운 샤프펜슬을 만든 사람이 전자기업 샤프의 창업자 하야카와 도쿠지다. 그의 학력이 초등학교 1학년을 다닌 게 전부일 정도로 불운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지만 입지전적인 인물이 대개 그러하듯 강인한 의지로 삶을 개척해나갔다.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처자식을 모두 잃고 공장도 화재로 탔으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샤프펜슬의 특허권을 판 돈으로 재기에 나섰다. 일본에 들어온 미제 라디오를 본 순간 대박을 예상하고 연구에 몰두해 1925년 일본 최초로 라디오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후 1951년 일본 최초의 TV, 1962년 일본 최초의 전자레인지를 개발하고 1966년 세계 최초로 집적회로 기반의 전자계산기를 발명해 '일본의 에디슨'으로 불렸다.

그가 내세운 경영 이념은 '다른 회사가 모방하고 싶은 제품을 만들어라'였다. 다른 회사가 로열티를 내고 특허 기술을 받아가고 싶은 제품을 만들라는 것으로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독창적인 기술과 제품에 대한 그의 열망이 담겨 있다.

액정 TV의 세계적 강자로 군림하던 샤프가 끝내 재기하지 못하고 창업한 지 104년 만에 대만 기업에 인수되자 일본 열도가 충격에 빠졌다. 샤프가 몰락한 이유 중에는 자사 기술에 대한 과신도 거론되고 있다. 100년을 지탱하게 해준 경영이념도 한 발짝만 잘못 나가면 회사를 절벽으로 내모는 부메랑이 되는 것을 보니 전쟁보다 치열한 기업의 생존 현실이 냉혹하기만 하다.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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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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