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이재우 보고펀드 대표 겸 사모펀드協회장

원샷법 통과됐지만 '문어발' 확장 편견에 주체세력 안보여

삼성만 주력-비주력 구분 선제적 재편...대다수 기업 회피

해외 ETF 재조합해 연7~8% 중수익 상품 라인업 개발중







“구조조정이 경제의 화두가 됐지만 기업 인수·합병(M&A)에 대해 정치·사회적으로 부정적 분위기가 일어나니 대기업이 M&A에 나서지 않고 있어 너무 아쉽습니다. 경영환경은 불투명하고 주식시장도 침체한 상황인데 경제민주화 이슈까지 기업의 발목을 잡으니 M&A를 검토했다가도 접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대기업도 주력과 비주력 사업을 구분해 돈을 벌고 있더라도 비주력 부문으로 판단되면 과감히 계열사를 정리해 나가야 합니다.”

이재우(58·사진) 보고펀드자산운용(이하 보고펀드) 대표이사 겸 사모펀드운용사협의회 회장은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에 국내 M&A 시장에서 대기업들이 ‘야성적 충동’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이같이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했다. 이 대표는 사모펀드(PEF)와 대기업이 M&A 시장에서 서로 경쟁하고 보완하는 관계를 형성해야 시장 전체의 파이도 커지는데 대기업의 기업 인수를 단순히 과거의 ‘문어 발 확장’으로만 바라보고 비판하는 정치권과 일부 여론 탓에 M&A 시장이 활성화하지 못하고 구조조정도 제때 이뤄지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더구나 원샷 법도 통과돼 제도적 측면의 M&A 활성화 기반도 마련돼 아쉬움이 더 크다. 지난 2005년 국내 첫 토종 사모펀드인 보고펀드를 설립한 후 10년 넘게 국내 M&A 시장에서 활동하며 한국 사모펀드의 대부로 통하는 이 대표는 인터뷰 내내 국내 자본시장이 직면한 문제점과 개선 방향에 대해 거침 없이 이야기를 풀어냈다. 정부의 금융개혁을 적극 응원하면서도 따끔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대담=손철 증권부 차장 runiron@sed.co.kr




올해 국내 M&A 시장 규모는 사상 최대를 기록한 지난해 77조원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들이 불확실한 경기와 높아진 재고 부담 등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에 대한 갈망이 커진데다 보유현금도 풍부해 M&A를 통해 성장을 모색할 가능성은 곳곳에 널려 있다. 경기부진 속에 한계 상황에 처한 기업들도 늘어나 예상 매각가가 1조원을 넘는 대어급 매물도 수두룩한 실정이다.

이 대표는 이처럼 국내 M&A 시장이 활성화할 조건을 갖췄지만 이를 능동적으로 주도해야 할 주체가 보이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PEF 업계의 수장인 그는 “PEF가 출범한 지 10여년이 지나면서 기업 경영권까지 사고파는 딜들이 많이 늘어나며 M&A 시장 확대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기업의 M&A 참여가 위축돼 시장 전체로는 활기가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PEF들이 10여년간 활동하면서 MBK파트너스, 한앤컴퍼니, IMM PE 같은 대형사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여전히 조(兆) 단위의 M&A를 해낼 수 있는 PEF는 한두 곳에 그치는 실정”이라며 “PEF가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고 혁신하는 산업 구조조정 역할을 하기에는 아직 규모와 운용경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그는 대기업들이 M&A 시장에 적극 나서줘야 하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에 답답해했다. 대기업 간 M&A를 경제력 집중으로만 바라보는 편견을 가장 대표적 장애물로 꼽았다. 그는 “2014년 삼성과 한화그룹 간 방산 부문, 2015년 삼성과 롯데그룹 간 화학 부문 빅딜 등에서 보듯이 대기업 간 M&A는 주력과 비주력 사업을 분명히 하면서 기업뿐 아니라 경제 전반에 변화와 혁신을 가져오는 유용한 도구”라며 “하지만 일부 정치권이나 시민단체들이 M&A를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수단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가뜩이나 경영환경이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기업들은 경제민주화 이슈가 부담이 되면 시너지가 있는 기업 인수 카드도 결국 포기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SK텔레콤이 통신·미디어 사업 강화를 위해 CJ헬로비전을 인수하고도 업계와 일부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을 받고 있는 것이 한 예다. 이 대표는 “투자자금을 회수하는 한 방편이 되는 주식시장이 수년간 박스권에 머물고 있는 점도 기업 간 활발한 M&A를 막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대기업들을 향해 선제적인 사업재편 노력을 강하게 주문했다. 이 대표는 “구조조정은 주력과 비주력 사업을 판단해 추진해야지 현재 단순히 수익을 내고 있는 것에 안주하며 뒷전으로 밀어놓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기업들이 장사가 좀 되거나 돈을 벌고 있는 사업이라면 그냥 두고 돈을 벌지 못하거나 안 되는 사업만 정리하려고 한다”면서 “하지만 그런 안 되는 사업은 M&A 시장에 나와도 사갈 곳이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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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지금 국내에서는 사실상 삼성그룹만이 주력과 비주력을 구분해 선제적 사업재편을 하고 있다”며 “미래를 내다보는 사업재편은 뼈를 깎는 아픔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일을 대다수 기업이 머뭇거리거나 회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한 때 트리플A 신용등급에 15%대의 자기자본수익률(ROE)을 기록한 제너럴일렉트릭(GE)이 선택과 집중을 위해 돈 되는 사업도 매각에 나서는 것처럼 우리 기업들도 주력 사업은 강화하고 비주력 사업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다른 기업에 파는 식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글·아마존·애플·테슬라 같은 글로벌 1등 기업을 보면 가야 할 방향은 분명해진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국내 PEF 중 처음으로 헤지펀드로 등록한 보고펀드의 향후 방향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국내 PEF 시장이 10년째를 맞았지만 운용사들은 갈수록 투자처 발굴에서 한계를 느끼는 모습”이라며 “국내를 넘어 다양한 글로벌 대체투자(AI)에서 투자 기회를 개척하는 데 일조하기 위해 전방위 투자가 가능한 헤지펀드 운용을 추가했다”고 말했다. 그는 헤지펀드와 부동산·인프라에서 실력을 검증받은 17명의 전문인력을 확보해 팀을 꾸렸다. 정보기술(IT) 시스템 등 운용기반도 마련했다.

그는 “헤지펀드의 경우 해외에 유동성이 풍부하고 운용능력이 검증된 상장지수펀드(ETF)들을 재조합해 변동성은 줄이고 연 7~8% 이상의 중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 라인업을 개발하고 있다”며 “우선 수백억원 규모로 파일럿 운용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보고펀드의 해외투자 전략은 처음 식당을 열어 손님(투자자)에게 음식 맛을 선전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슐랭 별 등급을 받은 식당의 최고 음식을 확보해 이를 재판매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부동산 투자의 첫 길은 안정적 현금 흐름 창출이 가능한 미국·유럽 지역의 부동산 대출펀드를 국내 기관투자가들에 소개하는 방안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0월에 개정된 자본시장법에 따라 PEF의 설립이 쉬워지고 다양한 부문에 투자할 수 있는 등 운용의 폭이 넓어진 데 대해 이 대표는 “규제 완화가 크게 진일보해 자산운용업 발전과 국민 재산 늘리기에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계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 PEF 규제 완화가 특히 빛을 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대표는 “진입장벽이 많이 낮아졌지만 일반 자산운용사에 적용되는 운용 요건들이 PEF에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가 있는데 앞으로 PEF의 특성을 보며 보완했으면 한다”며 “대형 PEF가 계속 나오려면 외국 자본이 국내 운용사를 통해 투자할 때와 해외 운용사를 통해 투자할 때 다르게 적용되는 규제도 개선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리=서민우기자 ingaghi@sed.co.kr

사진=이호재기자

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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