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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기불황, 북한발 지정학적 리스크 등의 여파로 우리 기업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 상황이 근 7년 만에 가장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성장세 둔화로 수출 기업의 근심이 커진 것은 물론 국내 소비마저 감소하면서 내수기업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29일 발표한 '2016년 2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및 경제심리지수(ESI)'에 따르면 2월 제조업의 업황 BSI는 63으로 1월보다 2포인트 떨어졌다. 이는 지난해 11월 68을 기록한 후 4개월 연속 하락한 것으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가 불거진 지난해 6월보다 3포인트 낮은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 56을 기록한 후 6년 11개월 만에 최저치일 만큼 우리 경제를 둘러싼 환경이 심상치 않음을 보여준다. BSI는 기업이 느끼는 경기 상황을 지수화한 것으로 100을 기준으로 수치가 높으면 경기를 좋게 보는 기업이 많고 낮으면 경기를 나쁘게 보는 기업이 많다는 뜻이다.
당장 수출기업들의 체감경기가 뚝 떨어졌다. 제조업 중 수출기업의 2월 BSI는 61로 1월보다 6포인트나 감소하며 2009년 3월 이후 가장 악화됐다. 업종별로는 자동차가 73으로 한 달 새 3포인트 떨어졌고 △섬유 49 △석유정제·코크스 52 △금속가공 58 등도 업종 BSI가 낮았다. 올 들어 원·달러 환율이 오름세를 나타내며 가격 측면에서 수출 기업에 유리한 상황이지만 글로벌 경기 둔화의 부정적 영향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지난 1월 수출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18.8% 급감해 원화 약세의 긍정적 효과가 묻혔다는 게 중론이다.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가 더 나빴다. 대기업의 2월 BSI는 68로 1월 대비 1포인트 하락한 반면 중소기업은 60에서 54로 6포인트나 떨어져 2009년 3월 이후 가장 낮았다.
수출시장이 단기간에 개선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부진한 내수마저도 기업실적을 짓누르고 있다. 내수기업이 대부분인 비제조업의 업황 BSI는 전월 대비 4포인트 하락한 64를 기록, 2009년 3월(60) 이후 가장 낮았다.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강화의 영향으로 주택거래량이 줄어들면서 건설업의 업황 BSI도 59로 1월(72)보다 13포인트 급락했고 부동산·임대업(70)도 5포인트 떨어졌다.
제조업체들의 가장 큰 경영 애로사항으로는 '내수부진(24%)'이 꼽혔다. 그 뒤를 이어 △불확실한 경제상황 23.1% △경쟁심화 10.2% △수출부진 10.1% △환율 7.5% △자금부족 5.7% 등도 경영난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저유가 심화 등으로 신흥국 경제가 흔들리면서 수출이 잘 되지 않고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따른 불안심리 등으로 우리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구조조정 등의 여파로 민간소비도 부진하면서 기업들이 비빌 언덕이 없어진 것 같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