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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이 100개가 넘는 비금융자회사 중 벤처기업 매각에 속도를 내기 위해 이를 세컨더리펀드에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세컨더리펀드는 펀드 만기나 조기청산을 앞두고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해 자금난을 겪는 사모펀드(PEF)나 벤처캐피털 등 창업투자자들이 보유한 벤처기업의 주식을 사들이는 펀드다.
산은이 자회사 매각을 위해 출자관리위원회를 발족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시장 형편상 인수 희망자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나온 대안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가 주도하는 세컨더리펀드가 많다는 점을 들어 이럴 경우 단순히 산은의 자회사 개수 줄이기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6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116개 비금융자회사 중 벤처기업을 매각 우선순위로 잡고 이들을 세컨더리펀드 등에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벤처기업 매각 방식을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에 국한할 경우 시장가치가 큰 회사만 매각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세컨더리펀드를 이용하면 대상을 넓힐 수 있어 자회사 매각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판단이다.
IPO나 M&A의 경우 성장잠재력만을 보고 투자한 벤처기업이 소위 말하는 대박이 터졌을 때 매각이 가능하지만 세컨더리펀드를 활용하면 시장가치가 극대화되지 않은 업체들도 이 펀드가 잠재력을 보고 인수할 수 있기 때문에 매각 대상이 확대된다. 산은의 한 관계자는 "IPO나 M&A가 벤처기업을 발목에서 사서 머리에서 파는 방법이라면 세컨더리펀드는 발목에 산 기업을 허리쯤에서 팔 수 있어 그만큼 매각 대상이 넓어진다"고 설명했다.
세컨더리펀드가 투자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점도 이 펀드로의 매각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벤처펀드는 지난해 2조858억원을 총 1,045개 벤처기업에 투자했다. 지난 2011년 613개 업체에 1조2,608억원을 투자했던 것과 비교하면 두 배가량 늘어난 셈이다.
다만 정부 주도의 벤처펀드가 상당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이를 활용할 경우 산은의 자회사 매각이 단순히 개수를 줄이기 위함이라는 우려도 나올 수 있다. 금융당국에서 산은의 자회사 매각을 강조하면서 산은 소유의 벤처기업을 정부 주도의 벤처펀드에 매각한다면 사실상 오른쪽 주머니에 있는 돌을 왼쪽 주머니에 넣는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 주도의 세컨더리펀드 등을 이용하면 사실상 산은 관리하에 있던 것을 정부 주도로 옮기는 효과밖에 기대할 수 없어 진정한 매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금융위가 밝힌 매각 대상은 산은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지분을 보유한 기업 중 정상화된 5개, 공동관리 진행 중인 11개, 벤처 100개 기업이다. 벤처기업 외에도 한국항공우주산업(KAI)·한국GM·대우조선·아진피앤피·원일티엔아이 등 산은이 출자전환 과정에서 지분을 보유했다가 정상이 된 기업 5곳도 개별기업 상황상 당장 매각은 어렵다는 게 업계의 전반적인 평가다. 먼저 매각할 자회사로 꼽히는 KAI의 경우 얼마 전 한화와 두산의 지분매각으로 난항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대우조선해양 역시 매각을 위한 정상화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여 정상화 기업 매각도 난항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