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김종인 등판론





일본 12세기 초, 가마쿠라 막부라는 최초의 무사 정권이 출범한지 얼마 안돼서의 일이다. 일본 최초로 북쪽에서 남쪽의 규슈에 이르기까지 단일 정권을 수립한 쇼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는 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의 정부가 수많은 사람들의 피에 의해 수립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친동생 요시츠네를 죽음으로 몰아 넣었으며, 상대편과 자신의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일족들을 전부 숙청한 인물이었다. 이토록 비정한 모습을 지닌 지도자였으니, 많은 이들의 원망을 사고 힘들어 한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요리토모에게 가장 큰 부채는 자신의 ‘킹메이커’이자 장인 호조 도키마사(北條時政)와 부인 마사코(政子)였다. 그들은 요리토모에게 존재의 이유이자 채권자였다. 아버지 대부터 반역자로 몰려 가마쿠라로 쫓겨 가 유배인이었던 시절, 요리토모를 먹여 살리고 입혀 준 사람들이 장인 도키마사와 부인 마사코였다. 과감하게 군사를 일으켜 정권을 전복해 보겠다고 했을 때에도 말없이 뒤따라준 두 사람이었다. 피를 부르는 전란 이후 사태를 수습하는 데 노력한 것도 처가 사람들이었다. 언제나 뒤가 시큰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에게 빚을 진 채 자립할 수 없는 권력자는 제 아무리 카리스마가 있어도 약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심각한 피로에 시달리던 요리토모는 결국 시찰을 나갔다가 말에서 떨어져 크게 다친 후 앓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어처구니 없는 급사(急死)였으나, 예정된 운명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몇 안 되는 요리토모의 아들들이 모두 통치자로서 결격 사유를 보였다. 첫째 아들은 지나치게 반항적이라는 이유로 외가에 의해 권좌에서 끌어내졌다. 둘째 아들은 어머니 마사코의 추인으로 가까스로 옹립되었으나 할머니와 삼촌에게 앙심을 품은 조카에 의해 암살됐다. 결국 가마쿠라 막부는 2대 만에 대가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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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실권을 장악한 어머니 마사코는 미나모토노 가문에 의한 통치를 유지하지 않고, 외척인 자기 친정이 권력의 전면에 나서는 변형된 통치를 시작했다. ‘킹메이커’가 ‘킹’이 된, 일본 역사 최초이자 최후의 사건이기도 했다. 호조 가문이 지배하는 130년 동안 암살 사건과 반란이 끊이지 않았다. 애당초 리더가 아니라 배후 실권 세력에 불과했고, 기존 권력자와 차별화된 통치 철학을 제시하는 데에도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저 무주공산(無主空山) 상태에서 힘을 쓰는 지배자들은 잠재적 타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웃 나라 역사를 읽으며 나는 제대로 된 대권주자를 찾지 못하고 있는 우리 정치를 생각했다. 여당이야 ‘웃전’에 의해 누군가 내정되었다는 설이 분분하지만, 야당은 그에 대적할 만한 경쟁자조차 찾지 못한 상황이다. 이 와중에 김종인 박사가 더불어민주당의 ‘구원자’로 등장해 전광석화(電光石火)같은 경영을 펼치고 있다. 서슬 퍼런 친문 세력의 눈치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공천과 자기 스타일의 노출이 인상적이다. ‘야권통합’이라는 진부해 보이는 주제를 들고 나섰지만 어쨌든 연일 이슈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고 주도해 나가고 있다. 그가 ‘킹메이커’ 역할 또는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은 지 오래다. 언론에서도 김종인 씨가 단순히 킹메이커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권좌에 앉을 가능성을 조심스레 점치는 모양새다. 그 형태가 대권주자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성과가 긍정적이라면 김 대표의 집권도 무시 못할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경험이 많은 원로 정치인이다. 다만, 장차 ‘킹’이 될 지모를 그에게 감히 한 가지 당부하고 싶다. 역사 속에서 배후(背後)의 존재가 전면(前面)으로 드러났을 때 그의 존재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경우는 별로 많지 않았다고 말이다. 김종인은 지금까지 전략가로 알려져 있었고, 경제민주화 브랜드로 유명했지만, 그 나름대로의 ‘정치’가 구체적으로 어떤지는 상세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어떤 구도로 누가 대권주자의 반열에 오를지는 안갯속이지만 한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은 최종 평가자가 국민이라는 점이다. 우리 모두가 납득할 만한 김종인 판(版) 한국 정치는 무엇인지 스스로 비전을 밝혀줄 때다.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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