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2.3세는 승계 꺼리고 M&A도 원활치 않아... 중기 곳곳 CEO 리스크

창업주 1인 경영 관행과 지원중심 정책이 잉태한 부작용

허리세대 공백으로 CEO 인력풀 협소

전문CEO 풀 마련하고 창업환경 개선해 허리세대 구축해야

국내 1위 골판지 제조사인 태림포장은 지난해 5월 사모펀드인 IMM PE에 경영권을 매각했다. 상속을 하자니 갖고 있는 현금으로는 세금을 내기가 어려웠다. 상속세를 내기 위해 지분 일부를 정리하면 기업가치가 하락할 것이 뻔했다. 결국 태림포장은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사모펀드에 기업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중견 건설사인 요진건설도 사정은 비슷하다. 재작년 말 요진건설 대주주가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했다. 유족들은 상속세를 내기 위해 시장에 지분을 내놨고 사모펀드인 LK투자파트너스가 이를 사들여 2대 주주로 올라섰다.

만약 태림포장과 요진건설의 후계구도가 명확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상속세 폭탄을 맞기 전에 가업승계에 대한 장기적 밑그림을 그려놓았다면 경영권을 매각할 일도, 대주주 변경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 같은 사례는 중소기업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장면이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CEO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태림포장과 요진기업의 지분구조 변화는 창업주의 고령화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중소기업 CEO 고령화 현상에 대한 문제제기는 별로 없었다. ‘중소기업은 가업이다’란 인식이 낳은 잘못된 결과다.

CEO 1인의 존재가 어느 곳보다 중요한 곳이 바로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시스템 구축이 미흡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나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처럼 급작스런 CEO 공백이 기업경영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장은 “나중에 후계자 문제가 상당히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가족을 포함해 내부직원이나 전문 CEO 중에서 후계구도를 부드럽게 연결시켜주는 제도적 보완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창업주 1인경영·지원중심의 중기정책이 잉태한 CEO 고령화= 중소기업 CEO들이 늙어가는 원인을 알기 위해선 국내 중소기업 역사와 특성을 살펴봐야 한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1970~80년대 고도성장 구간에 집중적으로 태동했다. 당시 창업자의 나이를 30대로 가정했을 때 가업경영을 해온 시간은 35~45년 정도다. 국내 중소기업은 CEO 1인 중심의 경영이 내재화돼 있어 국내 중소기업 중 CEO 승계 프로그램을 갖춘 곳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60~70대 고령인데도 창업주가 아직까지 현직에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이 지원 위주로 이뤄져 온 점도 이 같은 현상을 부채질한다. 중소기업은 약자라는 프레임에 익숙하다 보니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못했다. 그 결과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다수 양산됐다. 시장논리에 의해 구조조정이 일상화됐다면 역량 있는 CEO가 등장했겠지만 가능성조차 원천봉쇄 당한 것이다.

여기에 1990년대 중반 IT 버블이 꽃도 피우기 전에 시들면서 허리세대 역할을 해줘야 할 60년대 출생자들이 드물다. 여기에다 상속세 부담이 크다 보니 가업승계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신동화 IBK경제연구소 박사는 “대다수 중소기업 창업주들이 고도성장 구간을 거치면서 경영권 승계에 신경을 쓸 틈이 거의 없었다”며 “상속을 통해서라도 가업승계를 해야 하지만 현금을 보유한 중소기업이 많지 않아 상속을 위해 지분을 정리하면 경영권을 잃게 돼 경영권 승계를 제 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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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세대 공백은 CEO 리스크로 이어져= CEO 고령화와 허리세대 공백은 중소기업 전반에 CEO 리스크를 낳고 있다. 적절한 시점에 경영권 승계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급작스런 CEO 공백은 CEO 리스크로 확대돼 안정적 경영을 위협할 수밖에 없다.

고령화된 CEO들이 자리를 물려주기로 결정했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내부에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이란 것이 없어서 적임자를 찾기가 마땅치 않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선택하는 가업승계의 경우 이를 원치 않는 2, 3세들이 많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회사를 키우는 동안 아버지가 고생한 모습을 지켜봐서 인지 가업을 물려받지 않으려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승계를 고려한다 해도 장인정신과 가업의식이 강한 일본과 달리 국내 중소기업 2, 3세들은 주력사업 전환을 고려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산업에 허리세대가 부실해 CEO 인력풀 자체가 협소하다는 점도 문제다. 중소기업의 30세 이상 50세 미만 CEO 비중은 지난 2008년 53.4%에서 2014년 말 현재 32.8%로 20%포인트 넘게 줄었다.

◇선진 CEO시스템 도입 등 필요= 현재 국내 중소기업은 수출 확대라는 시대적 사명을 안고 있다. 수출중심으로 전환을 위해서는 경영의 기동성과 유연성, 글로벌 감각이 중요하다. 고령화된 CEO들은 아무래도 경영관이 보수적일 수밖에 없고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기를 꺼린다.

중소기업 전반의 CEO 고령화와 허리세대 부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전문경영인 풀 확대와 창업환경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동화 IBK경제연구소 박사는 “미국은 제일 똑똑한 이들이 창업을 하는데 우리나라는 똑똑할수록 공무원, 대기업 등으로 향한다”며 “창업에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는 식으로 제도를 보완해 청년창업을 유도해야 중소기업 CEO 고령화 현상을 극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후계자도 없고 전문 경영인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M&A마저도 원활하지 않다면 결국 폐업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이는 일자리 감소로 연결된다. 조성주 카이스트 경영학부 교수는 “CEO의 노화는 기업가정신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기업가정신이 적극적이지 않다면 성장보다 안정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들 개연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해욱기자 강광우기자spooky@sed.co.kr

박해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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