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행복해서 미안해





안녕 내 사랑 우리 봄날에 추운 겨울이 또 왔지만/여기까지인가봐 정말 슬퍼도 떠나줘/지금 난 행복해 행복한 만큼 미안해/이제는 나를 잊고 좋은 사람 만나 - ‘다비치, 행복해서 미안해’

연예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지인이 얼마 전 유행가 한 곡을 이야기하면서 지금의 시국에 딱 알맞은 구절인 것 같다는 메신저 내용을 보내줬다. 절묘한 비유에 박장대소가 터졌지만 어딘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한참 패권 공천으로 내홍을 앓고 있는 새누리당 안팎의 상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한구 표 공천 개혁의 칼날은 박근혜 대통령을 별로 사랑하지 않았던 비박계 의원들에게만 겨누어진 게 아니다. ‘원조 친박’과 ‘신박’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에게도 요즘 말로 ‘답정너(답은 정해졌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돼)’ 이별이 선포됐다. 요즘 20대들끼리는 그런 결별이 잦다. 오래 사귄 연인이 별안간 모바일 메신저로 ‘우리 헤어져’라는 말을 남기고 잠적하는 것처럼. 맥락을 이해하고는 있지만 ‘이럴 수가 있나’ 싶은 당사자들은 분노했다.


가장 가슴이 아팠던 사람 중 하나가 진영 의원이다. 그는 박근혜 정부의 창업공신이다. 박 대통령이 당 내 비주류였을 당시 함께 비를 맞았던 사이이기도 하다. 그러나 진 의원은 현 정부 출범의 영광을 제대로 맛보기도 전에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던졌다. 대선 때 기초연금 공약을 해놓고 대통령과 측근들이 사수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것을 가리켜 세간에서는 ‘항명 파동’이라고 했지만, 당사자도 할 말이 있을 것임에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는 공천 탈락 소식이 나오자 마자 탈당을 했고, 전혀 반대편인 더불어민주당 입당 예상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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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발언으로 인해 사실상 정치적으로 공개처형을 당하다시피 한 유승민 의원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 해 원내대표 직을 그만두게 된 맥락에서 지금도 벗어나지 못하다. 친박계 핵심 인사들은 유 의원이 ‘당 정체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나가라고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유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 못지 않게 새누리당에 대한 충성도가 강했던 사람이고, 한나라당 당시 여의도연구원장과 두 번의 대선을 거치면서 중량급 있는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물론 지금의 새누리당과 과거의 한나라당은 엄연히 다른 정당이라는 어느 전문가의 분석에 의하면, 유 의원은 화학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했던 사람 중 하나가 이제는 ‘알아서 결단하라’와 같은 정치적 자결을 강요받고 있는 것을 보면, 어딘가 잘못되고 있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연인 관계가 그렇듯 정치적인 주군과 수하의 관계도 언제나 좋을 수만은 없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 이한구 공관위원장을 비롯한 일부 세력은 박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이별하는 이들이 그를 그리워 할만한 여지조차 주지 않고 과감한 숙청을 감행하고 있다. 진영 의원은 탈당의 변을 말하며 ‘어디서 어떻게 일하든 박근혜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기도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연애를 많이 해본 사람들이라면 잘 알 것이다. 이것은 절절한 진심고백이라기보다는 ‘이제 나는 헤어져서 행복하다’는 표현에 가깝다. 대통령 주변 사람들은 이것을 알아야 한다. ‘행복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새누리당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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