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임종건의 쿠바 경제 기행] 상

물 새고 문고리 망가지고… 열악한 호텔에 '쿠바경제 민낯' 그대로

오바마 묵을 쿠바 최고 호텔

엘리베이터 버튼 불 안들어와

다른 호텔도 외양 화려하지만

세면대 막혀 샤워기로 세수도

쿠바는 최근 한국 여행객들이 새롭게 주목하는 관광지다. 2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야 하는 지구 반대편의 나라이고 더욱이 한국과 수교도 하지 않은 나라다. 그럼에도 지난해 이 나라를 찾은 한국 관광객은 7,500명이나 됐다. 전년도의 5,000명에서 50%가 늘었다. 올해는 1만명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인들에게 쿠바는 특산품 시가와 럼주,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무대,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공산혁명, 미소 냉전체제 시절의 쿠바사태 등으로 알려진 곳. 근년 들어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라는 다큐멘터리 음악영화를 통해서 한층 더 유명해졌다.


지난 2014년 53년 만에 미국과 국교를 재개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1일 미국 대통령으로는 88년 만에 처음으로 쿠바를 방문하고 뒤이어 25일에는 영국 출신 록 가수 믹 재거가 아바나에서 공연할 예정이라는 뉴스가 세계인의 눈길을 끌고 있다.

필자가 쿠바를 여행지로 택한 것은 순전히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영화 때문이었다. 그 영화를 봤을 때 쿠바 음악의 특이한 선율도 매혹적이었지만 그 음악을 만드는 가수와 연주가들의 자유로운 영혼이 어디에서 연유했는지가 궁금해졌다.

50년 넘게 공산당 일당독재 국가였으면서도 요한바오로 2세 이후 모든 교황이 방문한 나라, 국민의 50%가 가톨릭 신자이고 모든 공동묘지의 묘소를 십자가로 장식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정치·문화· 종교적으로 많은 신비를 간직한 나라였지만 경제적으로는 신비를 깨는 엄혹한 현실이 도사리고 있었다.

호텔은 그 나라의 얼굴이다. 내가 묵었던 5개 호텔에서 쿠바의 민낯을 보았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환락의 도시’였던 수도 아바나 호텔들의 외양은 화려했지만 어딘가는 새고 어딘가는 막혀 통제경제의 비효율 전형을 보여주고 있었다.

첫날 숙소는 아바나의 나쇼날데쿠바 호텔이었다. 1930년대에 지어진 유서 깊은 호텔로 쿠바의 영빈관 격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 방문 때 묵을 예정이라고 했다. 노란 대리석 건물과 창밖으로 펼쳐진 대서양의 검푸른 바다가 조화를 이룬다.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서 나오는 멋진 해안도로 ‘말레카’가 한눈에 들어온다.

엘리베이터 작동 여부를 알려주는 것이 버튼을 누르면 들어오는 불이다. 이 호텔의 엘리베이터 버튼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방이 2층에 있어 비상계단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더 황당한 모습이 기다리고 있다. 출입문 손잡이가 있어야 할 곳에는 큰 구멍만 나 있다. 망가져 빠진 문고리를 갈아 끼우지 않은 탓이다.


화장실 휴지걸이에 있어야 할 휴지가 세면대에 놓여 있었다. 휴지걸이는 있었으나 두루마리를 걸 고리가 망가졌기 때문이었다. 일행이 묵었던 다섯 곳의 호텔 중 휴지가 제대로 걸린 호텔은 하나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도착하던 날 아바나의 호세마르티 국제공항 화장실의 변기도 부서진 채 담배꽁초가 수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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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실의 분수꼭지가 떨어져 나가 쇠파이프에서 흘러내리는 물로 샤워를 했고 샤워실 수도꼭지가 줄줄 새는 소리로 잠을 설쳤다. 세면대의 물이 안 빠져 샤워기로 세수를 해야 했다. 변기에 녹물이 핏물처럼 묻어 있는 호텔, 침대 시트는 전날 것을 펴서 다시 사용하고 탁자 위에는 먼지가 수북한 걸로 미뤄봐 하우스키핑이 건성인 게 분명했다. 둘이 쓰는 방에 샤워용 대형 타월 두 장만 걸려 있기도 했다. 어느 호텔에도 실내 슬리퍼가 없었고 반면 희한하게도 모든 호텔의 세면장에 돋보기 거울이 걸려 있었다.

정덕래 KOTRA 아바나무역관장은 쿠바의 열악한 관광 인프라와 관련해 물자부족이 일차 원인일 것이라고 했다. 재정고갈로 대부분이 수입품인 부품을 사올 수 없다는 것이다.

호텔이나 관광지의 기념품 가게는 물론 거리의 포스터, 건물 벽에는 체 게바라 상품이 넘쳐났다. 카스트로 선전물은 게바라에 비하면 미미했다. 반면 제대로 된 관광안내물은 없었다. 기껏 있다는 것이 신문지 크기의 조악한 지도였는데 한 장에 3유로(약 4,000원)를 받았다.

쿠바를 찾는 관광객은 지난해 기준으로 300만명 수준. 관광수입은 해외 교민의 송금액과 함께 이 나라 최대 수입원으로 각각 연간 25억달러 규모다. 쿠바의 최대 수출품인 설탕 수출액보다 많다.

미국과의 국교재개는 쿠바 사회에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미국이 하루 전세기 10여편에 불과했던 항공편을 정기편으로 110편까지 늘리기로 함에 따라 당장 수백만명이 늘어날 관광수요 확충이 시급해 보였다.

정 관장은 “한국 관광객 증가 추세나 미국과 중남미 수출 전진기지로서의 입지를 감안해 우리도 쿠바와의 수교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임종건은 본지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 사회문화부장, 논설위원, 논설위원실장, 대표이사 사장, 부회장을 역임했었다. 은퇴 후에는 한남대학교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독자불만처리위원을 거쳐 현재 자유칼럼그룹에서 칼럼 기고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임종건 전 언론인

임종건 <언론인>임종건 <언론인>




쿠바의 최고급 호텔인 나쇼날데쿠바 호텔 앞에 서 있는 필자. 화장지걸이가 망가져 세면대 위에 화장지가 놓여 있었다. 쿠바의 호텔들은 화려한 외양에 비해 내부는 통제경제의 비효율로 그늘져 있었다.쿠바의 최고급 호텔인 나쇼날데쿠바 호텔 앞에 서 있는 필자. 화장지걸이가 망가져 세면대 위에 화장지가 놓여 있었다. 쿠바의 호텔들은 화려한 외양에 비해 내부는 통제경제의 비효율로 그늘져 있었다.


1,000명의 무희가 출연하는 아바나의 트로피카나 쇼. 이념이나 혁명의 냄새는 얼씬도 않는 전통음악과 무용으로 구성된 공연이다.1,000명의 무희가 출연하는 아바나의 트로피카나 쇼. 이념이나 혁명의 냄새는 얼씬도 않는 전통음악과 무용으로 구성된 공연이다.


오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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