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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식시장에서 지난해의 부실 자산을 한꺼번에 회계 처리한 종목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잠재부실이 사라진 만큼 올해에는 실적이 큰 폭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이른바 '빅배스(big bath) 효과'다.
빅배스란 원래 '목욕을 철저히 해서 몸에서 더러운 것을 없앤다'는 뜻에서 유래한 말로 흔히 경영진의 교체 시기나 정권교체기에 후임자에 의해 행해진다. 새로 부임하는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전임자 재임 기간에 누적됐던 손실이나 향후 잠재 부실요소까지 반영해 회계장부에서 한꺼번에 털어버림으로써 실적 부진의 책임을 전임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그래야만 실적개선 성과를 자신의 공적으로 부각시키는 효과를 얻게 된다. 빅배스로 장부상 이익을 내던 기업이 갑자기 적자로 전환돼 '회계 절벽'을 맞는 것은 이 같은 배경에서다. 수조원대의 손실을 한꺼번에 반영한 대우조선해양이 대표적인 사례다.
빅배스가 위험요소를 일시에 제거함으로써 실적 턴어라운드의 발판을 마련하는 긍정적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전 경영자의 성과를 보고 투자한 주주들은 이러한 회계처리로 인해 커다란 주가하락 손실을 보게 된다. 빅배스와 반대되는 개념은 '윈도드레싱(window dressing)'이다. 경영진이 현재의 부실을 숨기거나 이익 규모를 부풀리는 행위다. 기관투자가들이 자산운용의 모양새가 좋게 보이도록 할 목적으로 실적이 좋은 주식을 집중 매입해 주가를 올리거나 실적이 저조한 주식은 처분해 수익률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주로 성과평가를 앞둔 분기 말이나 연말에 행해진다.
이런 회계기법과 비슷한 형태의 행위가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서도 펼쳐지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국내 경기불황은 세계경기 침체와 정치권 발목잡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데 오로지 정부의 무능만을 탓하는 야당이나, 뜬금없이 경제낙관론을 펴는 정부와 여당의 행위가 빅배스·윈도드레싱과 유사해 보인다. 해법은 제시하지 않고 아전인수 격 논리만 펴는 것 같아 볼썽사납다. /이용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