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사상 최고의 상선?’ 사바나호



예쁘면 돈이 들까. 그랬다. 화객선(貨客船) 사바나호((NS Savannaha)는 가장 강하고 아름다운 배로 손꼽혔지만 비쌌다. 건조비가 그렇거니와 운영비로 골머리를 앓았다. 사바나호는 등장할 때부터 화제를 뿌렸다. 첫선을 보인 시기가 1962년 3월 23일. 세계최대 조선소였던 뉴저지주 캄텐 조선소에는 사상 최초의 원자력 상선인 사바나호의 진수식을 보려는 관중들이 몰려들었다. *

드라이 도크를 빠져 나온 사바나호는 델라웨어 강에 사뿐히 떴다. 진수식을 지켜본 관중들은 탄성을 질렀다. 길이 181.66 m, 1만 3,599톤(총톤수 기준)의 거대한 하얀색 선체는 마치 요트처럼 미끈한 선체를 뽐냈다. 외양 뿐 아니라 내용도 근사했다. 당시 첨단기술이 총동원된 호화판. 영화관 두 개와 수영장에 도서관까지 딸렸다.


사바나호 건조는 홍보 전략에서 비롯됐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주창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국정목표를 알리는 데 원자력 상선만한 재료도 없었다. 화물선보다는 날렵한 여객선처럼 외양을 꾸민 이유도 전시효과를 노렸기 때문이다. 소련이 1957년 원자력 쇄빙선 ‘레닌호’를 띄운 것도 사바나의 건조계획을 앞당겼다. 건조 비용은 총 4,690만 달러. 요즘 돈으로 33억5,488만 달러(미숙련공 임금 상승률 기준)에 달하는 금액이다. 원자로 탑재 비용 2,830만 달러를 빼도 일반 상선의 네 배나 되는 비용이 들어갔다.

사바나호의 선주인 미국 수산청은 홍보용으로 십분 활용했다. 우리나라에도 1967년 여름 부산항과 인천항에 입항, 화제를 뿌린 적도 있다. 문제는 과도한 운영비. 폼 나는 유선형 구조를 고집한 탓에 선적 용량이 적어 일반 상선과 화물 운송료 경쟁에서 뒤질 수 밖에 없었다. 핵 안전교육까지 이수한 승무원 인건비도 일반 화물선 선원 평균의 세 배였다.

승객도 거의 유치하지 못했다. 초호화 시설을 갖췄어도 여객 승선 정원 60명을 채운 적이 거의 없었다. 승객들이 방사능 누출 가능성을 우려한 탓이다. 승무원 수가 승객보다 언제나 많았다. 마침 국제 유가도 저렴한 시대여서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일반 화물선보다 4배의 운영비 부담에 허덕였다. 연간 400만 달러의 적자에 시달리던 선주 미국 해양수산청은 급기야 1972년 운항을 중지시켰다.

퇴역한 사바나는 유사시 동원 상선으로 보관 중이다. 냉전 시기에 건조된 다른 원자력 상선도 비슷한 최후를 맞았다. 독일이 1964년 건조한 1만6,870톤급 원자력선 ‘오토 한’호 역시 경쟁에 밀려 1979년 동력원을 디젤엔진으로 바꿔 달았다. 수차례 이름이 바뀌며 1999년까지 운항되던 이 배는 2009년 고철로 인도에 팔려, 해체되고 말았다.

원자력 냉동선으로 1970년 건조된 일본의 8, 240톤 짜리 ‘무쓰’호는 반핵운동 때문에 시운전만 계속하고 상업운전에는 한 번도 활용되지 못한 채 1992년 생명을 잃었다. 건조에서 시험 운항, 해체에 이르는 25년 동안 일본이 투입한 직접 비용만 약 12억 달러. 현재 운행 중인 원자력 상선은 러시아의 쇄빙선 3척(3척 별도로 보관 중)이 전부다.


원자력을 동력으로 삼은 민간 선박은 비용 대 효율 측면에서 경쟁력이 없다고 판명됐지만 유가가 오를 때마다 원자력 상선을 건조하는 논의가 고개를 든다. 우리나라에서도 태평양을 나흘 만에 주파할 수 있는 초고속 초대형 30만톤급 원자력 컨테이너선을 건조해 해운 경쟁력을 높이자는 아이디어가 제시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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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상선 건조 논의에서 간과한 사실 하나. 민간 원자력 선을 운용했던 미국과 독일, 소련, 일본 등 네 나라가 원자로 해체 비용은 외부에 밝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예비역 민간 상선대에서 보관 중인 사바나호의 원자로에 탑재된 잔여 연료가 미미한 수준이나마 2030년까지 핵반응을 계속한다는 보고도 있다.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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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바나’라는 이름은 미국에서는 흔하다. 여성 이름 100위권에 들어있고 주마다 같은 이름의 도시가 적지 않다. 미국 원주민 쇼니(Shawnee)족에서 나왔다는 게 정설. 식민지 시절부터 가장 오래된 도시의 하나로 꼽히는 사바나시(조지아주)도 쇼니족의 근거지였다. 선박으로서 ‘사바나’도 원자력 상선이 처음이 아니다. 남북전쟁기에 남부군의 증기선과 철갑함, 냉전시기인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활약한 미해군의 4만톤급 유류보급함도 같은 선명을 썼다.

원조는 1818년 건조된 사바나호(SS Savannah). 증기선으로는 처음으로 대서양 항해에 나섰던 선박이다. 1819년 봄 미국 조지아주 사바나 항을 출발한 사바나호는 범선에 증기엔진을 단 기범선. 당초 쾌속 범선으로 설계됐으나 건조 도중에 탈착이 가능한 90마력 짜리 증기엔진 두 대를 설치하고 배의 양현에 외륜을 달았다.

먼로 대통령의 격려 속에 대서양 횡단에 나선 이 배는 29일 11시간 만에 목적지인 영국 리버풀항에 도착할 때까지 숱한 화제를 뿌렸다. 증기엔진의 힘으로 운항할 때(총 80시간)는 부근의 선박들이 사바나호에 불이 난 것으로 여기고 도와주려고 모여들었다. 선원들은 ‘우아한 바람’ 대신 소음과 연기를 내는 증기기관을 싫어했다고. 일부 영국인들은 불안에 떨었다. 프랑스의 지원으로 독립한 뒤 미영전쟁(1812년)의 앙금이 남은 미국인들이 세인트헬레나섬에 유배돼 있는 나폴레옹을 탈출시키기 위해 쾌속 증기선을 동원했다는 낭설이 퍼졌기 때문이다. 항해 도중 검문하려는 영국 해군을 속도로 따돌린 적도 있다.

소문과 달리 사바나호는 영국을 거쳐 스웨덴과 러시아, 노르웨이와 핀란드를 지나 미국으로 돌아왔다.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는 차르(황제)로부터 건조비용의 2.6배가 넘는 10만 달러에 팔라는 제의까지 받았다. 성공적인 항해와 달리 사바나호는 불운을 맞았다. 대화재와 불황이 겹쳐 증기 엔진은 제철소에 팔려나가고 헐값에 매각된 선박 자체도 1821년 암초를 만나 좌초하고 말았다. 사바나호는 짧은 생(3년)을 마쳤으나 두 가지 흔적을 남겼다.

미국 의회는 영국 증기선보다 17년(미국 증기선이 대서양 항로에 본격 투입된 시기는 사바나호의 항해 이후 30년 뒤부터다) 앞서 대서양을 항해한 사바나호를 기려 1933년 사바나호의 출항일(5월 22일)을 해운의 날로 정했다. 또 하나는 본문에 소개한 원자력 상선 사바나호. 세계 최초의 원자력 상선 ‘사바나호’의 이름에는 대서양을 증기선으로 처음 넘었다는 미국인들의 자부심이 깔려 있다.

권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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