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내수中企 5,000곳 수출기업화 숫자놀음 되지 말아야

갈수록 심각해지는 수출절벽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비상대책을 마련했다. 연내 내수기업 중 5,000곳을 수출기업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매일 18개씩을 수출기업으로 전환하겠다는 얘기다. 세부목표와 실천계획도 세웠다. 서울 1,205곳, 경기 1,421곳 등 수도권에서만 2,970곳을 수출기업으로 육성하고 지방에서도 2,030곳을 발굴한다는 지역별 목표치를 제시했다. 지원체계도 해외는 KOTRA, 국내는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 일원화하기로 했다. 어떻게 해서든 수출부진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정부의 의지와 간절함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을 늘린다고 수출이 원기를 회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겪어온 경험은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준다. 외환위기 때 김대중 정부가 2002년까지 벤처기업 2만개 육성을 선언하자 ‘묻지 마 지원’이 이뤄지면서 이발소·목욕탕까지 벤처로 인정받는 촌극이 벌어졌다. 이명박 정부의 일자리 34만개 약속도, 고용률 70% 달성이라는 현 정부의 공약도 질 낮은 일자리만 늘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내용보다 목표에 급급하다 보니 생긴 필연적인 부작용이다. 정부가 해마다 쏟아붓는 수조원의 지원금 덕에 수출기업이 매년 평균 2만8,000개씩 생겨나도 96%인 2만7,000개가 1년도 못 버티고 문을 닫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기업만 늘리면 수출부진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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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절박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다. 수출은 벌써 14개월째 뒷걸음질쳤고 이달에도 두 자릿수 이상 감소할 게 분명하다. 내수부진 속에 수출마저 바닥을 긴다면 정말 우리 경제와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년들에게는 희망이 없다는 판단도 옳다.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 쓸 수는 없다. 수출기업 숫자만 늘릴 게 아니라 대·중소기업 간 협력을 강화하고 중소업계의 사업구조 개편을 유도해 자체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먼저 힘을 모아야 한다. 잘 키운 중소기업 50곳이 ‘무늬만 수출기업’ 5,000개보다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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