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POWER INTERVIEW] 이태식 한국건설기술연구원장

“공간·기술의 범위 확장하면 우주는 넓고 건설할 곳은 많다”




건설기술이 벌어다 준 중동 오일머니는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한국의 초석을 놓은 귀중한 자양분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건설수주 규모는 세계 6위권에 머물고 있지만, 기술만 놓고 보면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뒷받침하는 금융의 약세 탓에 건설기술이 손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건설기술의 저력 뒤에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끊임없는 연구가 한몫을 단단히 했다. 지난 1948년 시작된 연구원의 발자취는 벌써 70년 가까운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이태식 원장을 만나 건설기술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건설은 물리와 화학 등 과학의 모든 분야를 응용하는 최고의 과학입니다. 과거 원시시대부터 그래 왔고, 미래 우주시대에도 건설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겁니다. 건설 공간과 기술의 범위를 좁게 보기 때문에 건설의 성장한계라는 무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공간적으로 확장하면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저개발 국가는 물론 극지와 해양, 우주까지 건설할 곳은 무궁무진합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이태식 원장은 건설에 대한 편협한 사고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을 때 기회가 온다고 말했다. “건물이나 항만, 공항 등 사회간접자본(SOC)에 국한된 기술적 범위를 조금만 확장하면 설계와 유지관리 등 엔지니어링 분야는 물론, 3D프린터를 이용한 건축이나 드론을 이용한 모니터링, 사물인터넷(loT)을 이용한 SOC서비스 고도화에 이르기까지 융·복합 분야가 모두 건설의 몫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원장은 이렇게 건설 본연에 내재된 성장 본능을 어떻게 경제성과 기술력으로 세팅하고 지원할 지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우리 건기연은 외국에 나가면 IT 인프라까지 함께 건설하는 곳이라고 사업 설명을 합니다. 세계 유수 기업 삼성과 현대가 있고, IT강국 한국의 위상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사실 전혀 틀린 말도 아닙니다. 건설기술이라는 건 단순히 콘크리트 강도 실험을 하거나 건축 구조물의 역학에 대한 연구만 하는 분야가 이니기 때문이죠. 앞으론 사물인터넷을 구현할 인프라를 구축해야 합니다. 전기선, 전화선, 상하수도 등과 다르지 않아요. 발상을 조금만 바꾸면 건설 분야에 기회가 생깁니다.”

이 원장은 우주개발 사업을 그 예로 들었다. “달과 화성에선 하우스의 개념이 다릅니다. 극한 환경에서 일종의 피난처죠. 방사능 등을 막기 위해선 물과 콘크리트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달에는 물이 없으니 두께 4~5m의 흙집이 유효합니다. 달은 화산현무암으로 되어있고 특성상 동굴이 있기 때문에 지하공사 없이 집을 지을 수 있어요. 그냥 뚜껑을 만들어 덮는 방식이죠. 우리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달 복제토를 개발했고 이를 이용해 무중력 진공상태에서도 만들 수 있는 ‘달 콘크리트’도 개발했습니다. 이는 미 항공우주국(NASA)보다도 앞선 기술이이에요.”

이 원장은 우리나라의 달 탐사계획에 대해서도 말을 이어갔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오는 2020년 달에 도착하는 ‘달 탐사 프로젝트’가 진행됩니다. 이제 시간이 채 4년도 남지 않았죠. 물론 한국한공 우주연구원과 다른 연구기관에서 꼼꼼히 준비하겠지만, 우리 연구원도 이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이미 건기연은 NASA로부터 2030년 화성 착륙지점을 정하는 데 참여해 달라는 제안을 받은 상태입니다. 그들은 우주탐사가 건설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우주개발은 10년이나 20년 전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참여할 수 없죠. 발사체 기술은 이미 선진국들이 선점하고 있지만 탐사 부분인 건설기술은 상황이 다르다고 봅니다. NASA의 연구인력 1만5,000명 중에는 건설기술 인력도 상당수 있습니다. 우주의 극한 환경에서 건물을 짓고 도로를 닦는 일이 관건인데, 일단 우주개발이 본격화되면 우리의 저력이 발휘될 여지가 큽니다.”



지난 1969년 인류가 처음 달에 갔을 때 지구의 물속에서도 건설기술 연구는 태동하고 있었다. 미국 토목학회는 그때부터 우주탐사분과를 만들어 극한의 환경을 대비한 건설 기술 등을 연구했다.

크게 나눠 우주개발은 두 가지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발사체 연구와 탐사영역이다. 발사체 연구는 항우연 등이 해야 할 몫이지만 탐사 부분은 건기연 등에서 모두 준비해야 한다는 게 이 원장의 생각이다.


“NASA는 통합되기 전 여러 연구기관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중 핵심이 됐던 곳이 토목 관련 연구기관들이었죠. 우주개발 연구는 제가 한양대학교 교수였던 10년 전부터 해오던 일입니다. 건기연에 와서 우주분야의 세계적 기술자 14명을 찾았는데, 그들 모두 집 짓는 기술 연구만 하더군요. 그들에게 본연의 역할을 찾아주니 바로 성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원장은 무중력 공간을 재연한 우주 진공 체임버를 그 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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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0㎥의 진공 체임버를 만들 계획입니다. 화성탐사를 대비한 것으로 이름도 ‘마션 체임버’로 바꿨어요. 아마도 전 세계에서 한국으로 실험을 하러 오게 될 겁니다. 미국에선 여러 분야에서 작은 실험이 가능하지만, 전체적으로 실험할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한국이 우주탐사 연구를 선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이 주도하는 우주개발에서 우주항공 분야는 뒤졌을지 몰라도 우주건설 분야에선 앞서 갈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이 원장이 이렇게 우주개발에 관심을 갖는 주요한 이유는 지금 고민하는 우주기술 하나하나가 스핀 온(spin on) 되면 그게 모두 건설의 새 먹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우주 프로젝트들이 중요한 이유는 뒤늦게 스핀오프 되어 제품화 된 우주·군사기술과 달리, 지금은 동시다발적으로 바로 접목되는 스핀 온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요소기술 하나하나가 건설벤처의 핵심 사업거리가 될 수 있죠. 달 뒷면 태양광 기술만 해도 고속도로 상에서 태양광 발전
을 하는 스마트 솔라 하이웨이로 즉각 실행할수 있습니다. 고속도로 상공 10m 높이에 20㎞길이의 태양광 벨트를 만들면 화력발전소 한기에 버금가는 전력을 생산할 수 있어요. 3D프린터도 달 콘크리트 등을 만들기 위한 우주기술로 출발했지만 이미 전 세계에서 각광 받는 기술이 되고 있습니다.”

이 원장은 3D프린팅의 핵심인 재료를 달 토양으로 대체하는 기술을 개발했듯이, 달에서 콘크리트를 찍어내 지구로 가져온다면 4명이 거주할 수 있는 흙집을 400만원 정도에 지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만 해도 선박형 화력발전소를 수출한 전례가 있습니다. 길이 1.2㎞, 폭 200m의 콘크리트 바지선을 3.3㎡당 1,500만원에 만들었는데, 이게 1조5,000억 원대 프로젝트였어요. 이 위에 1조원짜리 화력발전소를 지어 수출하면 7조5,000억원에서 10조원까지 받을 수 있죠. 물론 이 분야는 조선이 아니라 건설의 영역이고 몫입니다.”

그의 말은 한마디로 건설의 개념을 바꿔야 새로운 일거리가 만들어진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런 방식으로 앞으로 20년, 30년 뒤까지 고려하는 건설기술의 영역을 창출해내는 것이다. 이제 땅이 없으면 인공 섬을 만들면 된다. 북극기지를 만들 때까지만 해도 남극기지처럼 가져가서 조립한다는 발상을 하지 못했다.

“건설기술은 이미 지구촌 곳곳에서 한계가 없는 영역이 됐습니다. 극지방은 물론 무더운 아프리카나 건조한 사막에서도 새로운 기술을 통해 한계를 극복하고 있죠. 이제 우리는 우주, 극지 등의 기술을 선점할 ‘퍼스트 무버(First Mover)’를 키워야 합니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언제까지나 선진국 꽁무니만 따라가는
신세가 될 테니까요.”

이 원장은 그 방안으로 엔지니어링과 전문건설사가 중심이 되는 ‘건설산업의 벤처화’를 주장했다.

“전 세계에서 발주되는 건설공사를 보면 여전히 토목과 건축물량이 가장 많습니다. 플랜트를 주로 하는 대기업과 다른 기술력으로 무장한 중소 건설기업에게 기회가 있는 셈이죠. 이들과 우리 연구원의 기술 브랜드를 연계해 해외시장을 공략한다면 상당한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앞으로 실리콘밸리 같은 건설벤처의 요람을 만들어 이들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이태식 원장 프로필

학력

서울대학교 토목공학 학사
美 위스콘신주립대학교 석사(건설경영학)
美 위스콘신주립대학교 박사(건설경영학)

경력
2014. 08~ 현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원장
2014 ~ 2017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
1994 ~ 2014 한양대학교 건설환경플랜트공학과 교수
2011 대한토목학회 회장
2010 ~ 2016 한국공학기술단체연합회 회장
2010 한국철도학회 회장
2002 ~ 2003 한국건설관리학회 회장
1990 ~ 1994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건설관리연구실 실장

상훈
2010 대한민국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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