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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 사고, 그 5년 후

일본은 아직도 세계 최대 방사능 재해 현장을 치우고 있다. 파퓰러사이언스의 스티브 피더스톤 기자가 현장을 직접 방문해 지금까지의 진행상황과 앞으로 남은 과제들을 살펴봤다.




I.
지난 2011년 3월 11일, 일본 지진 관측 사상 가장 강력한 진도9의 강진이 일본 동북부 해안을 강타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명명된이 지진으로 땅이 6분 동안 흔들렸고,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다이치 원전)의 전원 공급이 끊겼다.


지진의 여파로 발생한 15m 높이의 쓰나미가 다이치 원전의 방파제를 넘어와 백업용 디젤 발전기들이 모두 침수된 탓이었다. 이로 인해 다이치 원전의 원자로 6기 가운데 4기의 동력이 완전히 소실됐고, 4기 중 3기에서 노심용융이 일어나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대기와 바다로 유출됐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래 최악의 원자력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구소련은 체르노빌 원전을 포기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아니었다. 방사능에 오염된 지역을 정화하겠다는 초유의 결정을 내렸다. 약 2,200만㎥로 추정되는 막대한 저준위방사능 폐기물을 처리한 뒤 긴급 대피한 8만명의 주민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겠다고 밝혔다.

그렇게 작년 9월 철저한 정화 작업 끝에 후쿠시마현의 의무대피지역에 속했던 11개 마을 중 한 곳이 처음으로 개방됐다. 하지만 개방 후 한달간 집으로 돌아간 주민은 2%뿐이었다. 이후 조금 늘기는 했어도 대다수 피난민들은 방사능이 두려워 맨몸으로라도 다른 곳으로 이주하려 했다.

앞으로 2년 내에 또 다른 마을이 개방될 예정이다. 다이치 원전에서 남쪽으로 10㎞ 떨어진 토미오카 마을이 그곳이다.

작년 가을 필자는 차를 타고 토미오카의 바닷가를 달렸다. 한때 쓰나미가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린 곳이었다. 텅 빈 거리에 메아리치는 소각 시설의 금속성을 제외하면 괴괴할 정도로 조용했다.

한때 기차역이 서 있던 공터는 멧돼지들이 휩쓸고 다녔고, 지진으로 무너지고 쓰나미에 휩쓸린 상점과 주택에서 나는 썩은 냄새가 바람을 타고 전해져 왔다. 한 상점에는 트럭 한 대가 진열장을 들이받은 채 멈춰서 있었다.

한때 1만6,000명의 인구가 살았던 토미오카는 수㎞에 걸쳐 주택지구와 상업지구, 황갈색 논으로 가득했다. 사고 이후 수천 명의 방사능 정화 인력들이 거의 삽에만 의존해 마을 내의 모든 건물로부터 반경 20m 이내의 표토를 5㎝나 제거했다. 이렇게 파낸 표토는 검은색 백 안에 넣어졌는데, 마을의 모든 길모퉁이와 빈터에 백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어떤 백은 그 자리에 너무 오래 있었는지 잡초가 자라 있기도 했다.



당시 근로자들은 마른 수건으로 모든 건물을 지붕에서 바닥까지 빈틈없이 닦아냈고,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는 고압 세척을 했다.

낮 시간대의 토미오카에는 피난민들의 진입이 허락된다. 하지만 마을에서 숙박을 하려면 특별허가증이 있어야 한다. 필자는 이곳에서 마을 외곽의 집으로 퇴근하려던 정화기업의 간부 히야시 켄이치를 만났다.

4년 6개월 전 그가 딸과 부모님을 데리고 피난을 떠났을 때 마을의 방사능 수치는 시간당 5마이크로시버트(5μSv/h)였다. 현재는 0.6μSv/h 정도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일본 정부의 장기 정화 목표치 0.23μSv/h의 두 배가 넘는다.

도쿄 시내의 정상적인 자연방사선과 비교하며 무려 15배다. 히야시는 마을의 정화를 위해 방사능 유령 마을이 된 토미오카로 돌아왔지만 출퇴근이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번 주에 정화가 완료된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다. 진입로에는 빈 정화 백이 철제 프레임 안에 늘어져 있었다. 빗물받이와 수도꼭지, 전기배관에는 고방사선을 의미하는 밝은 분홍색 테이프가 둘러져 있었다.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며 우리는 마당을 거닐었다. 정화지역과 오염지역 사이에 조성된 완충지대 너머의 수풀 속에서 귀뚜라미들이 부산스레 움직이기 시작했다. 히야시는 불 꺼진 이웃집들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토미오카는 이름만 남았어요. 다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지 않을 겁니다.” 이 말을 통해 필자는 그가 다른 많은 피난민들처럼 고향으로 돌아오기 보다는 정부 보상금을 받는 걸 원한다고 느꼈다. 사실 극소수의 사람들만 살고 싶어 하는 동네에 집을 소유해 봤자 딸에게 물려주기 마땅찮은 유산이 될게 너무 뻔했다.



II.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현을 재건하는 동안 다이치 원전 운영사인 도쿄 전력(TEPCO)은 다이치 원전을 천천히 해체하고 있다. 해체 공사에는 150억 달러가 들 것으로 예상된다.

필자는 히야시를 만나고 2주일 후 버스에 몸을 싣고 토미오카를 다시 지나쳤다. 이번에는 여러 언론인들과 함께 문제의 다이치 원전을 향했다.

정문 안으로 들어서자 흰색셔츠를 입은 도쿄 전력 안내원들이 출입 통제소로 안내했다. 현재 다이치 원전에는 7,000명의 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에도 출입 통제소에 길게 늘어선 로커 앞에서 방호복을 벗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안내원 중 한 사람은 상황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고 말하면서 원전 부지 내 90%의 공간에서 더 이상 전면 방호복을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식당 밖에 새로 자판기도 설치했다고 하니 거짓말은 아닌듯 했다.

브리핑을 받은 후 우리 일행은 인접한 다른 건물로 안내됐다. 도쿄 전력은 그곳에 두터운 방사능 방호창을 가진 특별 전망실을 갖춰놓고 있었다.

1960년대 후반 35m 높이의 해안절벽 위에 건설된 다이치 원전은 절벽 사면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메인 부지로 구성돼 있다. 전망실은 위쪽 부지보다 7층이나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작은 도시 크기인 3.4㎢면적의 원전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흰색 방호복을 입고 일하는 사람과 업무용 건물들 사이로 오가는 건설 장비들이 한눈에 보였다.

사고 전, 이 부지의 대부분은 소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어 조류보호구역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때 한 도쿄전력 안내원이 줄지어 선 물탱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는 여기 올 때마다 놀라움을 느낍니다. 2년 전만 해도 모두 평지였거든요.”

전망실 동쪽 800m 지점의 아래쪽 부지는 태평양과 접해 있다. 바로 그곳에 사고가 일어난 4기의 원자로가 있다. 격자 모양의 지지대를 가진 4호기와 3호기의 잔해물, 아직 외벽이 남아 있어 외견상 멀쩡해 보이는 2호기, 그리고 베이지색 패널로 가려진 1호기가 그것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원자로의 현재 모습은 해체작업도 그만큼 복잡함을 반영한다. 다이치 원전 방문 일주일 전 도쿄 전력 본사에서 만난 수석 해체 담당관 마스다 나오히로의 설명은 이랬다.



“다이치 원전의 해체에 참고할 만한 기존 자료가 없습니다. 노심 용융을 일으킨 원자로 3기는 핵연료가 녹은 방식이 각각 다릅니다. 건물이 손상된 방식도 모두 달라요. 서로 다른 세 개의 원자로 해체 프로젝트가 진행돼야 하는 겁니다.”

원자로는 기본적으로 매우 복잡하고 정밀한 ‘물 끓이는 기계’라고 할 수 있다. 핵 연료봉에 들어있는 핵연료가 핵분열을 할 때 발생하는 열로 물을 끓여 고온의 증기를 만들고, 이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력을 생산하는 메커니즘이다. 이렇게 발전에 쓰인 증기는 응축 냉각된 뒤 펌프를 이용해 노심(勞心)으로 재공급돼 핵연료의 과열을 막는 냉각재 및 추가 증기생산에 활용된다.

만일 이런 물의 순환이 중단되면 핵 연료봉의 온도가 급격히 상승해 안정성을 잃는다. 최악의 경우 양초처럼 녹아내린다. 이때는 핵연료 용융물이 원자로 내에 고이면서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방출된다.

마스다는 다이치 원전의 완전한 해체와 모든 방사능 물질의 제거에 30~40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한 그는 현재로선 손상된 원자로 내에 고여 있는 핵연료 용융물을 제거할 기술이 없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엔지니어들이 그 문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방법이 있을 겁니다. 큰 위험이 따르겠지만 말이에요. 사소한 실수 하나가 이 지역 사람들, 아니 전 세계에 엄청난 피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저희는 그런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만 합니다.”

원자로를 더 가까이서 보기위해 우리 일행은 방호장비를 착용했다. 안전모와 방진 마스크, 라텍스 장갑, 면장갑, 일회용 바지, 양말 두 켤레, 방호복, 고무장화, 일회용 장화 커버, 방사선량계(dosimeter), 그리고 옷소매를 여미는 방사능 차폐 테이프까지 한 세트였다.

이 모든 장비는 방사능 오염물질이 피부에 닿거나 폐로 유입되지 못하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있다. 다만 이 장비로도 감마(γ)선 방사선만큼은 차폐가 불가능하다. 도쿄 전력에서 나눠준 유인물에 따르면 방사선량계는 20μSv의 방사능에 피폭될 때마다 경보음이 울린다고 한다.

복장을 갖춘 일행은 두툼한 플라스틱 패널과 덕트 테이프로 차체를 감싼 버스에 올랐다.



III.
한때 녹색 식물들로 뒤덮인 채 다이치 원전의 위쪽 부지와 아래쪽 부지를 구분했던 길고 가파른 절벽은 이제 매끈한 콘크리트로 뒤덮여 있었다. 방사능에 오염된 토지에 빗물이 스며들어 지하수가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버스가 처음 멈춰 선 곳은 언덕에 위치한 창문 없는 건물이었다. 별반 특이할 것 없어 보였지만 건물 위에 올라가자 망가진 4기의 원자로가 눈에 들어왔다.

각 원자로는 19층 건물만 했다. 노심 용융에 따른 수소 폭발로 상부가 날아간 3호기를 제외하면 말이다.

부서진 원자로의 위에는 크레인들이 있었다. 방사능 오염 물질의 비산을 막고자 새 덮개를 건설할 때 사용한 것이었다. 이 덮개는 언젠가 도쿄 전력이 핵연료 용융물 제거에 돌입할 때 장비들을 부착하는 프레임 역할도 하게 된다.

정상적 상황에서조차 원자로 노심에서의 핵 연료봉 회수는 특수장비의 동원이 필요한 까다로운 작업이다. 원자로를 외부에서 보면 철판과 콘크리트의 외피만 보이지만 핵 연료봉은 물이 채워진 750톤 중량의 기밀 강철 캡슐인 원자로 압력용기(RPV) 내에 들어 있다. 이 압력용기를 약 13㎝의 철판으로 내부를 덧댄 1.5m 두께의 콘크리트 격납 용기(PCV)가 감싸고 있으며, 격납용기는 다시 파이프와 펌프 등의 장비들이 잔뜩 들어있는 벌집 구조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감싸고 있다. 이처럼 원자로는 복잡하기 그지없다.

일행은 건물을 다녀오는 동안 오염된 신발 커버를 벗은 뒤 버스에 탑승했고, 버스는 원자로 앞길을 따라 달렸다.사고 당시 원자로 1, 3, 4호기는 수소 폭발을 일으켰다. 그 장면은 뉴스 영상으로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폭발로 날아간 부분은 원자로의 얇은 외피뿐이며, 거대한 격납용기는 수소 폭발에도 외견상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지진과 수소 폭발, 그리고 2호기 내부에서 들렸던 의문의 폭발음에 의해 격납용기에 균열이 생겼을 수있었다. 아닐 수도 있지만 진실은 아무도 몰랐다. 치명적인 수준의 방사능 때문에 사고 현장에 사람을 들여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도쿄 전력은 정확한 현장 상황파악을 위해 작년 4월 1호기의 격납용기 내부로 두 대의 로봇을 투입했다. 한 대는 4일간 작동했지만 다른 한 대는 3시간도 지나지 않아 고장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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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도쿄 전력이 핵연료 용융물의 위치와 관련해 확보한 가장 정확한 정보는 얼마 전 뮤온검출기로 1호기를 스캔해 얻은 것이다. 이를 통해 압력용기가 비어 있음이 확인됐다. 녹은 핵연료가 압력용기에 구멍을 뚫고 흘러나와 격납용기 바닥에 고여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된 것이다. 2호기와 3호기 역시 1호기와 유사한 상황일 개연성이 높다.

도쿄 전력은 오는 2021년부터 핵연료 용융물의 제거를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 희박하기 그지없다. 아직 남아 있는 해체작업이 그야말로 산더미인 탓이다.



IV.
버스가 공동 저장수조 건물을 지나치는 순간 필자의 방사선량계가 울렸다. 지금껏 피폭된 방사선이 20μSv에 도달했다는 신호였다.

이 건물의 수조 속에는 수천 개의 사용후 핵연료 집합체가 물속에 잠겨 있다. 원자로는 3년마다 핵연료를 교체해 줘야 하는데, 다이치 원전에서는 뜨거운 사용후 핵연료봉을 원자로 최상층의 수조에서 식힌 뒤 공동 저장수조 건물로 이송한다.

다행히 동일본 대지진 당시 4호기는 동일본 대지진 당시 작동 중인 상태가 아니었기에 노심용융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도쿄 전력은 2014년 12월 크레인을 활용해 4호기의 사용후 핵연료 저장수조에 남아 있던 마지막 집합체를 제거함으로써 중요한 고비를 넘긴 바 있다. 나머지
원자로의 사용후 핵연료 집합체는 2019년부터 순차 제거 될 예정이다.

버스는 4동의 터빈 빌딩과 바다 사이에 놓인 철판으로 된 길에 접어들었다. 흰색 외벽을 가진 터빈 빌딩들의 길이를 합하면 니미츠급 항공모함보다도 길었다. 그 발치에는 휘어진 배관과 녹슨 철근이 드러난 콘크리트 덩어리 같은 쓰나미에 의해 밀려 온 잔해들이 널려 있었다.

우리가 있는 지점은 해수면에서 3.6m 높은 곳으로 다이치 원전부지 내에서는 가장 낮은 곳이었다. 바다를 바라보니 15m의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 버스를 밀어버리는 장면이 떠올라 섬뜩하기까지 했다.

노심용융이 일어난 지 5년이 지나는 동안 이 바다에는 방사능에 오염된 물이 지속적으로 유입됐다.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도쿄 전력은 가장 최근의 발표에서 바닷물의 방사성 세슘(Cs) 농도는 감지가 어려울 만큼 낮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농도는 단지 법적 허용치에 기반한 것이라는 게 미국 우즈홀 해양연구소(WHOI)의 해양 화학자 켄 뷰슬러 박사의 설명이다.

“탐지 불능이란 단어는 방사능에 오염된 물이 바다로 유입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도쿄전력의 자료 또한 WHOI의 자료와 마찬가지로 다이치 원전에서 가까운 바다일수록 세슘 농도가 높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버스는 4호기 앞에서 멈췄다. 일행은 한때 도쿄 전력이 ‘난공불락의 장벽’이라 자랑했던 800m 길이의 방파제를 향했다. 594개의 콘크리트와 철 덩어리로 이뤄진이 방파제는 다이치 원전을 바다로부터 지키기 위한 최후 방어선이었다.

다이치 원전의 물 문제를 완벽히 이해하려면 사고 초기로 돌아가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정상적 조건 하에서 원자로의 물은 폐쇄구조를 순환하면서 핵연료의 냉각과 증기 발생에 활용된다. 그러나 지진에 의해 이 순환이 멈추자 도쿄 전력은 과열된 원자로를 식히기 위해 바닷물을 퍼부었다. 그렇게 원자로와 터빈 건물 내부에 방사능에 오염된 수천 톤의 바닷물이 들어찼다.

이와 관련 미국 캘리포니아주어바인 소재 핵폐기물 관리기업쿠리온(Kurion)의 설립자인 존 레이몬트는 며칠만 더 물을 퍼부었다면 물이 원전 밖으로 넘쳐흘렀을 것이라 말한다.

“그러면 파국적인 상황이 벌어졌을 겁니다. 발전소 내부로 들어간 사람들 중 물웅덩이에 발을 디디는 순간 방사선 화상을 입은 사람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지금의 다이치 원전에 그 같은 방사능 물웅덩이는 없다. 하지만 도쿄 전력은 핵연료 용융물의 냉각을 위해 여전히 하루 320톤의 물을 원자로 속으로 순환시키고 있다.

냉각수로 쓰인 후 오염된 물은 펌프를 통해 쿠리온이 특수제작한 정수 시스템으로 보내져 가장 위험한 방사성 핵종인 세슘과 스트론튬(Sr)을 걸러낸다.

이후 이 물의 대부분은 다시 원자로로 투입되며, 현 기술로 제거가 불가능한 고농도 트리튬(삼중수소)에 오염된 일부 물은 파이프를 통해 별도의 수조로 격리된다.



다이치 원전에는 이렇게 오염된 물 70만톤 이상이 1,000개의 수조에 저장돼 있다. 올림픽 규격 수영장 300여개를 채울 수 있는 양이다. 문제는 수조를 무한정 건설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냥 바다에 버릴 수는 더더욱 없다.

설령 획기적 기술이 개발돼 도쿄 전력이 하룻밤 사이 트리튬을 모두 제거해낸다고 해도 일본정부가 100만톤에 이르는 물을 2020년 도쿄 올림픽 이전에 바다에 버리도록 승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랬다가는 엄청난 이미지 추락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적어도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는 수조들이 우후죽순처럼 계속 생겨날 공산이 크다.

4호기를 본 뒤 일행은 버스에 올라 5호기와 6호기로 이동했다. 버스는 이따금씩 수정(水井)과 여과설비 앞에 멈췄는데, 부서진 원자로의 밑에서 흘러나와 바다로 유입되는 하루 수백 톤의 지하수를 붙잡아 정화하는 시설들이었다. 방사능에 오염된 원자로의 물과 섞인 지하수 중 일부는 여과 처리된 뒤 수조 단지로 보내진다고 했다. 여과되지 않은 채 그대로 바다에 흘러들어간 경우도 물론 있다.

도쿄 전력은 지하에 얼음 벽을 설치해 지하수의 바다 유입을 막고, 원자로 주변에만 흐르도록 하는 기술을 시험해왔다. 그러나 언제 그 기술을 사용할지에 대해선 아무 말이 없는 상태다.

고지대에 위치한 원자로 5호기와 6호기는 쓰나미의 피해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원자로 북서쪽의 토지 9,000㎢를 오염시킨 방사능 연기가 지나갔던 길목에 위치해 있다.

우리는 죽은 소나무들이 이쑤시개처럼 서 있던 삼림지대도 지나쳤다. 소나무는 방사능에 특히 민감하다. 그 순간 방사선량계가 두 번째 경고음을 울렸다. 단 2시간, 그것도 대부분 버스 안에 머물러 있었음에도 4회의 흉부 X선 촬영에 필적하는 방사선에 피폭된 것이다.



V.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전 세계 원자력 발전 업계에 찬물을 끼얹었다. 일례로 독일은 모든 원전의 퇴출을 결정했고, 중국도 신속히 추진하던 원전 도입 프로그램에 제동을 걸었다. 그리고 국가 전력의 30%를 원자력으로 충당하던 일본은 모든 발전용 원자로의 가동을 중지시켰다.

그런데 최근 들어 상황이 반전되고 있다. 작년 한 해에만 10기에 이르는 신규 원자로가 가동에 들어갔다. 한 해동안 가동된 원자로로는 1990년 이래 가장 많은 숫자다. 또한 중국은 현재 24기의 원자로를 제작 중이며, 앞으로 더 많은 수를 제작할 계획이다.

특히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처음으로 작년 8월 가고시마현 센다이 원전 1호기의 가동을 재개했다. 이후 지금까지 센다이 원전 2호기와 다카하마 원전 3호기 등 총 3기의 원자로가 재가동됐다. 사고 이후 집권한 아베 정권에 의해 원전 제로 정책이 공식 철회된 것이다.

교토에 거주하는 75세의 원자력공학자 안자이 이쿠로 리츠메이칸대학 명예교수는 이런 변화에 회의적이다. 그는 평생 동안 정부와 원자력 업계 사이의 밀월관계 때문에 도쿄 전력 같은 회사들이 안전 경고를 무시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리고 일본도 독일의 선례를 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후쿠시마 사고 발생 이전까지 적어도 일본 정부는 겁많은 국민들에게 방사능 노출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교육하는 것으로 역할을 다했다고 여겼다. 그런 상황에서 안자이 교수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사고 이후에는 우수한 장비를 갖추고, 동기부여가 잘 된 소수의 인원도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

현재 그는 매달 후쿠시마현을 찾아가 방사능 수치를 조사한다. 그렇게 정부와 원자력 산업계의 발표를 더 이상 믿지 않으며,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로 시민들은 업계와 정부, 전문가들에 대한 신뢰를 잃었습니다. 과학자로서 저는 피해자들의 편에 서서 방사능 피폭의 최소화를 돕고, 과학계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이슬비가 내리던 어느 날 오후. 필자는 후쿠시마 시내의 토리카와 유치원에서 안자이 교수를 만났다. 다이치 원전에서 약 64㎞ 떨어진 곳이었다. 주민이 소개된 지역은 아니지만 일부 지역은 아직도 일본 정부의 장기 정화 목표치(0.23μSv/h)를 초과하는 방사선이 검출되고 있다.

그의 어깨에는 감마선 분광기가 매달려 있었다. 유치원의 그네 옆에 무릎을 꿇고 앉은 그는 땅을 파고 분광기의 센서를 넣었다.

“0.07μSv/h군요. 교토의 제 사무실과 비슷한 수준이네요. 2년 전 이곳에서 측정했던 수치보다는 절반 이하로 낮아졌습니다.”

유치원 원생들에게 반가운 소식이었다. 사고 이후 그들은 방사능 피폭의 두려움에 휩싸여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안심하고 다닐 수 있게됐다.

후쿠시마현은 과거 양질의 농산물 생산지로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지금은 이곳에서 생산된 모든 농산물이 방사능 오염도를 정밀 측정 받고 있다. 그럼에도 학교에서는 후쿠시마가 아닌 다른 지역의 농산물로 급식을 한다. 많은 부모들이 방사능 관련 정부 발표를 더 이상 믿지않기 때문이다.

후쿠시마현에 대한 정화와 원전 해체 작업이 진행되는 지금, 안자이 교수는 정부와 원자력 산업계에 40년 넘게 해왔던 조언을 거듭하고 있다.

‘숨기지도, 거짓말하지도 말라. 그리고 아무것도 과소평가하지 말라’가 그것이다. 여러 모로 볼 때 후쿠시마현의 재건은 상대적으로 쉬운 과제다. 일본은 원폭 피해라는 더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일어선 경험이 있다. 문제는 국민들의 신뢰다.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얻기는 훨씬 어려울 것이다. 방사능 물질과 달리 신뢰에는 반감기가 없으니 말
이다.

이 기사는 미국 국제언론인센터(ICFJ)의 지원을 받아 작성됐다.

PCV - Reactor Pressure Vessel.
RPV - Primary Containment Vessel.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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