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기술제국의 건설자

니케시 아로라 Nikesh Arora는 구글의 고수익 창출 구조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일본 통신기업 소프트뱅크 SoftBank의 차기 CEO에 지명된 이후 전 세계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과연 소프트뱅크를 IT업계의 버크셔 해서웨이 Berkshire Hathaway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까? By ERIN GRIFFITH, PHOTOGRAPH BY BENJAMIN RASMUSSEN


최근 인도 벵갈루루 Bengaluru의 한 회의장에 니케시 아로라가 들어서자 셀카의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셀카를 같이 찍자’는 한 용기 있는 팬의 요청을 아로라가 승낙하자, 다른 사람들도 재빨리 그 뒤를 따랐다. 수십, 어쩌면 수백 명의 참가자들이 그를 에워싸고 팔을 쭉 뻗어 휴대폰 카메라를 작동시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다. 사람과 휴대전화의 물결을 뚫고 미소를 지으면서 요청을 거절하거나(그저 셀카일 뿐이니까), 아니면 아로라가 그랬듯이, 수행원들이 구출해 줄 때까지 ‘액정의 바다’ 속에서 끊임없이 촬영에 응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니케시!”를 외치며 계속 그를 뒤쫓았지만, 수행원들은 단호했다. “이제 나가셔야 합니다. 다음에 하세요.”

아로라는 영화배우나 유튜브의 인기 비디오 업로더가 아닌 IT업계 경영인이다. 미국인들 대다수에겐 낯선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런 만큼 한 달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TechCrunch Disrupt나 뉴욕 골드만삭스 행사에선 아로라의 등장이 그 만큼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런 행사에서 그를 향한 대중의 태도는 존경과 호기심이다. 구글을 현재의 대기업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인물이라면 차기 행선지를 으레 CEO직이나 새로운 유망 실리콘밸리 벤처 프로젝트의 ‘기업화’로 잡을텐데, 그는 베일에 싸인 일본의 통신 대기업 소프트뱅크의 투자총괄 역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도에서 아로라는 가는 곳마다 인파를 불러모으는 ‘경영계의 엘비스 프레슬리’였다. 그는 숨막히게 빠른 힌디어로 인도 문화에 대한 농담을 던진 후, 신생기업들에게 ‘OPM(other people’s money ·남의 돈)’에 중독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인도에선 아로라를 포함해 마이크로소프트, 펩시코 CEO 같은 엘리트 기업인들을 묶어 ‘글로벌 인도인(global Indian)’이라 부르고 있다. 하지만 아로라는 이들과 다른 점을 몇 가지 가지고 있다. 그의 2014년 연봉은 계약 보너스를 포함, 총1억 3,500만 달러로 다른 이들보다 많았다. 그의 화려한 평소 생활은 더욱 유명하다. 같은 해 그는 인도 부동산재벌 상속녀 아예샤 타파르 Ayesha Thapar와 결혼했는데, 할리우드 스타 애슈턴 커처와 졸리-피트부부 등이 그의 호화로운 결혼식에 참석했다. 무엇보다 그는 고국을 방문할 때마다 두둑한 돈주머니를 차고 온다. 인도 창업가들에겐 결코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아마추어 투자자들은 ‘인도가 제2의 중국’이라는 말을 즐겨 하곤 한다. 하지만 소프트뱅크처럼 인도에 거액의 자본을 투자하며 요란하게 움직이는 투자자는 드물다. 약 1년 6개월 전, 아로라는 구글 최고위직을 사임하고 소프트뱅크에 합류했다. 소프트뱅크는 각각 인도 내에서 에어비엔비, 우버, 아마존의 강력한 경쟁자로 꼽히는 오요룸스 Oyo Rooms, 올라캡스 Ola Cabs, 스냅딜 Snapdeal 등 가장 인기 있는 벤처기업들에 총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이는 중국 벤처투자에서 거둔 성공신화를 이어 줄 차세대 성장주도 거대 IT기업을 찾아내기 위한 여정의 일환이었다. 아로라와 소프트뱅크는 놀랍도록 빠른 투자 행보를 통해 인도 기업인들의 마음을 얻었다. 아로라는 자신이 합류하기 전까지 소프트뱅크는 도박을 몇 건 감행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많은 곳에서 많은 도박을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47세인 아로라는 떡 벌어진 어깨와 큰 키에 선명한 이목구비를 가진 인물로 항상 미소를 띠고 있다. 그는 격의 없고 쾌활한 삼촌 이미지와 까탈스럽고 위압적인 재력가 분위기를 동시에 풍겼다. 과거를 회상할 때 그의 표정은 부드러웠다. 1990년 그는 경영전문대학원 입학을 위해 3,000달러와 여행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미국에 들어와 보스턴 소재 노스이스턴 대학교(Northeastern University)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그는 양복에 흰 양말을 신었다는 이유로 자신을 비웃었던 동기들을 이기겠다고 굳게 결심했고, 결국 1등으로 졸업을 했다. 그리고 25년 후에는 다보스포럼과 선 밸리 Sun Valley 콘퍼런스 *역주: IT, 금융, 미디어 분야 기업 대상 컨퍼런스 를 누비며, 실리콘밸리의 터줏대감(제리양 Jerry Yang과 래리 엘리슨 Larry Ellison)과 후드티 차림으로 상징되는 신세대들(커처 *역주: 배우 겸 벤처투자자와 모바일 메신저 스냅챗 Snapchat의 CEO 에번 슈피겔 Evan Spiegel)과 고루 사귀는 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소프트뱅크의 차기CEO로서 아로라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그 정도를 넘어 벵갈루루(구 방갈로르) 이상으로까지 뻗어 있다. 아로라는 자유분방한 신생기업이었던 구글이 초고속 성장을 하던 시기, 반대를 불허하는 엄격한 태도로 기업의 질서를 잡았다. 현재 소프트뱅크만큼 이런 재능을 필요로 하는 곳은 없을 것이다. 일본 프로야구팀, 경영난에 빠진 미국 통신사, 중국 전자상거래 재벌 알리바바 Alibaba 지분 상당량, 그리고 ‘페퍼 Pepper’라는 이름의 개인용 로봇까지 수많은 것들이 소프트뱅크의 미로처럼 얽힌 소유구조 아래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현 CEO인 창립자 손정의와 아로라의 목표는? 소프트 뱅크를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와 유사한 형태의 세계적인 IT중심 투자회사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아로라는 “(손정의가)과감한 투자를 하면서도 한 번의 문제를 겪은 적이 없다”며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의 재능을 활용하고, 또 그 중 일부만이라도 제도화함으로써 다음 세대가 선대 CEO와 같은 방식으로 경영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역할 때문에 그는 이전에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장애물에 직면해 있다. 아로라는 벤처투자업무 경험이 전혀 없지만, 현재는 세계 벤처투자업계에서 가장 눈에 띄고 자유롭게 투자하는 인물로 꼽히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현재 막대한 채무와 투자자들의 뿌리깊은 불신에 직면한 상태다.

회사가 소유한 스프린트 Sprint, 알리바바, 야후 재팬의 상장지분 가치가 모기업의 시가총액보다 220억 달러나 더 많다(자세한 내용은 뒤에서 다루겠다). 그는 손정의와 이사회가 사용하는 일본어도 거의 할 줄 모른다. 또 아로라는 지금까지 고평가된 성숙기 벤처기업들에 약 40억 달러라는 거액을 투자했는데, 피델리티 같은 다른 대형 투자자들이 이들 기업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아로라는 상황을 파악 중이다. 그는 “어떤 업무든 처리에 필요한 능력의 50%는 이미 내 안에 있다. 운이 좋으면 나머지 50%는 배우면서 갖추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100%를 갖추고 소프트뱅크의 변신을 이끌기 위해선 투자자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구글 재직 당시 그가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 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 Sergey Brin의 신뢰를 얻었던 비결, 즉 ‘이론의 여지 없는 확연한 성과’가 다시 필요해진 이유다.

작년 11월 도쿄에서 개최된 소프트뱅크 애널리스트 데이 행사에서, 손정의는 발표 중간중간 장난끼가 느껴지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로라 영입 소식으로 IT업계를 깜짝 놀라게 한 지 16개월, 아로라가 사장 및 최고운영책임자 겸 후계자로 자리를 잡은 지 6개월째 되는 시점이었다. 아로라가 여전히 차기 CEO 최고 유력 후보냐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손정의는 ‘Yes’라고 답했다. 그는 최대 골칫거리였던 후계자 선정을 마쳐 편안한 모습이었다.

손정의는 소프트뱅크 이사진 및 경영진과 함께 무대에 앉아 있는 아로라를 바라보았다. 엄숙한 표정의 그는 일-영 통역기를 귀에 낀 유일한 사람이었다. 손은 아로라가 소프트뱅크에 온 날, 회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후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아로라 등장 이전까진 자신의 전략적 사고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로라가 합류한 이후 미래의 모든 측면에서 높은 수준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2014년 연 매출 약 800억 달러를 기록한 세계적 기업 소프트뱅크의구조는 상당히 복잡한 상황이다. 아로라는 10년간 구글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 복잡한 조직을 이끌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입증한 바 있다. 구글은 엔지니어 비중이 높았다. ‘사악해지지 말자’라는 사훈 아래 협업 문화가 강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동료들은 처음에는 아로라가 이런 구글과 잘 맞을지 의구심을 품기도 했다. 그는 경영대학원 시절 동기들이 ‘월가에서 일할 것 같은 사람’ 1위로 뽑을 정도로 깔끔한 인상의 마케팅 전문가였다(아로라는 여러 번 취업에 실패했고, 한동안 금융인 대상 애널리스트 교육 강사로 활동한 후에야 퍼트냄 Putnam과 피델리티 같은 월가 투자사에서 일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당시 8억 달러였던 구글의 연 매출을 5년 내에 40억 달러로 올린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워 2004년 유럽지사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목표 달성을 위해선 느긋하고 사교적인 성향을 갖고 있던 판매 담당자들에게 성과에 대한 책임을 요구해야 했다. 당시 유럽지사는 폭발적 성장세를 기록 중이었지만 매달, 매주, 매일의 매출액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로라에게 예측과 측정이 가능한 결과를 요구 받은 부하 직원들은 한동안 ‘트라우마’에 빠졌다. 그는 본사가 직접 관장하는 것으로 유명한 구글의 채용절차를 잠시 완화시켜 자신이 조기에 지원자들을 충원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페이지에게 요청했다. 당시 구글 CEO였던 에릭 슈미트 Eric Schmidt는 아로라의 이 같은 움직임을 기화로 미국의 일개 검색엔진이었던 구글이 세계적 대기업으로 변신하는 ‘연방화 (federating)’가 시작됐다고 말한다. 5년 후 구글 유럽은 아로라의 목표보다 두 배 많은 매출 80억달러를 달성했다. 기업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유럽지사의 비중도 25%에서 약 50%로 높아졌다.

아로라는 구글 유럽의 건전성 점검 일일 보고서에 사용될 분석기법을 고안하기도 했다. 이는 훗날 전사적으로 퍼졌다. 이 기법을 이용해 그는 사전에 2008년 경제 위기를 예측했고, 본사에 이를 알려 매출 둔화가 시작되기 전 회사가 지출을 조정할 수 있게 했다. 슈미트는 이를 매우 높이 평가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니케시가 하자는 건 다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로라가 하고 싶어했던 일중에는 광고주와 회사를 잇는 대행사들에게 수수료를 주는 관행을 철폐하는 것도 있었다. 이 강경한 주장으로 인해 광고대행사 WPP의 강력한 수장 마틴 소렐 Martin Sorrell이 구글을 ‘친구이자 적(frenemy)’이라 부르는 일까지 일어났다(아로라는 “기존 고객들과 연결시켜 주는 대가로 수수료를 지급하진 않겠다”며 “이 결정은 한 번도 재검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판매담당자 1만5,000명을 라스베이거스로 불러 모아 구글답지 않은 화려한 행사를 열고, 엘비스 복장으로 연단에 서기도 했다. 그는 직원들이 체포되면 자신의 돈으로 보석금을 내겠다고 경고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감옥에서 아로라와 얼굴을 맞댄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필요한 건 전혀 없었다. 구글시절 동료들은 아로라가 구글화(化) 하는 대신, 구글이 점점 아로라처럼 변했다고 말했다.

2010년 아로라는 구글의 매출290억 달러를 총괄하는 자리인 최고사업책임자(chief busines sofficer)로 임명돼 본사가 위치한 캘리포니아 주 마운틴뷰 Mountain View로 옮겨왔다. 그는 두 가지 의미에서 전설이 됐다. 창립자들보다 높은 연봉과 괴팍한 성격이 그것이었다. 그는 무자비하고 자신만만하며 날카롭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회사 안팎에선 그를 존경과 공포로 대했다(아로라는 당시의 자신이 ‘무신경하고’ ‘참을성이 덜했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모바일 운영체제 안드로이드의 개발자 앤디 루빈 Andy Rubin에게 아로라가 무서웠냐고 묻자, 그는 농담처럼 이렇게 말했다. “회사에 들어오는 돈을 관리하던 그 사람? 그 사람 말은 들어야 한다.”

포춘과의 첫 만남이 시작된 지몇 분 후, 아로라는 이 기사가 어떻게 흘러갈 지 자신의 생각을 필자에게 말했다. “많은 것을 알게될 것이고, 그 중에서 무엇을 쓰고 뭘 안 쓸지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는 덧붙였다. “곧 알겠지만, 내게는 적이 좀 있다. 멍청이들을 못 참기 때문이다. 당신이 적을 못 찾아내면 그 편이 내게 더 놀라울 것 같다.” 그에 말대로 필자는 적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포춘과의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모두 자신이 아로라를 존중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언급해 달라고 부탁했다.

구글을 상대로 반독점 운동을 벌인 저명한 미디어 컨설턴트 마이클 캐선 Michael Kassan이 그랬다. 캐선은 아로라에 대해 “어떤일에 정말로 뛰어나면 공작새처럼 과시할 권리도 갖게 된다”며 “그는 공작새일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니케시와 나는 적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엔 친구가 됐다”고 덧붙였다.

구글은 직원들이 다양한 견해를 갖도록 장려하는 문화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아로라는 당시 자신이 한 일이 항상 옳은 건 아니었다고 인정했다. 그는 안드로이드 인수를 반대했지만 경영진은 그의 의견을 듣지 않았고, 그 결과 현재 안드로이드는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 80%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인수 후 아로라는 슈미트에게 “신경 안 쓸 거면 내 의견은 왜 물어본 거냐”고 항의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그는 2009년 당시 기업가치가 30억 달러에 못 미쳤던(현재는 500억 달러) 넷플릭스를 인수하자고 주장했다. 2010년에는 57억 5,000만달러에 소셜커머스 사이트 그루폰 Groupon을 인수하는 계획을 이끌었는데, 성공했다면 아마 재앙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아로라의 성공은 실패를 상쇄하고도 충분히 남을 만했다. 슈미트는 “아로라는 같이 일해 본 어느 경영인보다 더 정교한 분석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칭찬을 쏟아냈다.

그에겐 구글에서 보낸 10년 동안 떠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야후와 스카이프가 CEO직을 제안했지만, 아로라는 이들 회사를 개선시킬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뭔가를 맡을 땐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를 설득할 사람은 따로 있었다. 구글이 야후 재팬과 검색관련 거래를 진행하면서, 그는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을 알게 되었다.

인도 언론의 가십 페이지는 2014년 이탈리아 해안에서 거행된 아로라의 결혼식을 ‘21세기 인도-미국 경제계의 결혼’이라 불렀다. 이 날하객으론 연예인들만이 온 게 아니었다. 페이지, 슈미트, 브린 등 구글의 최고위 경영진이 모두 참석했다. 그리고 2주 후 아로라가 구글을 떠나 소프트뱅크에 합류한다는 갑작스런 소식이 날아들었다. 손정의와 아로라를 제외한 IT업계 모든 사람들이 이 소식에 깜짝 놀랐다. 아로라는 한 행사에서 인도 창업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의 행보를 예상할 수 있다면, 그 행보는 바꿔야 한다.”

닷컴 버블이 절정기를 치닫던 시절, IT 투자로 엄청난 돈을 번 손정의의 고민거리는 재산을 기부할 곳을 찾는 일이었다. 1981년 세운 소프트뱅크의 기업가치는 2000년 2월 당시 도요타보다 높은 1,600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는 3일간은 빌 게이츠보다도 부자였다. 하지만 이후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늘이 그에게 해결책을 건네주었다’. 닷컴 버블이 붕괴하면서 소프트뱅크의 주가가 99%폭락했다.

이 같은 극단적인 사례가 보여주듯이, 소프트뱅크는 구름 위까지 올라가기도, 극적으로 추락하기도 하면서 관찰자들에겐 흥미를, 투자자들에겐 고통을 불러일으킨 기업이었다. 지난 2006년 소프트뱅크는 사채 103억 달러를 발행, 경영난에 시달리던 영국통신기업 보다폰 Vodaphone 일본지사를 인수했다. 인수 후 이 지사는 일본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통신사로 변모했다. 또 2000년엔 알리바바라는 이름의 작은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에 2,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벤처투자 반열에 오른 결정이었다. 현재 이 지분의 가치는 610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 한편, 2012년 스프린트 인수로 대차대조표 반대편에는 채무 220억 달러가 추가로 쌓이게 되었다.

당초 계획했던 티모바일 T-Mobile과의 합병이 무산되면서 소프트뱅크는 미국 4위의 적자업체 스프린트를 계속 보유해왔다. 투자자들은 이 같은 상황에 부정적인 대응을 했고, 소프트뱅크 주가는 2013년 말 기록한 최고치 대비 25% 이상이나 곤두박질을 쳤다.

찬양론자와 비관론자 모두는 소프트뱅크가 손정의의 과감한 도박과 투자가 결합된 결과물이라는 데 동의한다. 소프트뱅크는 현재 스프린트, 알리바바, 야후 재팬 외에도 핀란드의 성공적인 게임제작 벤처 수퍼셀 Supercell 등 10여 개의 자회사를 두고 있다.

회사 관계자 상당수는 “손정의가 곧 소프트뱅크”라고 말한다. 인도 최대 통신재벌 바르티 에어텔 Bharti Airtel의 CEO 수닐 미탈 Sunil Mittal은 과거 소프트뱅크 이사직을 역임한 바 있다. 그는 소프트뱅크는 “마사 *역주: 손정의의 일본 이름 손 마사요시의 애칭가 전부”라고 말했다. “마사, 마사, 마사…그 사람 안에는 초인이 있다.”

올해 58세인 손정의는 계획대로 자신이 60대에 은퇴하면, 그 이후 소프트뱅크에서 마법을 이어 갈 인물이 아로라라고 여기고있다. 소프트뱅크에서 아로라가 맡은 첫 임무는 인터넷 및 미디어기업에 대한 투자였다. 하지만 불과 9개월 후 손정의는 그를 사장으로 승진시키고 후계자로까지 지명했다. 요즘 두 사람은 거의 매일 회사의 전략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다. 아로라는 일본법 상 각종 거래에서 회사를 대표할 수 있는 직위인 ‘대표이사(representative director)’로도 임명됐다. 그는 “내가 그저 해외사업만 담당하는 외국인이 아니라는 점을 사내에 알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정의는 서서히 업무를 줄이는 식으로 CEO직을 승계할 생각이다. 그는 “아로라는 이미 나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CEO에 오른 이후에도, 나는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그를 도와야 한다.”

한 배를 탔다는 의미에서, 아로라는 지난해 8월 4억 8,300만 달러 상당의 소프트뱅크 지분을 매입하고 10억 달러 상당의 자사주를 사들였다. 이 사건은 언론의 큰 관심을 끌었지만, 아로라는 이 부분에 대해 말하길 특별히 꺼렸다. “관심의 초점이 잘못됐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로라는 공식석상에서 이 매입이 회사 차원의 도박인 동시에 개인적 취향인 리스크 추구라고 설명했다(그는 이매입을 위해 빚을 내야 했다). 그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리스크가 사실 크지는 않다고 털어놓았다. 집과 차, 아이들 대학 학비는 이미 마련했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소프트뱅크 주가가 50% 하락하면 그는 원금의 절반을 잃게된다. 그러나 몇 년 연봉만 받으면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액수다.

주식 매입을 진행하는 현 시점에서, 소프트뱅크의 가치는 여러 척도에서 볼 때 저평가된 상태다. 스프린트, 야후 재팬, 알리바바의 상장주 중 소프트뱅크의 지분은 총 840억 달러로, 소프트뱅크 자체의 시가총액 620억 달러보다 220억 달러나 더 많다. 자산가치를 20% 낮게 평가하고(자산매각 시 부과되는 세금을 고려해 지주사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계산법이다), 소프트뱅크의 대규모 채무를 감안한다 해도, 380억 달러 규모의 통신사업, 엄청난 이익을 내고 있는 수퍼셀에 대한 경영권,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벤처투자 포트폴리오(소프트뱅크 호크스 프로야구팀도 빼놓지 말자!)에 아무런 가치를 두고 있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투자은행 제프리스 Jefferies의 애널리스트 애툴 고얄 Atul Goyal은 소프트뱅크의 주가가 “심각하게 왜곡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에는 CLSA증권의 한 애널리스트가 “주가가 너무 낮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물론 소프트뱅크의 부채 규모를 보면 현 주가 상황에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여러 인수합병 결과, 총 부채가 960억 달러, 부채비율이 100%를 넘는 등 위태로운 수준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언론 보도에 따르면, 손정의는 670억 달러 규모의 경영자인수(management buyout · MBO) *역주: 기업을 매각할 때 기존 경영진이 기업의 전부 혹은 일부 사업을 인수하는 것 를 검토 중이다. 성사될 경우 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로, 부채를 더욱 키우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아로라는 소프트뱅크 주가가 저평가된 이유로 스프린트의 고전과 함께 중국의 경기둔화와 알리바바에 대한 우려를 꼽았다. 소프트뱅크의 실적을 원활하게 하면서 회계보고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그가 맡은 거시적 역할이다. 또 그는 좀 더 과감한 투자전략을 실행하고, 매각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있다. 그 외에도 그는 형식적인 부분에 손을 댔다. 작년 7월 사명(社名)에 ‘그룹’을 붙여 IT기업 투자자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 했다. 이 같은 변신이 성공한다면, 투자자들은 소프트뱅크 그룹을 전 세계 고속성장 IT기업에 투자하기 위한 한 경로로 평가할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벤처투자사들은 ‘유니콘 기업(기업가치10억 달러 이상의 비상장기업)’ 여러 곳에 투자하면 그 중 일부가 실패한다 해도 S&P 500보다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자랑을 한다. 소프트뱅크는 이런 투자를 실제 실천에 옮겨, 현재 전 세계 ‘유니콘’ 기업6개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요즘 아로라는 추가 투자 대상 물색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투자총괄로서 그는 소프트뱅크의 미국 본사가 있는 캘리포니아 주 샌칼로스 San Carlos를 거점으로, 전 세계 방방곡곡을 돌며 새 투자처를 찾고 기존 투자처를 점검하고 있다(포춘 기자가 동행한 8일간의 인도 방문에서도, 그는 델리, 벵갈루루, 다시 델리, 뭄바이를 거쳐 바라나시에서 대학교 졸업식 연설을 하는 등 총 5번이나 이동했다). 아로라는 실리콘밸리 벤처투자자들과의 경쟁을 피하고자 소프트뱅크의 초기 벤처업체 투자 펀드를 청산했다. 그 대신 벤처투자사들이 이미 떠난 분야의 성공 스토리에 투자하길 원했다. 그렇다 보니 액수가 엄청나다. 소프트뱅크는 한국의 소셜커머스 업체 쿠팡과 미국의 소셜금융 벤처 소셜 파이낸스 Social Finance에 각각 10억 달러를 투자했다. 동남아시아, 중국, 인도에선 ‘현지판 우버’에 각각 3억 5,000만, 6억, 4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참고로 2015년 기준 북미에서 진행된 성숙기 벤처기업에 대한 평균 투자액은 약 5,000만 달러였다).

아로라는 15명의 팀을 구성해 투자처를 물색하고, 포트폴리오 기업들에 대한 조언을 받고 있다. 링크트인 LinkedIn 중역을 지낸 디프 니샤르 Deep Nishar, 베이어 캐피털 파트너스 Baer Capital Partners의 창립자 알록 사마 Alok Sama, 벤처투자자 머리사 캠피스 Marissa Campise, 전 구글 중역 데이비드 터브넌 David Thevenon, 조너선 볼록 Jonathan Bollock, 리앤 혼시 Liane Hornsey 등이 그들이다. 사마와 니샤르는 아로라와 마찬가지로 인도 출신이다. 인도는 지난해 벤처창업 열기가 절정에 달했고, 소프트뱅크는 그곳에서 유독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니케시 아로라와 두꺼운 나무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수많은 기업가 및 언론인들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아로라가 델리에서 열린 타이콘 TiECon 경영인 콘퍼런스에서 막 기조연설을 마쳤을 때였다. 그는 힌디어 농담을 섞어 가며, 청중에게 ‘정착’을 요구하는 문화적 압박을 이겨내라고 조언했다. 스티브 잡스의 명언 ‘끊임없이 갈망하고, 우직하게 일하라(Stay hungry, stay foolish)’의 아로라 버전인 셈이다. 열광하는 청중들은 아로라가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라도 되는 양 타지 팰리스 호텔 Taj Palace Hotel까지 그를 따라왔지만, 바로 그 굵직한 문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문 뒤에는 미리 선발된 기업인 20명이 질문 하나씩을 던지고자 모여 있었다. 필자는 인파를 헤치고 겨우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모임을 기획한 벤처투자자 바니 콜라 Vani Kola가 “아로라와 함께할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정말 큰 행운”이라고 말하는 중이었다. 안에서도 셀카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 아로라는 한 팬의 휴대전화가 넥서스 4 *역주: 2012년에 출시된 기종 인 것을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새로 하나 사시죠.” 아로라가 조언했다. “벤처 창업자라면 최신 트렌드를 알아야 합니다.”

아로라가 소프트뱅크에 합류 할 무렵, 손정의는 인도가 새로운 기회의 땅이라고 판단하고 특유의 허세에 찬 스타일로 투자에 나선 상황이었다. 그는 급성장하는 전자상거래 업체 스냅딜의 창립자 쿠날 발 Kunal Bahl을 찾아가, 대주주가 되는 조건으로 1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전대미문의 제안을 내놓았다. 그는 발에게 “이사회는 신경 쓰지 말라”며 “그냥 이 돈을 받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큰 지분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이사회는 손정의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로라는 투자자와의 신뢰 및 인간관계 구축을 중시하는 인도에선 그런 식의 접근법이 통하지 않는다고 손정의에게 설명했다. 이후 그는 3주간 소프트뱅크에 지분을 팔라고 스냅딜을 설득했다. 이사회는 최초 제안보다 줄어든, 지분의 30% 가량을 6억 2,000만 달러에 매각하는 데 동의했다. 발은 아로라가 계약 성사에 있어 ‘절대적인 핵심’ 역할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투자의) 탄탄한 토대를 구축해 현실로 만들었으며, 기존 주주들을 안심시켰다.”

몇 달 후, 아로라와 손정의는 ‘이틀간 기업인 43명과 커피 약속을 갖는’ 숨가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인도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기업 두 곳을 추가로 선택했다. 부동산사이트 하우징닷컴 Housing.com과 ‘인도의 우버’ 올라캡스였다. 이후 그들은 중저가호텔 벤처기업 오요룸스의 22세 창업자에게 9,000만 달러를 지원했다. 무(無)에 가까웠던 소프트뱅크의 인도 내 인지도는 이 나라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두성숙기 벤처투자사 DST, 타이거글로벌 Tiger Global과 비견될 정도로 높아졌다. 자신의 회사 칼라리 캐피털 Kalaari Capital을 통해 스냅딜의 이사가 된 콜라는 “그쪽이 우리에게 수표를 끊어주면, 우리는 그쪽에 대해 인내해 주는 관계”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선한 의지란 마음에서 우러나야만 하는 것이다. 아로라가 해낸 게 바로 그 부분이다.”

인도를 누비는 동안, 아로라는 고향에 돌아와 행복한 것처럼 보였다. 서양식 정장재킷을 입은 다른 남성 임원들과는 달리, 아로라는 네루 재킷 *역주: 목까지 잠그는 인도 특유의 차이나컬러 재킷을 착용했다. 포춘이 동행한 방문에서, 아로라는 저녁식사 메뉴를 확인한 후 일찍 자리를 뜨며 한마디를 던졌다. “인도 음식이 없다니!” 말도 안 된다는 투였다. “인도에오면 인도 음식을 먹고 싶은데.” 아로라는 “소프트뱅크가 투자한 기업들에게 손정의 식의 장기적 사고를 주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경영인들에게 구글에서 인터넷 사업을 확대하면서 얻은 경험을 전수하며 10년 후를 계획하라고 조언했다. 아로라는 투자기업 3곳의 최고재무책임자 후보자들을 직접 인터뷰했고, 그의 파트너 니샤르는 다른 여러곳의 최고위 경영진 선발에 참여했다.

아로라는 소프트뱅크의 투자기업 간 인맥 구축도 지원하고 있다. 그는 스냅딜의 발을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에게 소개했고, 그 결과 알리바바가 스냅딜에 투자했다. 현재 두 기업간 교류는 활발하다. 알리바바 경영진이 스냅딜에 판매자 지원을 위한 기술을 추가로 구축하라고 조언한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소프트뱅크와 알리바바가 다량의 지분을 보유한 중국의 우버, 디디콰이디 Didi Kuaidi가 최근 올라캡스에 투자한 사례도 마찬가지다. 투자기업 CEO들은 이 인적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는 아로라에 대한 존경심을 거침없이 표현하고 있다. 올라캡스의 CEO 바비시 아가르왈 Bhavish Aggarwal은 “아로라는 투자자라기보단 친구”라고 말했다.

아로라는 벤처창업자들과 만날 때, 상대가 준비한 PPT 자료에 없는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지난해 4월 스냅딜이 인수한 결제업체 프리차지 FreeCharge의 창립자 쿠날 샤 Kunal Shah는 “슬라이드를 2번 밖에 안 넘겼는데, 아로라가 다른 주제로 가 버렸다”고 말했다. 아로라는 이를 시험이라고 표현했다. 슬라이드 내용을 전부 설명하는 데 집착하는 창업자는 기업 진로를 유연하게 변경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아로라는 광고비는 얼마 정도가 좋다는 등의 세세한 전술적 충고는 잘 하지 않지만, 굳이 할 경우에는 보통 줄이라고 이야기한다. 10월 인도 방문에서 그가 과도한 지출을 경고했다는 소식은 현지 유수 신문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하지만 1면에 실리지는 못했다(스냅딜의 커다란 광고 때문에 공간이 없었다).

미국이든 그 밖의 나라에서든, 소프트뱅크가 지불할 수 있는 비용에는 한계가 있다. 아로라는 요즘 빅히트를 치고 있는 메시지앱 스냅챗(본사는 로스엔젤레스에 있다)을 기업가치 160억 달러로 평가한 투자자 모집 라운드에 참여하지 않았다. 소프트뱅크가 수익률 100%를 달성하려면(벤처캐피털 업계에선 이 것도 적은 수익률이다), 스냅챗은 기업가치320억 달러에 상장돼야 한다. 아로라는 2015년 매출이 1억 달러로 추산되는 업체가 그 정도 가치를 가질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아로라는 투자 외의 방식으로 스냅챗의 성장을 도왔다. CEO 에번 슈피겔이 처음으로 광고주 후보들을 만날 준비를 할 무렵, 그는 아로라의 집으로 와서 스프링노트에 적은 프레젠테이션 내용을 보여주었다. 아로라는 한 장씩 넘겨본 후 공책을 뒤집었다. 그리고 샤프 펜을 들고 슈피겔이 진짜로 해야할 일이 뭔지, 사례분석 때의 초기 광고 활용 같은 간단한 것부터 판매전략의 큰 틀까지 하나하나씩 적어주었다. 슈피겔은 “열두 살짜리 어린애 수준으로 보였던 것 같다”며, “아로라는 솔직하고 단도직입적인 태도로 광고업계에 처음 진출할 때 여떤 현실이 다가올지 알려주었다”고 말했다.

아로라는 창업자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성장을 이끌겠다는 열의에서 내적인 에너지를 얻고 있다.하지만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도 느끼고 있다. 물론 소프트뱅크 투자의 예상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는 책임감도있다. 그러나 그는 이들 회사가 올바른 전략을 따르고 있다는 확신을 얻는 것을 매우 중요시 여긴다. 아로라는 “올바르지 않은 동기로 행동하는 것은 어린 시절 부모님의 가르침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군법무감을 지냈던 부친은 직장에서 직급이 높은 사람에게 하극상을 했다는 이유로 3년간 먼 지역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는 이 사건을 통해 자신의 원칙을 고집할 때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무의식 깊은 곳에 새겼다”고 말했다. 아로라의 아버지는 현재 루게릭병을 앓고 있다.

인도 방문 기간에 개최된 작은 저녁 모임에서, 아버지의 강한 의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아로라의 목소리는 잠시 떨렸다. 일주일간 이어진 공식 일정 가운데, 그의 완벽한 대외 이미지에 잠시 빈틈이 보였던 유일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대중이 언제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만큼, 약한 모습은 오래가지 않았다. 벵갈루루에서 한 시상식에 참석한 후, 아로라는 대형 붐마이크와 눈부신 조명이 설치된 촬영 카메라 앞에 섰다. 기자, 기업인, 팬들이 몰려 들자 그를 대면하기 위한 대기 줄이 여럿으로 갈라졌다.

사람들은 아로라에게 인사를 하고 질문을 한 후 명함을 건넸다. 다음 일정을 위해 아로라가 자리를 뜨자, 사진사 3명이 파파라치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란한 셔터음을 찰칵거리며 그를 에워쌌다. 아로라는 스냅딜의 이사 콜라와 약속을 잡으려다가, 자신의 연설이 있을 다음 행사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몇 발짝 걷던 수행원들이 멈춰서서 그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아로라의 말을 받아 적으며 명함을 내미는 기자, 기업인, 팬의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것, 그건 아로라에겐 아주 익숙한 일임에 틀림없었다.



소프트 뱅크 제국의 기이한 연대기

1981년
소프트뱅크가 패키지 소프트웨어 유통업체로 출범한다.

1995~96년
무역박람회업체 컴덱스와 ‘PC매거진’의 출판사 지프 데이비스를 인수하고, 야후 재팬 창립을 위한 조인트벤처를 구성한다.

1999년
손정의 회장이 130개 IT 벤처기업의 지분을 획득한다. 애널리스트들에 따르면, 그는 일본 인터넷업계의 70%를 장악하고 있다.

2000년 2월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에 2,000만 달러를 투자한다. 창업자 마윈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당시만 해도 변변한 사업 계획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2000년 3월
닷컴버블이 붕괴한다. 2000년 4월에서 2002년 10월까지 소프트뱅크 주가가 99% 폭락한다.

2005년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프로야구팀을 인수한다.

2006년
소프트뱅크가 154억 달러를 제안해 보다폰 일본 지사 인수경쟁에서 승리한다. 일본 지사는 업계 수익률에서 국내 1위에 등극한다.

2012년
스프린트 지분을 220억 달러에 매입해 경영권을 확보한다. T모바일과의 합병 시도는 독과점 문제 때문에 실패한다.

2014~15년
쿠팡, 스냅딜, 올라캡스, 오요룸스, 그랩택시, 토코피디아 등 고속성장 중인 아시아 벤처업체 지분을 대량 매입한다.

2015년
감성지능을 갖춘 소프트뱅크의 로봇 페퍼가 일본에서 시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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