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신문이 주요 제조·유통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기업들은 일부 업종의 업황이 다소 나아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앞으로의 경영환경을 낙관할 수 없다고 봤다. 중국 경기가 하락해 대외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총선과 같은 정치적 변수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셈이다. 실제 기업들은 공격 경영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신규채용과 투자확대에 대해서는 미온적이었다.
서울경제신문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올해 신규 인력채용 규모를 묻는 질문에 ‘지난해 수준’이라고 답한 기업이 55.8%로 가장 많았다. 경영환경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 지난해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1~5% 증가’는 20.9%였고 ‘6~10% 증가’는 9.3%, ‘11% 이상 증가’는 4.7%에 그쳤다. 반면 ‘11% 이상 축소’와 ‘1~5% 축소’한다는 업체는 각각 7%와 2.3%였다.
같은 맥락에서 신규 투자에 대해서도 주저하는 기업이 많았다. ‘지난해 수준’이라는 응답은 38.7%였고 ‘1~5% 증가’는 22.7% 수준이었다. ‘6~10% 증가’는 6.8%였다. 반면 ‘11% 이상 축소’하겠다는 기업도 13.6% 나 나왔다. ‘1~5% 축소’는 9.1%였다.
재계에서는 대외환경도 문제지만 기업이 마음 놓고 뛸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정치권이 경제 관련 법안 처리를 뒤로 미루고 정쟁에 빠져 있는 것을 큰 문제로 보고 있다. 노동 경직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음에도 높은 수준의 노동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도 기업들의 불만이다. 재계의 고위관계자는 “경제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고 법인세 인하 같은 적극적인 지원책을 펴도 모자랄 판에 정쟁에 법안 처리마저 제대로 하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누가 신규로 인력을 채용하고 투자를 늘릴 수 있겠느냐”고 강조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각종 비용감축은 2·4분기 이후에도 계속된다. 올해 각종 비용 집행 전망을 묻는 질문에 ‘지난해 수준(0%)’이라는 답이 33.3%였다. 하지만 ‘1~10% 축소’와 ‘20% 이상 축소’하겠다는 응답이 각각 22.2%씩 나왔다. 둘을 더하면 무려 44.4%나 된다. 경영환경이 좋지 않은 탓에 마케팅을 포함해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여 수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이는 ‘귀사의 경영에서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에서도 잘 드러난다. 1위는 ‘수익성 강화’로 무려 60.9%의 기업이 이를 선택했다. 2위는 ‘인수합병(M&A) 등 신성장동력 발굴’이었는데 23.9%로 상대적으로 적었다. 결과적으로 M&A 같은 외연 확대보다는 1차적으로 비용을 줄이고 수익을 높여 대비하겠다는 기업이 더 많은 것이다.
대외환경에 대해서도 비관적인 업체가 많았다. ‘경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외부 변수를 뽑아달라’는 질문에 ‘글로벌경기침체(45.5%)’가 가장 많았고 ‘내수침체(20.2%)’와 ‘저유가(15.9%)’ ‘중국 경기 하락(13.6%)’ 등이 뒤를 이었다. ‘북핵과 사드 등 동북아 정세’를 꼽은 기업은 2.4%로 예상 외로 적었고 ‘환율’을 선택한 기업도 2.4%에 불과했다.
올해 국제유가 전망에 대해서는 지금과 비슷한 배럴당 ‘40~50달러 수준’이라는 응답이 57.8%로 1위였고 ‘30~40달러’ 24.4%, ‘50~60달러’가 17.8%였다.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란 시장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47.7%의 업체는 ‘일부 투자 검토’라고 밝혔고 ‘계획 없음’이라고 한 곳도 40.9%에 달했다. ‘투자 보류’도 11.4%나 돼 이란 시장을 두고서는 아직 탐색을 더 해야 한다는 기업이 많았다. ‘대규모 투자 검토’라고 답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다만, 올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증가할 것이라고 보는 기업이 많았다. 불확실한 경제전망 속에서도 긴축경영과 내실 다지기를 통해 내실 있는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올해 매출액 전망을 묻는 질문에 43.2%에 해당하는 기업은 ‘1~10% 증가’를 선택했고 ‘지난해 수준(0%)’이라고 한 곳은 20.5%였다. 영업이익 전망치도 마찬가지여서 ‘1~10% 상승’이 가장 많은 51.2%를 차지했고 ‘지난해 수준(0%)’이라고 한 기업도 20.9%나 나왔다.
/김영필·강도원기자 susopa@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