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이신우 칼럼] 예수의 수사학

질문자를 되레 답변자로 자리바꿔 상대방의 질의 의도를 무력화하라









예수 시절 유대교 성전을 지키는 제사장 집단과 바리새인들, 로마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헤롯당원은 서로 대립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공동의 적인 예수를 제거하려는 점에서는 일심동체였다. 교묘한 질문을 던져 함정에 빠뜨리려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당원들이 예수에게 물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우리가 바칠까요, 말까요?"

유대인은 이민족 지배자에게 세금을 내는 것에 부정적이었다. 세금을 내는 자체가 하나님 아닌 이방인에게 충성을 표시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니 예수가 세금을 내라고 답하면 대중이 예수를 욕할 것이요, 내지 말라면 로마 당국에 고발당할 빌미가 된다. 그런 판에 이들은 바칠까 말까의 양자택일까지 강요했다.

그들의 속셈을 꿰뚫어본 예수가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고 하자 그들이 은화 하나를 건넸다.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는 예수의 물음에 그들은 "가이사의 것"이라고 말했다. 예수는 바치라-말라의 선택 대신 (보라, 이것은 하나님의 것이 아니다라며) 세속과 신성을 분리해버린다. 자연히 택일할 이유도 사라진다. "그렇다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어느 날 예수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계셨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에게 따져 물었다. "당신은 누구의 권한으로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는가."

예수가 되받았다. "나도 묻겠다. 요한이 세례를 주는 것은 누구에게서 온 권한인가. 하늘인가 사람인가."

그들은 갑자기 궁지에 몰렸다. 하늘이라고 하면 왜 요한을 믿지 않느냐고 질책할 것이고 사람이라고 하면 요한을 하나님의 예언자로 굳게 믿고 있는 대중이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모르겠다며 물러섰다.

여기서 문제의 본질은 누가 권한을 줬는가다. 그런데도 예수는 거기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갑자기 세례 요한의 경우를 꺼내든다. 그런 다음 질문자를 엉뚱하게 문제에 답하는 자로 만들어 버린다. 대답을 못하자 "그렇다면 나도 너희의 물음에 답하지 않겠다"고 퉁친다.

예수는 이처럼 문제에 봉착하면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고 다른 성질의 것으로 바꿔버린다. 덕분에 문제 속에 숨어 있는 함정을 피해나갈 수 있었다.

얼마 전 국회 국감장에서 임수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허준영 자유총연맹 회장에게 물었다. "제가 종북입니까?" 그러자 허 회장은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연구해 보겠습니다"라며 얼버무렸다.

아니라고 하면 임 의원 앞에서 허약한 모습을 내보이는 것이요, 그렇다고 하면 당장 고소 고발하겠다며 난리법석일 테니 당혹해하는 모습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예수라면 어땠을까. "임 의원은 어떻게 생각하나. 본인의 정체성 문제이니 나보다 더 잘 알 것 아닌가."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달 말 기자들로부터 "대선 출마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일고의 가치도 없다. 지금 내가 맡은 직무에 충실하겠다"며 "총리 임무를 수행하기에도 바쁘다"고 답했다. 황 총리의 이 답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의 허점이 보인다. 그럼 바쁜 총리직에서 벗어나면?

황 총리는 이런 질문을 그저 뚱딴지같은 소리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민심의 강 한구석에 보이지 않는 흐름이 있기에 기자들로부터 그런 질문이 나오는 것이다. 강물이 둑에 막히면 물은 스스로 다른 길을 찾아나서는 법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이 같은 성격의 질문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황 총리는 이제 자신의 어법에 보다 신중해야 한다. 질문마다 가능한 한 정면으로 맞닥뜨리지 말고 때에 따라서는 질문과 답변을 도치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매스컴과 정치판의 야수들로부터 날아오는 의심스러운 화살을 피해나갈 뿐 아니라, 스스로도 쓸데없는 올무를 미리 쳐놓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이신우 논설실장 shinwo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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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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