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보험

가계살림 팍팍...보험 깨는 서민 빠르게 는다

"하루 벌어 하루 먹기도 힘들다"...손해 크지만 손절매

생보사 해지환급·효력상실환급금 사상 첫 20조 넘어

보험사 "보험 계약 유지 권하기도 어려운 상황" 토로

직장인 김병훈(가명)씨는 지난 5년 동안 가입했던 종신보험을 얼마 전 해지했다. 회사가 조만간 구조조정을 실시한다는 이야기가 나도는 상황에서 본인이 죽은 후에나 보험금이 나오는 종신보험 유지 필요성이 약해진 탓이다. 김씨는 “언제 회사에서 쫓겨날지 모르는 판에 한 달에 30만원이 넘는 돈을 보험료로 꼬박꼬박 납부하기 버거웠다”며 “해지환급금이 지금까지 낸 보험료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아 손해가 막심했지만 매달 나가는 보험료라도 줄이자는 생각에 사실상 ‘손절매’ 했다”고 밝혔다.

계속되는 불경기로 보험계약을 깨거나 보험료 미납으로 계약을 해지 당하는 이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미래를 준비하기는커녕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버거운 대한민국 경제의 민낯이다.



3일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생명보험사 고객의 해지환급금과 효력상실환급금을 합한 금액이 사상 처음으로 20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해지환급금은 18조4,651억원으로 전년의 17조1,271억원 대비 1조3,000억원 이상 늘었으며 해지 건수 또한 438만건으로 전년의 425만건을 가뿐히 넘어섰다.


보험료를 2개월 이상 미납해 효력 상실된 계약을 대상으로 한 효력상실환급금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효력상실환급금은 지난해 1조6,979억원을 기록하며 전년의 1조7,770억원에 비해 오히려 줄었다. 문제는 건수다. 지난해 188만건으로 전년의 150만건 대비 38만건이나 늘었다. 해지 건수가 대폭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환급금 규모 자체는 줄었다는 점에서 소규모 계약을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서민들의 삶이 어려워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보험 계약자는 효력 상실된 계약을 되살릴 수 있기는 하지만 2년내에 이 같은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경우 효력상실환급금으로만 돌려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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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력상실환급금의 증가세 또한 가파르다. 지난해 11월 127만건에서 한 달 사이에 무려 61만건이나 늘었으며 올 들어서는 1월 한 달간 증가 건수가 83만건으로 지난해의 절반에 육박한다. 그만큼 보험을 해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렇게 해지환급금과 효력상실환급금을 합한 금액은 역대최고치인 20조1,630억원으로 지난해 생보사들이 올린 보험영업수익 84조2,047억원의 4분의1 수준이다.

보험은 주요 금융 상품 중 가장 마지막에 해지하는 상품이라는 점에서 국내 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지적이다. 실제 보험 상품은 사업비를 제하고 남은 돈을 운용해 고객에게 돌려준다는 점에서 중간 해지시 손해가 막심한 구조다. 회사별로 다르기는 하지만 종신보험의 경우 1년치 보험료 이상을 사업비로 떼가며 저축보험 상품 또한 3개월치가량을 사업비로 징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시이율이 2%대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10년 이상 가입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낸 보험료도 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같은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보험을 해지한다는 것은 그만큼 가계경제가 팍팍해졌다는 의미다.

보험사 관계자는 “일선 영업점 이야기를 들어보더라도 자영업자나 서민층을 중심으로 보험계약을 해지하려는 이들이 계속 늘고 있다”며 “보험을 해지하면 무조건 손해라고 만류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기도 힘들다’는 이들에게 계속해서 보험계약 유지를 권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양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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