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乙 축에도 끼지 못하는 청춘

박현욱 여론독자부 차장박현욱 여론독자부 차장




꽃피는 춘삼월이건만 청춘은 봄이 아니다. 우리나라 청년 실업률은 지난 2월 기준 12.5%로 역대 가장 높았다. 30~50대 실업률의 4~5배에 달할 만큼 다른 연령대와 비교해도 유달리 심각하다. 전체 실업률을 웃도는 폭도 해마다 더욱 커지고 있음을 감안하면 고용 시장에서 청년들은 을(乙)은커녕 ‘병(丙)·정(丁)·무(戊)·기(己)…’쯤으로 봐도 틀리지 않는다.

일자리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은 자명하지만 더 살펴 들어가면 취업자 가운데 청년의 비정규직 비중이 높은 이유가 함께 작용한다. 계약직이나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청년들이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재차 실업자 신세가 되고 일자리를 다시 얻어도 도로 비정규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 10년여간 임금노동자의 비정규직 비중이 청년 연령대에서만 꾸준히 늘어난 것도 구직난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사실 비정규직은 20여년 전만 해도 잘 쓰이지 않던 용어다. 고용 안정과 고임금이 경제 성장을 거뜬히 이끌었던 1990년대 초반까지 비정규직은 보편적 현상이나 사회적 문제와는 거리가 멀었다. 신문지면은 물론 사회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잘 사용되지 않았던 용어가 글로벌 경쟁에 내몰린 기업들에 비용 절감이 최우선 과제가 된 후 고용 시장 패러다임 변화를 표현하는 기초어휘가 됐다. 그리고 이 용어가 사멸되거나 다른 낱말로 대체될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해 청년들을 숙련 노동자로 키우고 만족스러운 임금으로 유효수요가 늘면 내수가 살고 기업에도 이익이 된다는 논리를 지금 경제학개론 외에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비정규직에 문제가 많다면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회적 합의나 인식도 사실상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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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개혁이나 일자리 나눔의 당위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이로 인해 좋은 일자리가 쏟아져 ‘비정규직의 덫’에서 벗어날 것이라 곧이곧대로 믿을 ‘청년 병정무기…’들은 거의 없다. 비정규직이 선호되는 한 경제가 나아져도 비정규직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가장 성공적인 노동개혁으로 평가받는 바세나르협약을 끌어낸 네덜란드조차 청년들 가운데 파트타임 같은 비정규직이 절반에 육박한다. 탄탄한 사회안전망과 노동 시장의 유연성이 높이 칭송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비정규직 인생을 살아가는 그 나라 청춘들도 안정적 일자리를 간절히 꿈꾼다.

비정규직이 보편화한 현상이라면 이제 이를 인정하고 문제의 해답을 찾아 나서는 것이 낫다.

선거의 계절에 여야 후보마다 숫자놀음 같은 수천 개, 수만 개의 일자리 창출 공약을 쏟아내지만 청년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4대 보험이나마 제대로 가입할 수 있게 비정규직 문제점을 고치고자 하는 관심이다. 그래야 그들이 을 정도는 될 수 있으니까.

hwpark@sedaily.com

박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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