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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계 빅 아이디어] 대(對) 슈퍼박테리아 신무기 外





▲ 대(對) 슈퍼박테리아 신무기


2015년 과학자들은 30년 만에 처음으로 새로운 항생물질을 발견했다. ‘테익소박틴(teixobactin)’으로 명명된 이 물질은 메티실린 내성황색포도상구균(MRSA) 등 다수의 다제내성균에 효과가 있다.

병원균들이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키워가고 있는 위기의 시대에 거둔 값진 승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진정한 승리는 테익소박틴의 발견에 쓰인 도구일지도 모른다.

사실 항생제들은 자연계의 박테리아로부터 발견된다. 많은 박테리아를 실험할수록 더 많은 새로운 항생제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큰 장애물이 하나 있다. 지구 미생물의 99%가 실험실 접시에서 배양할 수 없다는 점이다. 바로 이 난제를 해결코자 미국 노스이스턴대학 연구팀이 ‘아이칩(iChip)’이라는 신무기를 개발했다.

이는 자연에서 얻은 흙이나 물 표본 속에서 미생물을 키우는 신개념 배양장치다. 미생물의 서식지와 동일한 조건을 재현하는 것.

연구자들은 그렇게 아이칩 속의 박테리아가 만들어낸 항생제를 분리, 효과를 검증하면 된다. 지금껏 연구팀은 아이칩을 활용, 수천 종의 박테리아를 배양했다. 그리고 25종의 새 항생제 후보물질을 발견했다. 연구팀의 한 명이 공동 설립한 노보바이오틱에 따르면 약 2년 후에 첫 후보물질이 임상시험에 돌입할 수 있다고 한다. 슈퍼박테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앞으로도 무수한 난관을 극복해야겠지만 아이칩 덕분에 굳게 잠겼던 빗장이 풀렸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 슈퍼소재 전성 시대

소재의 원자배열을 원래의 3차원에서 2차원으로 바꾸면 완전히 새로운 물성을 부여할 수 있다. 평범했던 원소들이 갖고 있던 놀라운 잠재력을 끄집어 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2차원 혁명은 10여년 전 그래핀의 발견으로 시작됐다. 그동안 실용성 확보에 애를 먹어왔지만 부단한 연구를 통해 그래핀을 활용한 초고밀도 플래시 메모리와 광대역 방사능 탐지기, 정밀 이미징 의료기기 등을 개발하기 직전 단계에 있다.

여타 2차원 소재의 물성은 더 경이로울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미 실리콘과 인, 게르마늄, 주석의 2차원 소재인 실리신(silicene), 포스포린(phosphorene), 게르마닌(germanene), 스타닌(stanene)이 만들어진 상태다. 이중 실리신과 포스포린의 경우 원자 크기의 트랜지스터를 위한 최적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과학계의 올해 목표는 이들 2차원 소재를 적층하거나 혼합해 최고의 성능을 구현하는 것이다.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LBNL) 팀의 경우 레이저 역할을 수행할 2D 시트 개발을 시작하기도 했다.

그 적용 범위는 양자 컴퓨팅에서 3D 디스플레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 헬스케어 전구

자연계에서 빛보다 더 강한 힘은 아마 없을 것이다. 빛은 인간의 세포는 물론 기분과 신진대사에도 영향을 준다. 청색 파장은 뇌의 코르티솔 호르몬 분비를 유발, 잠에서 깨어나게 하며 적색 파장은 멜라토닌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시켜 숙면에 도움을 준다. 각각 햇빛과 달빛처럼 말이다. 인간은 이처럼 빛에 맞춰 수면주기를 정해왔지만 전구와 스마트폰의 발명으로 그 주기가 변하고 말았다.

지난 100년간의 인공 광선 사용으로 예기치 못한 피해를 입은 셈이다. 이에 맞서 현재 일단의 엔지니어들이 전구를 활용한 수면주기의 원상복구에 나섰다.

전구 제조사인 라이트닝 사이언스의 설립자 프레드 맥시크는 일주기(circadian rhythm)가 깨질 경우 비만과 우울증, 심지어 암 발병 위험도 높아진다고 강조한다. “다행히 이제 우리는 단순한 조명 이상의 전구를 만들 능력을 갖췄습니다.”

이런 전구들의 사용은 이미 시작했다. 일례로 지난해 워싱턴주 렌턴 교육구의 학교에 색상 조절이 가능한 LED가 설치됐다. 쉬는시간 동안 들뜬 학생들을 진정시킬 적색부터 수업의 집중력을 높여주는 청색까지 색상 제어가 가능하다. 또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 구단은 홈구장에 LED를 설치, 야간경기와 낮 경기의 차이를 최소화하기도 했다.


뉴욕 양키스가 올해 그 뒤를 따를 예정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NASA도 올해 ISS의 전구를 교체한다. ISS에선 매 90분마다 해가 뜨고, 지기 때문에 우주비행사들이 만성 불면증에 시달린다. 새로 채용될 전구는 활동시간에는 청색 파장을 내뿜다가 취침시간이 되면 적색으로 바뀐다. 라이트닝 사이언스는 1월 중 이와 유사한 기능의 가정용 LED 전구 ‘제네시스’를 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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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킬러 로봇 브레이커

작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 캠퍼스의 컴퓨터 공학자 스튜어트 러셀 박사는 무인 살상 무기의 금지를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일반인들에게 그의 주장은 시기상조로 느껴질 수 있다. 스타트렉의 페이저건과 스타워즈의 거대 전투위성 데스스타를 금지하자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인간이 벌인 ‘무인 전쟁’의 역사는 의외로 길다. 지뢰도 일종의 로봇이다. 열추적 미사일 마찬가지다. 또한 인류는 스스로의 생각 이상으로 전쟁을 철저히 무인화하고 있다.

“지극히 효율적이고 신뢰성 높은 무기를 원합니까? 군대가 그런 무기에 최우선 순위를 둔다면 지금도 18개월 내에 지능형 무인 병기의 양산이 가능합니다.”

무인 살상 무기는 이미 현존한다. 대한민국에서 만든 무인 경계 기관총 ‘수퍼 이지스 II’만 해도 스스로 목표를 탐지, 조준한다. 물론 격발에는 인간의 허가가 필요하지만 이 허가는 의무라기보다 권고에 가깝다. 러셀 박사는 공개서한에서 무인 병기가 미래의 AK 소총이 될 것이라 주장했다. 저렴하고, 많이 보급돼 종국에는 전쟁의 규칙까지 바꿔놓을 것이라는 말이다.

“인공지능 무인 병기는 소수의 사람들이 전 세계에 미칠 수 있는 힘의 크기를 바꿀 겁니다. 훨씬 적은 돈과 인프라로도 핵무기와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무인병기 예찬론자들은 인간 대신 로봇을 전쟁에 투입하면 인명피해를 대폭 줄일 수 있음을 강조한다. 반면 공개서한에 서명한 2만명에 가까운 과학자들은 무인병기가 이득에 비해 비싼 비용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올 하반기 러셀 박사는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 문제 대한 입법부의 개입과 국제법 개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유엔과 세계경제포럼에서의 미팅도 잡혀 있다. 이를 통해 인공지능 무인병기에도 생물학 무기와 동일한 수준의 규제를 가하고자 한다.

“처음을 막는 것이 중요합니다. 킬러 인공지능이 한번 나타나면 그들에게 후퇴란 없을 것이기 때문이죠.”



▲ 크리스퍼 혁명

유전자 편집 기법

‘크리스퍼(CRISPR)’는 그동안 의료 혁명을 이끌고, 인류의 기아를 끝장낼 기술로 알려져 왔다. 실제로도 이 기술 덕분에 과학자들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밀하게 DNA를 자르고 붙일 수 있게 됐다. 또 현존하는 이른바 유전자 가위 가운데 속도면에서 월등히 앞선다.

때문에 크리스퍼가 소개된 지 3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수천 명의 과학자가 이 기법을 채택하고 있으며 근육질의 비글, 이식용 인간 장기를 지닌 돼지 등이 태어났다. 이외에도 과거 수년은 걸릴 것으로 예견됐던 유전자 조작 연구가 몇 달 만에 가능해졌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밀의 글루텐 민감도를 줄인 미네소타대학의 유전공학자 댄 보이타스는 이렇게 말한다.

“크리스퍼는 정말 빨라요. 1년이면 구상 중인 식물을 실제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크리스퍼 기반 신생기업들은 지금껏 수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관련 특허도 2013년 43건에서 지난해 292건으로 폭증했다.

이들이 연구 중인 뿔이 없는 젖소, 알레르기 없는 땅콩 등이 출시되려면 수년은 더 걸리겠지만 올해는 크리스퍼로 인해 삶의 혁신이 시작된 해로 기억될 것이다.

다제(多劑) 내성균 - 한 종류 이상의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

그래핀 (graphene) - 한 겹의 탄소 원자 막 형태의 나노 소재. 두께가 0.35나노미터(㎚)에 불과한 현존하는 가장 얇은 소재이자 강도가 강철의 200배 이상인 가장 강한 소재다. 전기전도성 등 전기적·물리적 특성도 뛰어나 ‘꿈의 소재’로도 불린다.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편집팀

양철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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