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마켓

사우디-이란 전쟁터 된 원유시장...'유가 회복 불씨' 꺼져간다

17일 산유국 동결 논의에

이란·리비아 "참석 안해"

사우디는 이란 원유 선박

자국·바레인港 이용 금지

투기세력 이탈 조짐 역력

올들어 50% 폭등한 유가

지난 2주새 14% 곤두박질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 글로벌 석유시장 쟁탈전이 달아오르면서 주요 산유국의 산유량 동결이 물 건너갈 가능성이 커졌다. 중동의 양대 맹주이자 앙숙인 이들 국가가 역내 패권 유지를 위해 석유시장을 대리 전쟁터로 삼으면서 국제유가의 하락 압력도 또다시 높아지고 있다.

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5월 인도분은 지난주 마지막 거래일보다 3.0% 하락한 배럴당 35.7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 선물시장의 6월 인도분 브렌트유도 2.5% 떨어진 37.69달러로 마감했다. 두 지수 모두 지난달 3일 이후 1개월 만에 최저치다.


이날 미국 사우스다코타 지역에서 원유 유출 사고가 발생해 미국과 캐나다를 잇는 키스톤 송유관이 오는 8일까지 폐쇄된다는 호재가 전해졌지만 유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국제유가는 올 들어 지난달 중순까지 50% 이상 폭등했다가 지난 2주간 14%나 추락했다. 이 같은 유가 하락은 17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주요 산유국 회의에서 생산량 동결 합의가 불발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번 회의에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13개국을 비롯해 러시아 등 총 15~16개국이 참석할 예정이지만 이란과 리비아는 동결 논의에 불참을 선언했다. 1일 사우디의 모하마드 빈 살만 왕자는 “이란이 동참하지 않을 경우 원유 생산량을 동결하지 않겠다”며 이란을 압박했다. 하지만 이틀 뒤인 3일 비잔 장게네 이란 석유장관은 “서방의 경제제재 이전 기준에 도달할 때까지 산유량과 수출량을 늘릴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사우디는 미국 셰일 업체를 고사시키기 위해 유가 하락을 주도한 데 이어 이란의 원유시장 복귀를 막기 위해 또 한번의 석유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사우디는 이란산 원유를 실은 선박이 사우디와 바레인 항구를 이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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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우디는 서방의 경제제재 이전 이란의 유럽 수출 루트였던 이집트의 수메드 송유관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양국은 국방력이나 국토 면적 등은 비슷하지만 인구는 이란이 2.5배나 많다. 이란의 원유 수출이 원상회복되면 사우디 국력을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에 불과하다. 사우디가 이란이 증산하더라도 생산량을 동결하며 시장점유율을 뺏기는 사태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뜻이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동안 유가 상승은 산유량 동결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라며 “공급과잉 지속 등 펀더멘털이 바뀌지 않은 가운데 합의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유가가 현재 수준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의 생산량도 하루 1,091만배럴로 1년 전보다 2.1% 증가하며 구소련 붕괴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산유량 동결 전망에 회의론에 커지자 그동안 단기 랠리를 이끌었던 투기세력이 이탈할 조짐을 보이는 것도 유가 하락 요인이다.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현재 WTI 선물옵션 순매수(매수-매도) 계약 규모는 일주일 전보다 6.3% 줄어든 22만1,016건으로 1월 초 수준으로 돌아갔다. 같은 기간 브렌트유 가격 하락에 베팅한 선물옵션 계약 규모는 4만7,806건으로 13% 급증한 반면 상승 베팅 계약 규모는 40만4,803건으로 0.3% 줄었다.

물론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의 석유 시추공 감소 등을 이유로 유가 회복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RBC캐피털의 경우 나이지리아, 북부 이라크의 생산 차질에 공급과잉이 일부 해소되고 있어 오는 4·4분기에 유가가 배럴당 50달러대로 올라설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일부 반등 가능성에도 큰 폭의 상승은 어렵다는 분석이 대다수다. 블룸버그가 지난달 말 월가 주요 투자은행(IB)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연평균 WTI 가격 중간값은 배럴당 39.5달러에 머물렀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aily.com

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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