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이란 '95% 선박금융' 요청하는데...韓 조선사 '80% 제한'에 발목

한국 조선, 이란 수주도 '그림의 떡'

中 '내부거래'로 1분기 버티고

정부 파격지원 업고 시장 선점

韓은 눈 뜨고 수주 놓칠 판

수주가뭄 따른 선가 하락도 악재

내년부턴 도크 비는 상황 올수도





“1~2월에 비해 3월 들어서는 그나마 가뭄에 콩 나듯 선박 발주가 나왔지만 중국이 발주하고 중국이 수주하는 사실상 ‘내부거래’였습니다. 한국 조선사들이 끼어들 여지가 애초에 없었습니다.”


세계 최고 위상을 자랑하던 한국 조선사들이 올해 1·4분기 초라한 수주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대형 3사뿐 아니라 수십곳의 중소형 조선소가 수주한 배는 총 8척. 현대삼호중공업이 15만8,000DWT급(3만CGT) 유조선 4척과 현대미포조선이 5만DWT급(2만4,496CGT) 화학제품운반선 1척을 수주했다. 소형 조선사인 연수중공업이 우림해운으로부터 수주한 소형(6,600DWT급) 화학제품운반선 3척을 보태도 채 10척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중국은 자국에서 발주되는 선박 수주로 1·4분기를 버텼다. 중국 조선사가 1~3월 수주한 35척 중 3척을 제외하고는 모두 중국 선사가 발주한 배들이었다. 특히 초상국에너지운수(CMES)와 차이나오어쉬핑(COS)이 지난달 말 40만톤급 철광석 운반선 20척을 상하이외고교 등 중국 내 조선소 4곳에 나눠서 발주했다. 브라질 철광석 회사인 발레와 장기 철광석 운반 계약을 하면서 필요한 운송선을 자국 조선소에 일괄 발주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뭄에 단비가 돼줄 이란 시장에 전 세계 조선소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지만 정부의 파격 지원을 받는 중국 조선소들이 선점할 태세다. 지난해 국제 제재가 풀린 이란은 유럽·아시아 항로로 자국산 원유를 실어나르기 위해 노후화한 선박의 현대화를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지 최대 국영해운사인 IRISL은 1만8,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대)급 초대형 선박 위주로 총 60만TEU를 발주한다고 발표했으며 국영 탱커선사 NITC도 25억달러(약 2조8,843억원)를 신규 선박 발주에 투입한다고 밝혔다. 조선업계는 오는 2022년까지 두 회사의 합계 발주량이 80억~125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자금이 부족한 이란 선사가 선박 건조비용의 최대 95%까지 선박금융을 알선해달라고 조선사들에 요청하면서 국내 업계는 눈뜨고 수주 대목을 놓칠 판이다. 중국은 자국 금융기관이 선박금융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조선사들에도 정부가 나서 세금환급 형태로 자금을 지원한다. 반면 한국은 정책금융기관의 선박금융 지원비율을 80%로 제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규정에 묶여 있다. 업계 관계자는 “리스크를 염려하는 국내외 은행들도 금융지원에 선뜻 나서지 않는다”며 “국내 업계는 그나마 액화천연가스(LNG)선 같은 고부가 선박 건조기술이 우위에 있다는 점에 희망을 거는 형편”이라고 토로했다.


현재 현대중공업은 IRISL과 1만4,500TEU급 대형 컨테이너선 3척 건조에 대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아직까지 협의 중인 단계”라며 “수주 가능성은 아직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워낙 중국 조선사들이 파격적인 조건으로 수주 공세에 나서고 있어 이란 선사와의 협상이 쉽지 않다는 게 조선사 영업 담당자들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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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선가 하락도 지속되고 있어 저가 수주를 피하려는 국내 조선사들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초대형원유운반선(VLCC)은 2월에 비해 척당 150만달러가 하락했다. LNG선도 2월에 비해 3월 들어 척당 100만달러가 하락했으며 컨테이너선의 경우 주요 선종에서 모두 2월에 비해 척당 50만달러 이상 가격이 떨어졌다.

수주 가뭄이 지속되면서 조선소 도크가 빌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3월 말 기준 국가별 수주잔량은 중국 3,756만CGT, 한국 2,759만CGT, 일본 2,144만CGT 순이었다. 이 같은 한국의 수주잔량은 2004년 3월 말의 2,752만CGT 이후 12년 만의 최저치이다.

조선소별로 1~2년가량의 일감이 남아 있지만 올해 이 같은 상태가 지속될 경우 내년부터 일부 도크가 비는 상황이 불가피하다. 특히 올해 해양플랜트가 대규모로 인도되고 나서 후속 수주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가다가는 조선업계에서 근로자들의 대량 실직이 현실화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든다”고 말했다. 대우조선 노조와 삼성중 노동자협의회는 “양대 조선사업장에서 가장 많은 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해양플랜트 선박들이 6월부터 선주 측에 차례로 인도되면서 추가 해양플랜트 수주가 없으면 프로젝트별로 매달려 있던 수천명의 근로자들이 해고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양측은 7일 오전10시 거제시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에 ‘고용위기지역’ 지정 등을 촉구할 예정이다.

/이혜진·이종혁기자 hasim@sedaily.com

이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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