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제2의 서킷브레이커

홍병문 베이징 특파원홍병문 베이징 특파원




올 초 중국 당국이 증시에서 벌인 정책실험 하나가 전 세계 금융시장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지수가 기준선을 넘어 폭락하면 주식 거래를 일시 중지시키는 ‘서킷브레이커’다. 증시의 급격한 변동성을 막겠다고 도입한 이 제도는 안전판이 되기는커녕 도리어 대혼란의 주범이 됐다. 증시가 급락할 기미를 보이자 자신이 보유한 주식이 묶일 것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서둘러 한꺼번에 주식을 팔아치우면서 시장은 패닉 상태에 빠졌고 세계 증권 시장에 연쇄 도미노 급락 사태를 몰고 왔다.


서킷브레이커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인데 중국이 또 한 차례 파격적인 정책 실험에 나설 예정이다. 부실기업의 빚을 주식으로 바꿔주는 ‘부실채권 출자전환(debt-for-equity swaps)’ 방안이다. 기업들이 안고 있는 악성 채무를 주식으로 바꿔 부채 비율을 줄이는 이 방안은 중국에서 이미 과거 한차례 도입됐었다. 아시아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중국 당국은 기업 부채 문제가 심각해지자 부실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해 정리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다행히 5년여에 걸친 이 파격적인 실험은 불안했던 금융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실험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출자 전환 물량을 인수할 자산관리회사를 네 곳 세워 주식을 사들이게 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첫 번째 성공 요인이다. 부실 가능성이 큰 주식이 시장에서 소화되지 못해 유동성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정부가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두 번째는 사실상 좀비기업이나 마찬가지인 회생불능 부실기업의 정리와 구조조정을 병행한 점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 체질은 물론 중국 경제의 내실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관련기사



또 다른 요인은 2000년대 초반 전 세계에 불어온 닷컴 열풍과 경제 훈풍 바람이 절묘하게 맞물렸다는 점이다. 글로벌 경기가 살아나면서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 기업의 실적도 회복되기 시작했고 도산 위기를 맞았던 부실기업은 자금난에서 벗어나 정상 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경제소사에서나 겨우 찾아낼 수 있는 부실채권 출자전환 방안 카드를 중국 정부가 10년여 만에 다시 꺼내들 가능성이 짙어졌다. 중국 안팎의 주요 매체들은 당국이 이르면 이달 중에 부실채권 출자전환 방안을 승인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초기 출자전환 규모는 대략 1조위안(약 180조원) 정도로 예상된다. 물론 규모는 상황에 따라 더 늘어날 수 있다. 일각에서는 2~3조위안 수준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난 1990년대 말 1차 실험의 출자전환 규모가 1조위안 조금 넘은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이번 2차 실험은 2조위안 이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 금융시장은 우려 반 기대 반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중국 증시에서는 이번 실험이 제2의 서킷브레이커 사태로 비화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가뜩이나 기업 부채 문제가 중국 경제와 증시의 시한폭탄으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이들 부실기업 부채를 주식으로 전환한다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시중 대형은행마저 부실기업의 신용 리스크가 너무 커 시장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다고 지적하고 있다. 좀비 기업의 부실을 투자자에게 덮어씌우려 한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나온다.

1차 실험 때와는 중국 경제 상황이 질적으로 다른 점도 우려 요인이다. 1990년대 말 중국은 글로벌 경제 위기 중심에서 한발 벗어나 있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중국 경제 규모도 주요2개국(G2)으로 불릴 만큼 확대된데다 부실기업 규모가 1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이번 실험에 앞서 여러 가지 조언을 내놓고 있다. 우선 시장에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보완책을 미리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부실기업들의 엄밀한 선별관리도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G2 경제 규모에 맞는 정책 투명성과 금융시장 신뢰확보도 이뤄져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중국의 이번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나기를 바라고 있다. 제2의 서킷브레이커 사태로 귀결되면 그 파장은 중국은 물론 세계 경제에 상상하기 힘든 파장을 몰고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aily.co.kr

홍병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