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준법 투쟁' 빌미로 승객들 44분간 '볼모'

노조 소속 기장, 출발전 평소 20분 브리핑을 1시간 끌어

외국인 기장 "이유가 뭐냐" 이의 제기하자 언성 높여

항공기 이륙 40분 지연 "승객 안전 침해" 우려 목소리



“지금 뭘 하는 건지 설명해달라.”

“정당히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방해하지 마라.”


지난 1일 오전 인천공항 내 대한항공 조종사 브리핑(항공기 출발 전 경로나 기상 정보 등을 점검하는 것)룸에서는 조종사들이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일이 발생했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위원장인 A 기장과 외국인인 B기장이 주인공이었다.

사연은 이랬다. 이날 규정대로 A 기장은 B 기장, C 부기장과 함께 오전11시20분부터 브리핑을 시작했다. 그런데 A 기장의 행동이 평소와 좀 달랐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A 기장은 다른 조종사들과 협업해 진행해야 할 브리핑을 혼잣말로 진행하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또 운항에 나설 항공편이 B747-8 기종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기종인 B747-400 기종의 운항 매뉴얼을 검토하는 등 일부러 시간을 끄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운항 중 대체공항 지정 여부에 대해서도 B 기장이 관련 내용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협의하지 않고 직접 확인하겠다며 나서 브리핑 시간이 길어졌다. 보통 20여분 만에 종료되는 브리핑은 1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급기야 상황을 이상하게 여긴 B 기장이 나섰다. B 기장은 A 기장에게 “지금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려달라”고 물었다. 하지만 A 기장은 “브리핑 중”이라고 언성을 높이며 다툼이 일어났다.

B 기장은 A 기장과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판단, 회사에 자신을 다른 조종사로 교체해달라고 요청했고 대한항공은 즉각 다른 기장으로 교체했다.

이 과정에서 오후1시5분 인천을 출발해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향할 예정이었던 KE905편은 지연돼 오후1시49분에야 이륙했다.

볼모로 잡힌 승객 216명은 영문도 모른 채 44분을 기다려야 했다.


최근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의 준법 투쟁으로 노조 소속 조종사와 비노조원 조종사 간의 다툼이 발생, 승객들이 불편을 겪는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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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인 B 기장은 국내 항공사에서 20여년, 대한항공에서 16년을 근무한 베테랑이었다. 그는 이번 사태와 관련, 회사 자체 조사 과정에서 “20여년간 한국 항공사에서 근무하면서 처음 겪는 황당한 일”이라며 “이번 사태가 안전 운항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 조종사 교체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측은 이번 사태가 단순히 조종사들 간의 다툼이 아니라 항공기 승객 안전을 책임져야 할 조종사의 책임 중 하나인 승무자원관리(CRM)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종사들은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협력, 승객 안전을 책임지도록 하고 있다.

조종사 간 불통은 항공 안전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실제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달 중순 아랍에미리트 국적의 ‘플라이두바이’는 조종사 간 언쟁이 사고에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는 지난해 임금 협상에서 연봉 평균 5,000만원 인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협상이 결렬되자 노조는 지난 2월 11년 만에 파업을 가결하고 ‘준법투쟁 명령 1호’를 발령, 브리핑 시간 준수 등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A 기장의 이번 행위 역시 이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비노조원이자 외국인인 B 기장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실제로 조종사 노조 소속 박모 기장은 2월 준법 투쟁 방침에 따라 ‘24시간 내 12시간 근무’ 규정에 어긋난다며 운항을 거부하다 파면당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독단적으로 브리핑을 준비하고 의도적으로 시간을 끈 A 기장 때문”이라며 “태업을 넘어 적극적으로 업무활동을 방해하는 ‘사보타지’를 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각도로 경위를 조사해 고의성이 확인될 경우 추후 사규에 따라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A 기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정해진 규정에 따라 정당하게 브리핑을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17분 정도 항공기가 지연됐다”며 “나머지 27분은 활주로 사정으로 이륙 순서가 뒤로 밀리면서 늦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회사가 지나치게 빡빡하게 브리핑 시간을 잡아 항공기가 늦어진 것을 조종사들의 업무 방해 때문인 것처럼 몰고 있다”며 “조종사들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강도원기자 theone@sedaily.com

강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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