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에서 서쪽으로 칠패로를 따라가다 보면 염천교사거리 한 귀퉁이에 ‘칠패(七牌)시장터’ 표석이 있다. 옹기 위에 고무신이 한 짝 올려진 고풍스러운 모습이다. 조선 시대 종로·이현과 함께 한양(서울)의 3대 시장인 칠패시장이 있던 자리다. 칠패시장은 이후 남대문시장으로 발전했다. 조선 시대에 한양도성은 훈련도감·어영청·금위영의 3군부가 분담해 방어했는데 그중 어영청의 일곱 번째 구역(7패)이라는 의미에서 시장이름이 ‘칠패시장’이었다. 덧붙여 전통시대에 우리나라의 번호를 매기는 단위는 ‘패’였다. 그래서 일반인은 신분증명서인 ‘호패(號牌)’를 차고 다녔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식 ‘조(組)’에 밀린다. ‘패’는 현재는 패거리·깡패 등 부정적인 뜻으로 남아 있다. /글·사진=최수문기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