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포럼]문화는 나랏일 아니라고 생각하나

정준모(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선거철이다. 그래서 지금은 잠시나마 국민이 ‘갑’이다. 거들먹거리던 정치인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정당들은 모두가 실천만 되면 지상낙원이 따로 없을 공약들을 내놓는다. 물론 그 공약이 ‘빌 공(空)’자 공약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고 이번에는 ‘혹시나’ 하고 기대를 했다가 ‘역시나’ 하고 실망을 거듭했지만 그럼에도 또 한 번 믿어보고 싶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많은 공약 중에서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것이 문화와 예술과 관련한 공약이다. 문화는 나랏일이 아니고 예술은 정치가 손을 놓아도 되는 것으로 아는 모양이다. 어느 정당이고 물론 체면치레용 공약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 공약의 거개가 이미 철 지난 내용으로 청년예술가 일자리 창출, 문화예술가들의 복지 확대, 국민 문화 향수 확대 등으로 모든 정당이 서로 다를 것 없는 정책집의 종이가 아까울 정도다.


게다가 그나마도 구호성인 까닭에 구체적인 실천방안은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우리나라 정당의 소속원들은 스스로 정당을 진보니 보수니 하면서 규정하고 있지만 문화정책에서는 대동소이하다. 일례로 진보적 정당의 문화정책은 문화수혜자들의 폭을 넓히는 데 중점을 두는 반면 보수적 정당은 문화의 질을 높이는 데 방점을 둔다. 그런데 우리 정당들은 모두 나눠주기식 지원정책과 문화의 개념이나 목표 등은 논외로 치고 문화와 예술이라는 말만 사용하면 모두 문화정책이 된다고 착각하고 있어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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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부 들어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는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이다. 물론 창조경제를 두고 그 개념을 아직 모르겠다고 하지만 필자에게는 ‘문화융성’도 모호하기가 마찬가지다. 어떤 문화를 융성하겠다는 것인지 모르지만 이번 선거의 집권당 공약집에서도 여전히 문화를 융성시킬 구체적인 방안은 안 보인다. 또 문화 산업과 문화 콘텐츠와 관련한 구체적인 정책 하나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야당은 문화예술 종사자들의 고용과 복지에 방점을 찍고 있다. 또 공공 부문의 문화 사업 확대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또 다른 야당의 이번 총선 정책자료집에는 문화 관련 항목이 아예 없다.

국민 통합을 외치지만 문화란 국가의 정체성과 국민을 통합시키는 매우 중요한 기제이다. 향후 저성장·고령화·다민족 국가로의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문화’는 근대국가의 ‘민족’ 개념을 대체한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국민 통합을 외치면서 문화와 예술에 대해 이렇다 할 문화에 대한 비전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고도 성장 시대의 미망에 빠져 토목공사형 문화시설 확충이나 공짜로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문화 복지라고 착각하고 있다. 이제라도 우리에게 닥친 저성장 고령화 시대를 극복하려면 고도 성장 시대의 나눠주기식 문화정책으로 허약해진 문화예술계의 체질 개선과 정부의 퍼주기식 재정 지원 때문에 자생 능력을 잃어버린 문화예술계의 자활을 도와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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