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시계 브랜드 이야기 (19)] 세이코, 20세기 시계 산업 혁명가

1900년대 초 일본 도쿄에 있던 세이코 매뉴팩처 모습. 세이코는 1881년 ‘핫토리 시계점’ 상호로 창립했다. ‘세이코’로 회사명이 바뀐 건 1892년이다.1900년대 초 일본 도쿄에 있던 세이코 매뉴팩처 모습. 세이코는 1881년 ‘핫토리 시계점’ 상호로 창립했다. ‘세이코’로 회사명이 바뀐 건 1892년이다.



세이코는 모든 산업을 통틀어 그 이름만으로도 생산 제품의 질을 신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제조업체 브랜드다. 하지만 단순히 ‘품질의 왕’ 정도로만 세이코를 이해해선 곤란하다. 그간 세이코가 써내려온 발자취들을 보노라면 ‘혁신’이라는 단어로도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세계 시계사에 미친 영향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세이코가 개발한 혁신적인 제품들은 너무나 많지만, 그중 눈에 띄는 몇몇을 출시 연도별로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1969년 양산형 쿼츠 손목시계, 1975년 다기능 디지털 시계, 1982년 TV 시계, 1984년 컴퓨터 시계, 1988년 키네틱 시계, 1998년 열(熱) 발전 시계, 1999년 스프링 드라이브 시계, 2012년 GPS 솔라 시계 등이다. 몇몇 시계 브랜드들이 특정 부품에 작은 변화를 준 것 가지고 마치 완전히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 양 과대 포장하는 것과 비교하면 세이코가 이룩한 놀라운 성취들은 혁신을 넘어 혁명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다.




1969년 출시된 세계 최초의 양산형 쿼츠 시계 Astron.1969년 출시된 세계 최초의 양산형 쿼츠 시계 Astron.


면면이 다 경천동지(驚天動地)할만한 제품들이지만, 세계 시계업계에 가장 충격을 준 것은 1969년 출시된 세계 최초의 양산형 쿼츠 시계 Astron이었다. Astron의 등장은 기계식 시계가 지배해왔던 기존의 시계시장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이전까지는 시계라고 하면 핸드 와인딩이냐 셀프 와인딩이냐를 먼저 물어봤지만, Astron 등장 이후에는 기계식 시계냐 쿼츠 시계냐를 물을 정도로 쿼츠 시계는 세계 시계 시장을 빠르게 잠식해 나갔다. 정확도나 내구성, 가격등에서 쿼츠 시계가 기계식 시계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쿼츠 시계와 기계식 시계는 동력원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인다. 태엽이 풀리면서 생기는 동력으로 각 파트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기계식 시계와 달리, 쿼츠 시계는 전지로부터 공급받은 전기를 시계의 동력원으로 사용한다.

쿼츠와 기계식의 장점을 모두 갖춘 스프링 드라이브 무브먼트. 기계식 시계의 특징인 로터와 쿼츠 시계의 특징인 전자 코일(3시 방향)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 1999년 출시됐다.쿼츠와 기계식의 장점을 모두 갖춘 스프링 드라이브 무브먼트. 기계식 시계의 특징인 로터와 쿼츠 시계의 특징인 전자 코일(3시 방향)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 1999년 출시됐다.


쿼츠 시계의 구동 원리는 간단하다. 무브먼트 안의 수정 진동자에 전류를 흘리면 수정 진동자는 수정의 크기와 모양에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진동하게 되는데, 이 진동을 전자회로에서 특정한 간격으로 나눠 정해진 주기마다 톱니바퀴를 움직이게 하는 식이다.


기계식 시계에선 이 과정이 기어 트레인, 이스케이프먼트 휠, 밸런스 휠등의 장치를 거쳐 아주 복잡하게 진행된다. 구조가 복잡한 만큼 상대적으로 제작에 시간이 더 많이 걸리고 내구성도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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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식 시계와 쿼츠 시계의 이런 차이는 태생적인 문제이다. 기계식 시계는 태엽이 풀리는 힘이 고르지 않아 이를 보정하는 특별한 장치를 필요로 한다. 시곗바늘을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다. 쿼츠 시계는 수정 진동자의 진동수가 거의 항상 일정해 이런 장치들이 필요하지 않다.

2012년 출시된 Seiko Astron GPS Solar SSE041J. 가장 최신의 쿼츠 기술인 자가발전형(태양광 충전) 모델이다. GPS 시간 조정 장치가 탑재돼 있어 휴대할 수 있는 시계들 중 가장 높은 신뢰도를 자랑한다.2012년 출시된 Seiko Astron GPS Solar SSE041J. 가장 최신의 쿼츠 기술인 자가발전형(태양광 충전) 모델이다. GPS 시간 조정 장치가 탑재돼 있어 휴대할 수 있는 시계들 중 가장 높은 신뢰도를 자랑한다.


쿼츠 시계는 Astron 출시 훨씬 이전부터 개발이 완료돼 있던 상태였다. 1921년 이론이 완성됐으며, 같은 해 수정 진동자도 개발이 끝났다. 1927년에는 캐나다 벨 연구소에서 세계 최초의 쿼츠 시계가 만들어져 세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의 쿼츠 시계는 진공관 구동식 전자 부품을 사용해 그 크기가 매우 컸다. 손목시계 수준까지 크기를 줄이는 건 꿈도 못 꿀 정도였다. 시간오차도 상당해 쿼츠 시계를 고안해 낸 당시의 기대 수준에 한참 못 미쳤다.

1967년에는 스위스의 시계 전자 센터(CEH·Centre Electronique Horloger) 연구소에서 세계 최초의 쿼츠 손목시계인 Beta 21을 개발했다. 하지만 이 시계는 프로토 타입인 데다 무게가 너무 무거워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Grand Seiko Quartz SBGX087J. ‘쿼츠, 그 이상의 쿼츠’를 목표로 개발된 9F 무브먼트가 사용됐다. 9F 무브먼트는 트윈 펄스 콘트롤 모터와 수퍼 실드 캐빈을 사용하고 스프링 레버 구조를 채택했다.Grand Seiko Quartz SBGX087J. ‘쿼츠, 그 이상의 쿼츠’를 목표로 개발된 9F 무브먼트가 사용됐다. 9F 무브먼트는 트윈 펄스 콘트롤 모터와 수퍼 실드 캐빈을 사용하고 스프링 레버 구조를 채택했다.


2년 후인 1969년 세이코의 Astron 출시는 세계 시계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Astron은 1920년대 개발 초기 기대했던 쿼츠 시계의 정확한 성능을 완벽히 구현한 데다 가볍고 튼튼했으며 대량 생산 체제까지 갖추고 나온 제품이었다. 세이코가 훨씬 이전부터 쿼츠 관련 기술을 완성 단계까지 올려놓은 상태였음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Astron 출시를 시작으로 세이코는 다양한 쿼츠 시계들을 생산해 판매했는데, 이는 기계식 시계를 고집했던 스위스 시계 브랜드들이 절멸(絶滅) 직전까지 몰리게 된 원인이 되었다. 구조가 간단한 쿼츠 시계는 대량 생산이 가능했고, 그 결과 규모의 경제 효과가 커져 기계식 시계에 비해 제조 원가를 크게 낮출 수 있었다. 높은 정확성과 내구도, 거기에 가격 메리트까지 더해지면서 쿼츠 시계는 세계 시계 시장의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팀/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안재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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