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디올과 여성 혐오, 명품과 호갱



어깨가 드러나는 검은 원피스를 입고 새빨간 명품백을 든 무표정한 젊은 여자. 그 뒤로 펼쳐진 뒷골목에 걸린 ‘소주방’, ‘룸비 무료’, ‘파티타운’ 같은 간판들. 명품 브랜드 디올이 청담동 플래그십 매장에서 진행한 ‘레이디 디올 애즈 신 바이’(Lady Dior as Seen by) 전시에 걸린 이 사진은 한국인 사진가 이완 씨가 내놓은 것으로, 제목은 ‘한국 여자’다.

이 한 장의 사진이 최근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사진의 배경과 분위기가 마치 ‘한국 여자’를 ‘성을 팔아 명품 핸드백을 구입하는 여성’으로 비하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디올 측은 “본의 아니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 깊이 사과드린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일부 고객들은 불매 선언까지 하며 분개하고 있다.

전시를 주최한 디올이나 작가의 의도 여부와는 별개로, 이 작품은 하필이면 한국 사회의 민감한 이슈로 떠오른 ‘여혐’(여성혐오) 문제를 건드리고 말았다. 어린 여자가 명품백을 들면 쉽게 ‘된장녀’가 되고 ‘김치녀’가 되는 세상에서, 젊은 여자와 명품백 그리고 유흥가의 조합이 ‘여성혐오’로 연결되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전시회에 걸린 문제작과 작가에 대한 논란보다도, 이를 내 건 디올에 대한 비난이 비교할 수 없이 강도높다는 점이다.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를 이해하고 고려했다면 과연 디올이 이 같은 작품을 전시에 걸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간 글로벌 명품으로부터 받아온 ‘호갱 취급’에 대한 설움이 얽혀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같은 제품을 30% 가량 비싸게 팔면서도 사회 환원에는 소극적이고, 정부가 소비를 활성화한다며 개별 소비세를 깎아주자 오히려 가격을 올린 그간의 명품 업체들의 행태를 곱씹어보면 이 같은 해석 역시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관련기사



디올은 이번 사태에 대한 사과 보도자료에서 “크리스챤 디올은 여성의 진취성을 강조하고 자존감을 북돋우며 여성에 대한 존경과 권위 신장을 위한 철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예술과 문화를 향유하며 여성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지원하는 것이 크리스챤 디올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라고 밝혔다.

실제로 디올은 인종차별 발언으로 문제가 된 수석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를 해고했고, 할리우드의 남녀 배우 임금 격차를 지적한 제니퍼 로렌스를 모델로 기용하는 등 소신 있는 행보를 보여왔다. 참으로 박수받아 마땅한 행동이다. 하지만 왜 유독 한국에서만 ‘아름다운 가치’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디올의 모습을 볼 수가 없는 것일까.

박윤선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