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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라이프>전설이 된 아코디어니스트 심성락·자유분방한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

심성락

"음악다방 돌며 독학으로 아코디언 배웠지"

고상지

"탱고에 꽂혀 예쁘게 생긴 반도네온 시작했죠"

현대음악을 소개하는 ‘라이트 나우 뮤직 2016’ 마라톤 콘서트에 참가하는 아코디어니스트 심성락(왼쪽)과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 말쑥한 정장 차림의 심성락과 자유분방한 트레이닝복을 입은 고상지는 얼핏 스치는 이미지조차 참 다르다.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무대는 어떤 모습일까. /권욱 기자현대음악을 소개하는 ‘라이트 나우 뮤직 2016’ 마라톤 콘서트에 참가하는 아코디어니스트 심성락(왼쪽)과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 말쑥한 정장 차림의 심성락과 자유분방한 트레이닝복을 입은 고상지는 얼핏 스치는 이미지조차 참 다르다.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무대는 어떤 모습일까. /권욱 기자




#누가 뭐라 해도 소년에게는 타고난 음악적 재능이 있었다. 음악을 배워본 적도 없던 초등학생 시절 풍금 청소를 하면서 한 번씩 건드려보던 것이 어느새 선율을 가진 연주가 됐다. 얼추 칠십 년이 지난 지금 스스로 생각해봐도 “어떻게 연주가 된걸까” 신기하기만 하단다. 고등학교 1학년 부산 광복동 악기 상가에서 아코디언을 처음 본 순간에도 “왠지 금방 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실제 악기상 잡일을 봐주며 혼자 몰래몰래 아코디언을 연주해 보던 것이 다들 놀랄 정도의 실력으로 변했고, 당시 신설된 부산 KBS 노래자랑 프로그램의 반주자로까지 추천된다. 고등학생 악사(樂士)의 탄생. 이처럼 타고난 재능이 그를 음악의 길로 이끌었지만, 이후 누구나 인정하는 탁월한 연주가로 인정받게 한 힘은 본인이 ‘집착’이라고까지 말하는 노력에 있었다. “좋은 음악이 있으면 그걸 내가 잘 연주하고 싶은 욕심 같은 게 굉장히 강했지. 부산 시내 음악다방을 돌며 좋은 멜로디가 있으면 귀로 훔치고, 그걸 무조건 연주해보면서 음악을 외우고.... 이렇게 혼자 한 음악이다 보니 누가 가르쳐 달라고 해도 가르쳐 줄 수가 없어.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가르치는 양 나서는 건 내 양심이 허락을 못하지.” 말쑥하게 차려입은 정장만큼이나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엄격한 악사, 심성락(80·본명 심인섭)의 이야기다.


#“꼭 그런 건 아니에요.”

반도네오니스트 겸 작곡가 고상지(33)가 인터뷰 내내 가장 자주 사용한 표현이다. 반도네온이라는 낯설고도 매력적인 악기를 들고, 카이스트를 자퇴해 탱고 음악에 투신한 젊은 여성 음악인이라는 이력까지 겸비한 고상지는 데뷔하자마자 미디어의 총아로 떠올랐다. 그를 향해 쏟아진 무수한 기사는 그가 대중음악가로서의 얼굴을 알리는 데 도움은 줬지만, 이후 고상지는 자신에 씌워진 여러 허상을 걷어내는데 더욱 긴 시간을 할애해야만 했다. 그래서일까. 그와의 대화에서 두드러지는 정서는 과잉 해석에 대한 경계였다. 예컨대 이런 말들. “학교를 관둔 건 음악이 너무 좋아서라기보다 그냥 공부하기가 싫어서였죠. 싫어하는 일은 절대 못 하는 성격이거든요.” 또 이런 말들. “반도네온을 시작한 것도 사실 악기의 매력보다는 그때 제가 탱고 음악에 완전히 꽂혔었거든요. 물론 피아노랑 기타로도 탱고를 연주할 수는 있었지만 신기하고 예쁘게 생긴 악기(반도네온)를 연주하니 주변에서 더 관심을 보이더라구요. ‘아, 이 악기를 잘 배워두면 음악으로 먹고살 수 있겠구나’라는 게 제 솔직한 심정이었어요.” 털털한 옷차림만큼이나 담담하고 자유로운 ‘요즘’ 예술인. 고상지에 대한 인상은 이랬다.

살아온 이력도, 나이도, 드러나는 성격도, 심지어 성별마저 다른 두 사람을 한 자리에서 인터뷰하겠다 마음먹은 것은 30일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열리는 마라톤 콘서트 ‘라잇 나우 뮤직’에 두 사람이 나란히 오른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라잇 나우 뮤직’ 조직위원회 측은 신·구세대 음악인의 어우러짐을 통해 지금 이 순간 흐르는 동시대의 음악을 건져내겠다는 의도로 두 연주가를 섭외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일견 다르게만 보이던 둘에게서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됐다. 우선 두 사람이 각각 한국인에게는 아직 낯설게 느껴지는 주름 악기, 아코디언과 반도네온의 스페셜리스트라는 점. 그리고 둘 모두 동시대 뮤지션들이 곡 표현을 맡기기 위해 앞장서 섭외하는 믿음직한 음악인들이라는 점이다.

◇아코니어니스트와 반도네오니스트=심성락과 고상지, 두 연주가가 다루는 악기는 그들의 이름 앞에 따라 붙는 긴 수식어만큼이나 낯설다. 특별한 악기를 다루는 만큼 악기와의 특별한 인연이 궁금했지만, 오히려 둘 다 ‘우연’을 더 강조했다.

“어릴 적 친구들과 놀다가 사고로 새끼손가락 끝이 잘려나갔거든. 원래는 기타를 연주하고 싶었는데 이 손가락 때문에 잘 안 되는 거야. 근데 아코디언은 당기면 일단 소리가 나잖아. 내가 들었던 좋은 곡이나 연주하고 싶은 멜로디를 제대로 다 표현할 수 있는 악기다 싶었지.” (심성락)

“그저 탱고와 반도네온이 좋아서 연습을 해봤고 어설픈 실력으로 길거리 공연도 하게 됐는데 그걸 보신 어떤 분이 ‘내가 고마츠 료타(일본의 세계적인 반도네오니스트) 팬인데 상지씨 연락처를 주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그분이 정말로 고마츠 료타 선생님께 메일을 보냈고 선생님이 제게 답장을 주셨죠. 그때 제가 ‘제자로 받아주세요’라고 여쭸고 선생님이 흔쾌히 허락하시며 새로운 길이 열린 거죠.” (고상지)

다루기 어려운 악기로 손꼽히는 아코디언과 반도네온에 대해 두 사람의 마음이 그리 애정 가득하지만은 않다는 점에서도 비슷했다.

“만약 우리 아이가 와서 ‘아코디언 하겠다’하면 말릴 거야. 이거 감정을 담아 소리내기가 상당히 어렵거든. 정신과 손이 함께 움직여야지 제대로 된 음악이 나오는데, 그런 면에서는 바이올린이 나은 것 같아. 내가 바이올린을 이렇게 했으면 진짜 대가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웃음)”


고상지 역시 “반도네온의 우울한 음색이 매력적이라고도 하지만 솔직히 나는 연주보다는 음악을 만드는 게 좀 더 좋아서인지 특정 악기의 음색에 미치고 그러지는 않는다”면서도 “정제되지 않은 음악이 나온다는 게 반도네온만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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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인이 선택하는 음악인들=해방 이후 발매된 한국 대중음악계를 수놓은 명반 가운데 아마 심성락의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음반을 찾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그는 패티 김, 이미자, 나훈아, 조용필, 신승훈, 김건모 등 국내 유명 가수 대부분과 작업을 했고 영화 ‘인어공주’, ‘봄날은 간다’, ‘효자동 이발사’의 O.S.T.에도 참여해 지금까지 이름을 알린 명연주자다. 많으면 한 달에 60회, 거의 20년 간 매일 들락거렸던 녹음실은 그의 연주 공력이 쌓인 곳이기도 하다.

“그때는 50명 넘는 사람들이 함께 녹음하며 한 사람 연주가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원 테이크’ 방식이었거든. 안 틀리려고 긴장하고 집중하다 보니 자연히 연주가 늘었지.” 그의 실력은 음악인들의 경계를 넘어 인정받는다. 심성락은 1970년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열린 연회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노래 반주를 하게 된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이 좋아할 만한 음악들을 녹음해 보낸 것을 계기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까지 인연을 맺는다. 심성락을 따라다니던 ‘대통령의 악사’라는 별명은 이때 붙었다.

심성락이 차지하고 있던 믿음직한 연주자의 자리는 지금 고상지가 이어받는 중이다. 김동률, 이적, 정재형, 유희열 등 유명 뮤지션들의 음반에 세션으로 참여하는가 하면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 ‘유희열의 스케치북’등 유명 방송의 밴드 멤버로 활약하고 있다. 고상지는 자신의 음악 활동을 펼치는데도 의욕적인 데, 본인의 이름을 내건 ‘고상지밴드’로 정기 공연을 하는가 하면 지난 2014년에는 자작곡으로 꽉 채운 정규 1집 음반도 냈다. 본인이 일군 성취를 좀 더 자랑할 법도 하지만 고상지는 시종일관 겸손했다. 그는 “연주는 저보다 잘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며 “내가 연주를 해서 좋은 점은 내가 쓴 곡을 연주해줄 연주자를 섭외할 필요가 없다는 것 정도”라며 웃었다.

“특히 ‘불후의 명곡’의 세션으로 활동하면서 옛날 가요들을 많이 연주하게 됐는데, 제가 연주할 파트 대부분에서 심성락 선생님이 먼저 녹음하실 걸 듣게 되잖아요. 제가 선배님이라고 부르기에도 너무 까마득한 선구자 격이시라 감히 평가할 수도 없지만, 그저 ‘아, 선생님의 영향권을 벗어날 수 없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요.”

◇두 사람이 들려줄 추억의 탱고 음악=“상지씨 ‘리베르탱고’ 좋아하잖아. 내가 아코디언으로 첼로 반주를 해주면 딱 좋겠네. 마음 편하게 하자고.”(심성락) “아뇨. 저는 선생님이 하시는 걸 제가 맞추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고상지)

30일 한 무대에 오르는 두 연주자는 각자 자신 있는 5~6곡 연주한 후 합동 무대도 선보일 예정이다. 심성락은 자신을 위한 무대에서 ‘꽃밭에서’, ‘광화문 연가’ 등의 가요와 ‘봄날은 간다’ 등의 영화 삽입곡을 들려주고, 고상지는 정규 1집 앨범에 실린 자작곡 두 곡과 아스트라 피아졸라의 유명 탱고곡 ‘아디오스 노니노’, ‘천사의 죽음(La Muerte del Angel)’ 등을 연주할 계획이다. 문제는 합동 곡. 고상지를 향해 “너무 잘해서 물건이라고 생각했다”고 칭찬한 심성락은 고상지가 돋보이는 곡을 고르고 싶어 했고, 고상지는 또 반대로 ‘까마득한 선배’의 느낌을 배우길 원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일단 합의를 본 합동 곡은 1936년 무용가 최승희가 번안해 불러 인기를 끈 ‘이탈리아 정원(A Garden in Italy)’. 유럽을 중심으로 유행했던 밝고 화려한 콘티넨털 탱고로, “옛날에 카바레에서 이 노래 모르면 춤꾼이 아니었다”는 건 심성락의 부연 설명이다.

방송을 통해 간간이 서로 보긴 했지만 온전히 두 사람만을 위해 마련된 무대에 오르는 것은 2011년 심성락을 위해 열렸던 헌정공연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이후 5년 만이다. “일단 합동 곡은 한 곡 준비하지만 앙코르가 나오면 어떻게 될지 모르죠.” 고상지의 말에서도 오랜만의 무대에 대한 기대감이 느껴졌다.

사진=권욱기자

■He & She

△1936년 일본 교토 △1953년 경남고등학교 중퇴 △2010 제7회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회 특별상 △2011년 제2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표창 <주요 앨범> 1969년 경음악의 왕 △1970년 전자 올갠 무그1,2 △1976년 회상의 전자멜로디·아코디온 멜로디 1·2집 △2005년 아코디언 경음악 △200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2013년 박스앨범 ‘심성락 인생·추억·세월을 연주하다’ <주요 공연> △2011년 헌정 공연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2012년 ‘심성락과 인생 with 두번째 달’ △2015년 함춘호·심성락 콘서트

△1983년 서울 △2001년 카이스트 중퇴 △2010년 에밀리오 발까르세 탱고 오케스트라 학교 졸업 <앨범> △2014년 정규앨범 Maycgre 1.0 발매 △2015년 5월 싱글 ‘따듯하게 안아줄게’ 발매 △2015년 12월 싱글 ‘로드 바이크’ 발매 <주요 공연> △2012년 탱고와 부에노스 아이레스 △2012년 고상지와 탱고와 매미와 전봇대 △2013년 ‘고상지 EL fueve kon gru’ △2014년 고상지 단독 콘서트 ‘Maycgre 1.0’ △2014년 고상지 연말 콘서트 ‘Adios 2014’ △2015년 서울재즈페스티벌 △2015년 7~8월 ‘고상지 소극장 콜라보’ △2016년 1월 고상지 신년음악회

이미 전설이 된 아코디언 연주가 심성락이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의 손에 든 악기를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고 있다. 심성락이 소장한 아코디언은 최근 발생한 화재 사고로 훼손됐다고 한다. 심성락이 7일 서울 마포 뮤지스땅스에서 진행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 분신과도 같은 아코디언을 가지고 오지 못한 이유다 ./권욱 기자이미 전설이 된 아코디언 연주가 심성락이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의 손에 든 악기를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고 있다. 심성락이 소장한 아코디언은 최근 발생한 화재 사고로 훼손됐다고 한다. 심성락이 7일 서울 마포 뮤지스땅스에서 진행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 분신과도 같은 아코디언을 가지고 오지 못한 이유다 ./권욱 기자


김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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