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시각] 일본 조선업의 교훈

이혜진 산업부 차장이혜진 산업부 차장




얼마 전 찾은 조선업의 도시 거제에서 만난 조선소 관계자들은 서운함과 불만을 토로했다. 경제계에서 조선업을 ‘고용 효자’ ‘수출 효자’라고 칭찬해 마지않다가 저유가와 경기 침체로 조선업이 어려움에 처하자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하는 데 대해서다.


조선업은 그동안의 설비 과잉과 업황 악화가 겹치면서 수십조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 숱한 중소 조선사가 사라졌고 은행들은 손실을 입었다. 지금도 막대한 공적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 STX조선에 약 5조원, 성동조선에 2조5,000억원 등이 지원되고 대우조선해양에도 4조원의 자금이 들어갈 예정이다. 그런데도 회생의 신호가 보이지 않아 ‘밑 빠진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이러다 보니 국가적 자원 배분 측면에서 왜곡이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여당 대표가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에서 “구조조정은 없다. 특별법을 만들어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하며 유세를 펼쳤다. 노동 시장 개혁을 주도해오던 여당 대표가 표를 위해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내년 대선까지 정치권에 의한 자원 배분 왜곡 현상이 나타날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어렵다고 조선업을 골칫덩이 불효자 취급해야 할까.


지난 1970년대 일본은 오일쇼크 이후 폭증한 전 세계 유조선 수요를 싹쓸이하며 세계 최고의 조선업 국가로 올라섰다. 조선 업황이 하강 국면에 들어서자 일본은 조선업을 사양 산업으로 여기고 대대적인 축소지향형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조선소를 통폐합하거나 닫아 건조 능력을 줄였다. 특히 신규 인력을 뽑지 않고 연구개발(R&D) 비용을 대폭 삭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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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울 때 인재와 기술이라는 핵심 경쟁력 제고를 위한 투자를 게을리한 후유증은 컸다. 2000년 중반 이후 다시 조선업 활황 국면에서 일본은 결국 한국에 세계 최고 지위를 내주게 된다. 하강 사이클에서 설계인력과 기술인력을 감축한 결과 정작 필요할 때 쓸 인력이 없었던 것이다. 일부 건조 프로젝트에서는 선박 건조기술을 익힌 젊은 기술자가 부족해 현역인 70대 노년 기술자의 지원을 받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최근 일본 조선사들이 자국 선사 발주에 힘입어 컨테이너선을 중심으로 수주 잔액이 크게 늘었다. 그러나 해양 플랜트 등 고부가가치 선박 기술력 면에서 일본의 조선 산업 경쟁력은 한국보다 뒤처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설비 과잉에 대한 구조조정은 필수적이다.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도 물량 감소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핵심 경쟁력인 인력과 기술까지 구조조정 해 버리는 일본의 우(愚)를 우리도 범하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조선은 100% 가까이 수출 산업이다. 여전히 우리의 해외 수출 품목 중 5위 안에 들 뿐 아니라 수입액은 적다. 그만큼 국내에서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높다. 조선업은 한국에 ‘달러 박스’였고 정도는 덜할지라도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난 몇 년간 고부가 해양 플랜트를 건조하며 겪은 시행착오는 앞으로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경쟁국 중국과 일본은 넘볼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이다. 그동안 지불한 비싼 수업료를 뽑아내지도 못한 채 매몰 비용으로 만들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hasim@sedaily.com

강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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