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선택 4.13] 국민의당 지속 가능성 '대선 역할'에 달렸다

자민련은 선거 거치며 소멸

새누리·더민주와 정책 차별화

거센 '대선 회오리' 이겨내야

제3당으로 지속성 유지할 듯



이번 총선을 통해 형성된 ‘신 3당 체제’가 내년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과거 3당 체제의 탄생과 소멸 과정을 보면 이번 3당 체제의 미래도 대략적이나마 점칠 수 있다.

1990년 이후 가장 오랜 시간 동안 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제3당은 지난 1995년 김종필 전 총재가 창당한 자유민주연합이다.


자민련의 전신은 신민주공화당이다. 1990년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으로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새누리당의 전신)이 탄생했다. 그러나 1994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권을 잡은 이듬해 ‘충청의 맹주’ 김종필 총재는 민자당을 뛰쳐나와 자민련을 창당하고 독자 세력화를 시도했다.

자민련은 1996년 제15대 총선 41개 지역구에서 승리해 제3당의 위치를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국회에서는 영·호남에 각각 기반을 둔 1·2당 사이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고 의석 수에 비해 훨씬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자민련은 차기 정권 창출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와 김종필 자민련 후보의 단일화로 ‘DJP연합’을 형성해 공동 여당의 지위까지 올라섰다. 제3당의 역할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자민련은 2001년 새천년민주당과 결별한 데 이어 2004년에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가담한 데 따른 역풍으로 17대 총선에서 의석 수 4개만을 확보하는 참패를 기록했고 김종필 총재는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내리막길을 걷다 2006년 한나라당과의 합당으로 소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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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민의당을 겨냥해 “태어났다 슬그머니 여당에 흡수되는 게 제3당의 운명”이라고 한 말은 이 같은 역사를 빗댄 것으로 해석된다. 캐스팅보트를 쥔 제3당은 국회 내의 영향력도 컸고 정권 창출에도 기여했지만 결국 오래 가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4대 대선 출마를 앞두고 1992년 창당한 통일국민당도 같은 해 14대 총선에서 24개 지역구에서 승리하며 제3당이 된 바 있다.

통일국민당은 대선에서 정주영이라는 독자 후보를 냈다. 그러나 정 전 명예회장은 대선 낙선 후 1993년 의원직을 사퇴하고 탈당했다. 이후 국민당은 세력이 크게 위축돼 박찬종 전 의원이 창당한 신정치개혁당과 1994년 합당되면서 소멸했다.

15대 대선에 출마한 이인제 후보의 국민신당, 2002년 16대 대선 정몽준 후보의 국민통합21, 2007년 17대 대선의 문국현 후보의 창조한국당은 제3당이라기보다는 대선을 위한 정당이었다. 이들 정당의 공통적인 한계는 특정 지역 대선 후보에 대한 절대적 의존이었다.

이 같은 한국의 정당사를 볼 때 국민의당은 의석 수에 비해 큰 영향력을 가질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대선 과정에서 만만치 않은 도전을 요구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당의 지속 가능성 또한 대선에서의 역할에 달렸다는 분석이다.

박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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