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오후6시 투표 마감 직후 시작된 개표 결과는 정치권의 예측을 철저히 빗나갔다. 14일 새벽1시 현재 새누리당이 109곳에서 1위를 기록했으며 더민주 106곳, 국민의당은 26곳에서 선두를 달리는 것으로 집계됐다. 더민주는 텃밭인 호남에서 국민의당에 절대적으로 밀렸지만 서울과 경기·수도권에서 약진함으로써 102석인 현 의석 수를 크게 넘어설 것으로 예상됐다. 새누리당은 비례대표에서 20석 남짓한 의석을 확보했음에도 과반에는 못 미치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역별 개표 과정에서 당초 여론조사 결과에 철저히 어긋나는 이변이 속출했고 초접전 지역도 많아 1위와 2위가 새벽까지 엎치락뒤치락했다.
이번 총선 결과의 가장 큰 특징은 여야 양당구도와 지역 분점 구도가 철저히 깨졌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됐지만 ‘영남은 새누리’ ‘호남은 더민주’라는 공식이 이번에 상당 부분 탈색됐다. 특히 국민의당의 호남 지역 석권은 앞으로 야권 주도권을 놓고 두 야당 간에 경쟁이 치열해질 것임을 예고했다. 새누리당 또한 전통 근거지인 영남에서 비박근혜계 무소속과 야권 후보들의 약진으로 과거 선거에서 나타난 ‘영남 독식’을 더 이상 이어가지 못했다.
이번 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야권의 분열과 새누리당의 공천 내홍에 대한 유권자의 거부감이 선거 결과로 이어진 것도 눈에 띈다. 투표율이 높게 나타난 호남에서는 유권자들이 더민주를 외면한 채 국민의당에 ‘전략적 투표’를 했고 투표율이 저조했던 영남에서는 새누리당 후보에 대한 거부감이 무소속과 야당 후보의 선전(善戰)으로 이어졌다. 새누리와 더민주는 이번 총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민생외면’과 ‘경제파탄’을 심판해달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정작 양대 정당이 철저히 챙기고자 한 ‘기득권’을 유권자들이 표(票)로 심판한 셈이 됐다.
우리는 이번 총선 결과에 나타난 유권자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이번 선거 결과로 형성된 새로운 정치지형은 내년 12월 대통령선거까지 1년8개월 동안 한국 사회 전체를 출구 없는 정치논쟁의 ‘아노미(혼돈상태)’로 빠뜨리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번 선거 결과 유력 대선주자의 상당수가 탈락해 앞으로 여야 각 진영 내에서 정계개편의 후폭풍과 극심한 권력투쟁까지 예고되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사회의 모든 논의가 ‘차기 대권’에 집중되면서 경제·사회 현안이 빨려 들어가는 공동화 현상이 불가피해질 것이다. 결국 19대 대선을 향한 ‘정치의 계절’은 이미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