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권홍우의 군사·무기 이야기] 국군장병에게 고함

국군 장병께.

‘독일국민에게 고함’이라는 강의로 유명한 철학자 피히테의 심정으로 편지를 씁니다. 나폴레옹의 군대에 점령 당한 조국의 현실을 보고 피히테는 수차례 강연에서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절망의 시대에 공장 몇 개 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신이고 꿈이다.’


엊그제 우리 군대의 충성마트(PX)에 외국산 담배의 입점이 허용됐습니다. 창군 이래 처음입니다. 이를 허용한 군 당국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겠지요. 무역보복은 물론이고 소송까지 불사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외국산 거대담배회사의 공세가 있었습니다. 저는 젊은 장병들이 외국산 담배를 피우게 될 현실이 나폴레옹의 군대에 점령 당한 독일과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고 봅니다. 외국산 담배의 연기 속에 우리 사회가 공유해야 할 가치와 정신, 꿈이 허공으로 날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으로도 백해무익입니다. 1950년대말 미국에서 흡연 피해를 보상하라는 소송이 시작된 이후부터 담배회사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사회공헌에 투입해 왔는데요. 외국산 담배회사들은 유독 한국에서만 사회공헌에 인색합니다. 반면 본사에는 막대한 금액을 송금합니다. 배당률이 무려 1,000%를 넘은 적도 있습니다. 한국을 봉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이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더욱이 이번에는 일본 담배회사까지 들어오게 됐습니다. 걸핏하면 망언을 해대는 세력의 기반인 일본 극우단체를 후원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일본계 담배가 한국 군대의 PX에서 팔리게 됐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습니다. 담배는 단순한 기호품이 아닙니다. ‘양담배’와 ‘왜담배’에 익숙해지면 나이가 들고 경제력이 생길 때 더 고가의 외국산 제품을 보다 쉽게 구매하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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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나라 군대에 외국산 담배를 넣는 국가도 많지 않습니다. 담배는 미국의 남북전쟁 이래 전시 보급 우선순위가 앞에 있을 정도로 중요한 물자입니다. 세계 각국은 유사시를 대비해서도 병영에 자국산 담배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미군과 영국군, 일본 자위대도 자국 담배만을 영내에서 취급합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정부조달협정에서도 이를 인정합니다.

외국산 담배의 군내 판매를 막지 못한 일차적인 책임이 국방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중요한 점은 따로 있습니다. 국가가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었을 때, 방어의 책임은 국민에게 돌아갑니다. 1980년대 초반에 나카소네 일본 총리가 TV 방송을 통해 “일본 국민 여러분, 제발 미국산 제품을 구매해 주십시요”라고 호소한 적이 있었습니다. 막대한 대미 무역수지 흑자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무역보복 압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일본 국민들은 총리의 간청에도 자국산 제품을 우선 사용했습니다. 미국도 두 손들고 말았습니다.

개인의 건강은 물론이요, 국민경제에도 도움이 안되는 외국제 담배, 한국 소비자를 호구로 여기는 외국제 담배가 PX에 들어왔다면 안 사고 안 피우면 그만입니다. 국권 상실의 위기에서 민중들의 힘으로 시작한 109년전 국채보상운동도 ‘외국산 담배 안 피우기’부터 시작했습니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 젊은 세대들이 마음 놓고 꿈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한 점 반성합니다. ‘헬 조선’이라는 신조어를 들을 때마다 자책감이 듭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젊은이들의 ‘양담배’나 ‘왜담배’ 선호는 ‘헬 조선’ 현상을 더욱 심화시키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담배를 아예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금연이 어렵다면, 굳이 사야 한다면 국산 담배를 우선 구매하시기를 간곡하게 청합니다. 국내 담배농가와 국가재정에도 도움이 됩니다. 금연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우리 장병들이 보여주시기를 소망합니다. 국가의 중추이며 미래의 희망인 젊은 장병들이 담배의 해악에서 벗어나기 바랍니다./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adaily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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