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만파식적]PX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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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돌진한다/달빛 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피던/화랑 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6·25전쟁 중 국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할 때 만들어졌다는 군가 ‘전우야 잘 자라’의 한 구절이다. 전쟁터의 절박하고 비장한 분위기를 ‘화랑’이라는 담배 연기에 담아 애잔함을 느끼게 하는 노래다. 예전의 군대생활은 담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군에 들어가 처음으로 담배를 배우는 이들도 적지 않았을 정도였다. 고참들이 심하게 얼차려를 시키고 나서 건네는 담배 한 개비야말로 지금의 중장년층에게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법하다.


화랑은 국군 창설을 기념해 1949년 보급된 첫 군용(면세)담배였다. 신라의 화랑도 정신을 배우자는 취지인데 1981년 12월까지 모두 27억갑이 보급돼 장병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당시 화랑 담뱃갑에는 노란색 바탕에 국방부 마크가 새겨졌으며 맛이 너무 독해 이른바 ‘사제담배’를 찾는 이들도 많았다. 군용담배는 이후 은하수·한산도를 거쳐 1989년 백자로 바뀌었고 1990년부터 대중적 담배인 88라이트·디스까지 선보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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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금연 바람이 군에도 불어닥치면서 한때 1인당 15갑까지 살 수 있던 담배가 10갑·5갑으로 줄어들었고 2010년부터는 군용담배 보급이 아예 중단됐다. 담배를 피우려면 일반인과 똑같은 가격으로 PX(국방마트)에서 담배를 구매하도록 한 것이다. 그래도 PX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이 담배라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군이 창군 68년 만에 처음으로 PX에서 외국산 담배 판매를 허용했다는 소식이다. PX에 공급되는 20종의 담배 가운데 미국 필립모리스와 일본 JTI 2종이 포함됐다. 외국사들이 정부를 상대로 잇따라 소송을 제기한 것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다. 국산담배 농가에서는 애국심을 강조하는 군의 특성과 비상 군수물자인 군납담배를 무시한 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국산 담배를 피우며 사명감을 느꼈던 이들로서는 이제 ‘말보로 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이라고 바꿔 불러야 하나 싶어 왠지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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