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산유국인 러시아와 2위 산유국이자 OPEC의 리더인 사우디아라비아 등 전 세계 원유의 절반을 생산하는 18개국은 17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회의를 열어 산유량 동결을 놓고 격론을 벌였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블룸버그와 AFP통신 등이 전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지난 2월 러시아와 사우디, 베네수엘라, 카타르 등 4개국이 합의한 대로 올해 원유 생산량을 1월 수준으로 10월까지 동결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사우디는 이란을 포함해 모든 OPEC 회원국이 합의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1월 서방제재 해제 이후 시장점유율을 되찾기 위해 애쓰고 있는 이란은 회의에 돌연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 산유국들은 합의문 초안을 놓고 5시간여 동안 격론을 벌이다가 실패를 선언했다. 모하메드 빈 살레 알-사다 카타르 에너지장관은 “추가 협의를 위한 시간이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알렉산더 노박 러시아 석유장관은 “사우디의 요구는 비합리적”이라면서 “모두 산유량 동결에 동의할 것으로 생각하고 회의에 참석했는데,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추후 합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고 있지만, 이제는 정부 차원에서 산유량을 제한할 계획이 당분간 없다고 덧붙였다. OPEC 관계자들은 오는 6월 2일 열리는 OPEC 회원국 정례회의에서 이란이 산유량 동결에 합의할 경우 비OPEC 국가와의 협의는 재개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번 합의 실패는 북해산 브렌트유 기준으로 12년 만에 최저치까지 떨어졌다가 지난 2월 사우디 등 4개국의 산유량 동결 합의 이후 30% 폭등한 국제유가가 다시 폭락세로 돌아서게 할 수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지적했다. 실제로 합의 실패 이후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5월물은 전거래일보다 장중 6.7% 떨어져 배럴당 40달러 아래로 추락했고, 북해산 브렌트유도 6.1% 떨어진 40.46달러를 기록 중이다. 제이슨 보르도프 컬럼비아대학 글로벌에너지정책센터장은 “산유량 동결 합의실패는 국제원유시장에서 대량매도를 불러올 것”이라며 “사우디가 합의를 차단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사우디의 석유정책이 얼마나 이란과 지정학적 갈등에 이끌려왔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아비셰크 데쉬판데 나티식스 석유애널리스트는 “오늘 합의 실패로 OPEC의 공급조정능력에 대한 시장의 믿음이 사라질 것”이라며 “이제 국제원유시장의 수급이 균형을 이루는 것은 내년 중순 이후에야 가능할 테고, 투기세력이 득세해 국제유가는 배럴당 30달러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OPEC에 따르면 3월 이란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평균 330만 배럴로 1월 290만 배럴보다 늘었지만, 서방제재 이전인 하루 평균 400만 배럴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다. OPEC은 3월 회원국의 원유생산량은 하루 평균 3천225만 배럴로 작년의 3천185만 배럴에 비해 늘었다. 사우디의 생산량은 이 중 3분의 1가량을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