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아트갤러리]이상용 '운명'

수천년 전 동굴벽화같은 벼루 그림

"세상의 중심은 검정"

어둠 속에서 발굴하는 생의 의미

이상용 ‘운명(Fate)’, 벼루에 부조, 2015년작 /사진제공=LIG아트스페이스이상용 ‘운명(Fate)’, 벼루에 부조, 2015년작 /사진제공=LIG아트스페이스


수천 년 전 동굴 벽화를 마주한 기분이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남자의 몸뚱이, 그 몸짓의 의미는 상형문자처럼 기나긴 시간의 궤적을 뚫고도 고스란히 전달될 듯하다. 팔다리가 앙상한 사내의 세세한 신체 묘사가 생략됐음에도 벌린 입과 가지런한 치아가 유난히 도드라진다. 작가 이상용은 “말하고 싶어도 말을 못하는 심정”이라고 짧게 설명한다. 인류의 근원을 찾아 떠난 고고학 여행에서 발견했을 법한 이 작품의 소재는 ‘벼루’다. 충남 공주 태생의 작가는 고향 근처인 보령의 오석(烏石) 산지 벼루공장에서 재료를 구했다. 가공하려다 그냥 쌓아둔지 반백년 이상 된 벼룻돌을 가져다 손질했더니 검은 돌의 속살이 녹슨 철덩이처럼 적갈색을 띄기도 했다. 풍파를 견뎌냈기에 형성된 다채로운 색감이 작품 곳곳에서 보인다. “검정이 세상의 시작”이라는 작가는 흑연·목탄·먹·숯돌 등 축적된 시간의 결과물인 시커먼 재료를 즐겨 사용한다. 작업은 어둠 속에서 생의 빛을 발굴하는 과정이다. 벼루 시리즈 외에도 연필로 화면 전체를 검게 칠한 다음 테이프를 빽빽하게 붙이고 또 그 위를 검게 칠하기를 수십 차례 반복하면서 그 중심에 정교한 필력의 인물화를 그리넣는 또다른 ‘운명’ 시리즈도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한남동 LIG아트스페이스에서 28일까지 열리는 2인전 ‘와일드 드로잉’에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02)6405-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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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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