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하나만 다쳐도 그 작은 신체의 일부가 이토록 절실히 필요했던가 깨닫게됩니다. ‘몸’이 결코 ‘정신’보다 하위가 아닌, 몸이야말로 우리의 정신, 우리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작은 우주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그 몸의 위대함을 잊고 살죠. 그래서일까요, 몸이 불편한 장애인에 대한 예의도 잊을 때가 많습니다. 그저 똑같이, 그저 상식적인 예의만 갖추기가 그렇게 어려울까요? <오아시스>(이창동감독, 2002년작)는 우리가 얼마나 이기적으로 그들을 소외시키고 무시하는지, 부끄럽고 불편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한겨울에 반팔을 입고 불량스런 모습, 불안정한 시선으로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리는 남자, 종두(설경구). 뺑소니 교통사고를 내서 실형을 살고 막 출소한 남자는 가족들을 찾아가지만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종두는 엉뚱한건지, 순수한건지, 이상한건지, 피해자 가족을 찾아가고 거기서 뇌성마비 중증장애인 공주(문소리)를 만납니다. 공주의 가족은 공주만 남겨둔채 이사를 가버립니다. 하지만, 공주는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국가가 장애인에게 주는 혜택은 꼭 받아야하기 때문이죠.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라디오를 듣는 일 외엔 살아있다고 할만한 그 어떤 의미있는 일도 할수없는 공주는 이 낯선 남자의 등장에 당황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조금씩 서로에게 끌리고 보통 청춘들처럼 연애를 시작합니다. 누가봐도 비호감인 종두와 중증장애인의 연애는 초라하고 불편합니다. 식당에서 돈주고 밥먹는 일도 이 두 사람에게는 쉽지않지만, 무엇보다도 어디를 가나 두사람에게는 적대적인 시선이 쏟아집니다.
그래도 사랑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아름답습니다. 공주는 종두에게 애교많고 사랑스런 여자이고 사회의 낙오자 종두도 공주에겐 듬직한 슈퍼맨입니다. 두 사람은 보통의 연인처럼 서로의 모든 것을 절실히 원하고 사랑합니다. 하지만, 두사람의 사랑은 가족들에게 들키고 종두는 강간범으로 몰려 경찰서로 끌려갑니다. 공주는 강간이 아닌, 사랑이었음을 모두에게 말하고 싶지만, 표현할 방법도 듣고자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억울하고 안타까운 공주의 몸부림이 거세질수록 피해자의 울부짖음으로 오해받고 결국 종두는 구속되고맙니다. 다시 혼자 남은 공주. 그러나 종두는 곧 다시 돌아옵니다. 그리고는 공주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그림자를 없애기 위해 나뭇가지를 잘라줍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 공주와 종두를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으로 힐끗힐끗 쳐다보는 그들은 어쩌면 평범한 우리일겁니다. 종두와 공주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친절하고 예의를 갖추는 보통사람말입니다. 아주 작은 불친절에도 발끈하는 우리로서는 장애인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이 냉정함을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 어느 부분에서 남과 ‘다르고’ 부족합니다. 그 다름과 부족함이 무시와 차별의 이유가 된다면 너무 가혹합니다. 오늘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정책이나 의료서비스 부분은 우리가 어떻게 하기 힘들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기, 무엇이든 같이 해보기…. 선천성 장애인보다 중도장애인이 더 많다는 걸 안다면, 장애인이 겪고 있는 서러움과 어려움에 결코 무관심할 수는 없을겁니다.
KBS1라디오 <생방송 오늘 이상호입니다>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