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채권단 여신분류까지 간섭…"일관성 없는 요구가 구조조정 발목"

[금융당국 구조조정 혼선 행보 도마에]

신규 지원도 ‘고정이하’ 요구…은행 충당금 부담 3배 늘어

명확한 구조조정 기준 없어…지원자금으로 빚 갚는 경우도

“충당금 떠안을 바에야 털고 나가겠다” 채권단 이탈 부추겨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금융당국의 이중적 잣대에 은행권의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대강당에서 열린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설명회에서 참석자들이 자료를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금융당국의 이중적 잣대에 은행권의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대강당에서 열린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설명회에서 참석자들이 자료를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대우조선해양과 같은 부실기업을 ‘정상기업’으로 간주해 지원하라면서 건전성은 확실히 챙기라는 금융당국의 백화점식 요구가 채권은행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은행 건전성 관리가 필수적인 업무라지만 대우조선해양 여신 한도를 최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복구한 채권은행들은 금융당국의 대우조선 충당금 실태조사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실제 대우조선은 수조원의 부실이 드러났지만 금융당국은 ‘대마불사’ 논리를 앞세워 지원을 강행했다. 채권은행은 4조2,000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액수를 지원하면서 잠재적인 충당금 폭탄을 떠안았다. 나이스신용평가도 최근 “은행들은 투기등급인 대우조선 여신에 대해 대부분 정상여신으로 분류하고 있어 추가적인 대규모 부실이 드러나면 대손 비용이 급증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대우조선 여신한도 복원 등 대우조선 지원에 집중하다 최근에는 은행들의 건전성 점검 카드를 다시 들고 나오자 채권단은 당국의 구조조정 방식을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당국의 시선이 기업을 살리라는 건지, 죽이고 은행의 건전성을 챙기라는 건지 혼재돼 당황스럽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이와 관련, “대우조선뿐 아니라 전체 취약 업종에 대해 충당금 실태 조사를 하는 것으로 통계 차원의 조사 이외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채권단은 금융당국이 시기에 따라서 지원은 지원대로 강요해놓고 이후 건전성은 또 온전히 은행 몫으로 떠미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고 있다. 채권은행의 구조조정 담당자는 “구조조정을 위해 지원하라고 해놓고 나중에는 건전성 검사로 옥죄면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당국이 기업 구조조정을 과연 정책 우선순위로 두고 있는지 혼란스럽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당국 수장들이 구조조정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충당금·부실채권비율 등으로 채권단을 옥죄면서 지원 여지를 줄인다는 것이다. 특히 금융당국은 구조조정 기업에 대한 채권단의 여신분류까지 간섭하면서 채권단 지원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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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갔을 때 기존 여신에 대해서는 ‘고정이하’ 분류를 하지만 금융당국은 신규 지원 여신에 대해서도 ‘고정이하’를 요구하고 있다. 은행 관계자들은 신규여신의 경우 대부분 ‘우선변제권’이 달려 있기 때문에 기존 여신과는 성격이 다른데 당국은 이 같은 부분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요주의여신의 경우 충당금 적립비율이 7~19%, 고정이하의 경우 20~49%이기 때문에 고정이하로 분류하게 되면 은행 입장에서는 엄청난 부담을 안게 된다. 실제 금호타이어 지원 당시 우리은행은 신규지원을 ‘요주의여신’으로 인정받기 위해 금융당국을 몇 번이나 찾아가야 했다.

구조조정에 명확한 기준이 없다 보니 채권단 자금이 기업의 운영자금이 아닌 사채권자의 빚을 채우는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2012년 2월 자율협약에 들어간 국내 2위 전선업체 대한전선의 구조조정은 채권단 자금이 회사채 보유자들로 들어가 채권단은 애꿎은 돈만 날린 대표적인 사례다. 대한전선 채권단은 자율협약 8,643억원을 지원했으나 대부분 운영자금이 아닌 회사채를 갚는 데 사용됐다. 금융당국이 채권단의 팔을 비틀어서 사채권자들의 빚을 갚아준 셈이다.

이 같은 전례는 현대상선·한진해운 등 회사채 차입이 많은 기업 구조조정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현대상선 채권단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조건부 자율협약이라는 생소한 형태의 구조조정 방식을 취한 것도 대한전선 구조조정 당시 은행권이 회사채를 갚아주던 공포감 때문”이라며 “금융당국은 일단 만만한 채권단을 압박해 돈줄을 대겠다는 계획이기 때문에 현대상선 상황이 더 악화되고 회사채 연장이 안 되면 대한전선처럼 채권단이 사채권자의 빚을 갚아주는 등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당국의 이 같은 일관성 없는 태도가 채권단의 이탈을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채권단 관계자는 “수익성으로 고민하는 시중은행들은 충당금 부담을 안을 바에 차라리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하고 털고 나가는 것이 나을 정도”라고 말했다.

따라서 채권단은 당국이 원하는 효율적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채권단에 보다 많은 권한을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이헌재 장관 시절 구조조정이 모범사례로 꼽히는데 당시에는 채권단이 워크아웃 기업에 대해서도 여신을 고정이하가 아닌 요주의로 분류한다거나 신규자금 지원도 은행이 부담 없이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외부 상황도 녹록지 않다. ‘여소야대’의 국회 상황에서 위기 업종으로 분류되는 조선·해운·철강 등의 구조조정 추진에 대한 협조를 야권에 어떤 방식으로 구할지도 고민이다. 당국이 채권단의 신뢰도 얻지 못한 상황에서 정치권을 설득해 구조조정을 원활히 진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론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윤홍우·김보리기자 boris@sedaily.com

김보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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