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유가 하락과 수요증가로 정제 마진이 대폭 뛰어오르며 두둑한 실탄을 확보한 SK이노베이션이 적극적인 인수합병(M&A)에 나선다. 정철길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은 20일 “조만간 한 건 한 건 알릴 만한 M&A가 나올 것”이라고 공언했고 이를 통해 오는 2030년 ‘30조 기업’으로 끌어 올리겠다고 밝혔다. 공급과잉과 저성장이 불러온 ‘뉴노멀’ 시대를 맞아 생존하고 크기 위해서는 불황에도 꿈쩍하지 않는 탄탄한 회사를 만들어야 하고 지금이 그 적기라는 게 정 부회장의 판단이다.
정 부회장은 20일 서울 서린동 SK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어려운 상황에서 가장 영향을 덜 받는 회사로 만들어야 한다. 영업이익 3조~5조원대로 키우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고 말했다. 정유와 자원개발, 석유화학, 전기차 배터리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가진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2조원에 가까운 영업이익을 냈다. 기업가치는 15조원에 육박한다.
정 부회장은 기업가치를 2018년까지 30조원으로 끌어 올리고 극심한 불황이 오더라도 꾸준한 이익을 내는 안정적인 사업모델을 만들겠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본격적인 실행에 나섰다.
우선 M&A나 조인트벤처(JV)의 궁극적인 목표를 ‘가치확대’로 삼고 △저렴한 자원 조달 △넓은 시장 △진보된 기술 등 세 가지 조건을 고려한다는 확실한 기준을 정했다. ‘블라인드 슈팅(blind shooting·눈먼 투자)’을 하지는 않되 목표물이 과녁에 들어오면 주저하지 않고 쏘겠다는 과감한 전략으로 미래 에너지·화학사업에서 승부수를 띄운다는 게 정 부회장의 생각이다.
석유개발(E&P) 부문의 경우 새로운 유전 투자처를 발굴 중이다. 최근 저유가가 이어지면서 유전과 관련 기업의 가격도 저렴해진 만큼 외형 성장의 기회로 삼겠다는 뜻이다. 다만 시기는 더 기다려야 한다는 판단이다. 정 부회장은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이 아직은 버틸 만하다고 생각하는지 자산이나 기업 가격을 낮추지 않고 있다”며 “충분히 가격매력이 생길 때 투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화학사업은 중국·고부가제품 중심 투자로 기존 범용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조정한다. SK종합화학은 기술 경쟁력이 있는 글로벌 강소기업 인수를 추진 중이다. 윤활유 사업은 합작·M&A를 통해 완제품을 강화하기로 했다.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 올해 안에 중국 내 배터리 제조공장 설립을 가시화하고 전기차 배터리 핵심소재인 리튬 2차전지 분리막(LiBS) 공장 증설을 검토하기로 했다. LiBS의 경우 현재 세계 2위인 시장 점유율을 1위로 끌어 올리는 것이 목표다. 정 부회장은 “전기차 배터리사업은 마라톤으로 치면 이제 1㎞도 채 못 갔다”며 “다른 업체에 뒤처졌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분명한 의지와 전략을 가지고 사업을 키우겠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회사를 빠르고 유연한 조직으로 바꾸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그는 “정보통신기술(ICT)기업보다 빠르게 움직이도록 조직문화를 혁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에 5% 이상 널뛰기를 하는 유가와 환율 변동을 고려하면 스피드와 유연성을 갖추지 않고 에너지 기업이 살 길은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하던 회의를 매주 하고 주간 단위로 하던 업데이트는 매일하도록 체질을 바꿔 새로운 시대에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