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남자의 가사노동

‘태어난 지 이제 7개월 아랫니 두 개가 났다. 어미를 보며 즐거워하고 점점 더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는다.’ 조선 시대 문신 이문건의 육아일기 ‘양아록(養兒錄)’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손자의 출생과 성장 과정을 자세히 담은 이 책에는 아이의 울음소리부터 앉기, 씹어 먹기, 걸음마 연습까지 기록돼 현대판 ‘딸바보 아빠’들을 머쓱하게 만들 정도다. 실제로 조선 양반가에서도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아이를 키우고 가사노동을 공동으로 수행하는 등 상호 보완적인 성별 분업을 소개하는 기록이 적잖이 남아 있다.


얼마 전에는 TV 육아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 아빠가 어린 아들에게 우유를 먹인 후 능숙하게 트림을 시키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옆에서 함께 보시던 어머님은 젊은 아빠가 저렇게 아이를 잘 키우느냐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아이를 낳기 훨씬 전부터 따로 육아교육을 받을 정도로 갖은 정성을 기울였다고 한다. 평생 재떨이까지 일일이 갖다 바쳐야 했던 어머님 세대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었을 것이다. 요즘 젊은 부부들은 결혼 전부터 아예 가사를 절반씩 공평하게 나누기로 합의(?)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예컨대 설거지와 청소는 남편이 하고 육아는 아내가 책임진다거나 주말 아침에 한해 남편이 육아를 도맡는다는 식이다. 아빠들로서는 금요일은 불금(불타는 금요일)이 아니라 부금(부담스러운 금요일)이 됐다는 푸념마저 나오는 판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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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통계청이 우리나라 남성을 대상으로 가사노동 분담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더니 42.7%가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아직은 마음과 행동이 완벽히 일치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조사에서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이 1999년 33분에서 2014년 47분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1년에 56초씩, 15년간 겨우 14분 늘어나는 데 그친 것이다.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도 33분 줄었지만 남성에 비하면 여전히 4배 이상이다. 스웨덴에서는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주부라는 개념조차 사라진 세상이다. 아내들은 가사노동에 대한 남편들의 마인드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래저래 간 큰 남자들이 버티기 힘든 세상인 듯하다. /정상범 논설위원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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