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린 먼로는 어린 소녀처럼 무릎을 구부리고 다리를 뒤로 차올렸다. 사진 인화지에 남은 모습은 다리 없는 몸통뿐. 이 이미지의 탁월함을 미처 깨닫지 못한 사진작가는 ‘다리가 안 보인다’며 불평을 했다. “메릴린, 좀 더 자신의 성격을 표현해봐요.” 메릴린 먼로는 그러나 점프 동작을 통해 자신의 성격을 이미 보여주고 있었다. ‘소녀의 감정을 품은 미성숙한 어른.’ 이 작가가 남긴 사진에서 무릎을 구부리고 점프 사진을 남긴 여자 모델은 메릴린과 브리지트 바르도, 지나 롤로브리지다 등 대부분 대중에게 ‘소녀 같은 여인 캐릭터’로 인기를 끈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동작과 성격은 정말 연관이 있는 것일까.
책은 ‘라이프’지 표지 사진을 가장 많이 찍은 작가인 인물사진의 거장 필리프 홀스먼의 사진집이다. 오드리 헵번, 그레이스 켈리, 메릴린 먼로, 리처드 닉슨, 살바도르 달리, 로맹 가리, 마르크 샤갈, 윈저공 부부 등 미국의 수많은 정치·기업인과 예술가, 과학자의 인물사진을 찍은 그는 촬영 때 모델에게 점프를 부탁하고 이를 사진으로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책은 단순한 화보집과는 거리가 멀다. 필리프 홀스먼은 독특한 사진을 통해 ‘점프학’이라는 새로운 심리학 분야를 주창한다. “점프하는 사람은 갑작스럽게 분출하는 에너지의 힘으로 중력을 거스르게 되면서, 표정과 얼굴 근육, 팔다리 근육을 제어할 수 없게 된다. 가면이 벗겨지고 진정한 자아가 표면에 떠오른다.” 실제로 이 사진 거장은 점프 사진을 찍으면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발견한다. 누구는 메릴린처럼 치마 속에 다리를 감추었고, 누구는 있는 힘껏 다리를 찼다. 팔 모양은 물론, 촬영 장소 선호 유형도 달랐다. 자기가 드러나는 걸 싫어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특정한 이미지를 드러내는 사람도 있었다. 점프 사진은 일종의 흥미로운 심리 테스트였다.
저자는 점프 동작을 바탕으로 사람의 성향을 구분한다. 점프할 때 팔을 하나만 뻗은 사람은 주로 확고한 야심이 있고, 양팔을 올린 경우엔 좀 더 일반적인 포부, 자신을 개선하고 향상하려는 염원을 드러낸다는 식이다. 예컨대 작가이자 칼럼니스트 맥스러너와 극작가 윌터 커, 시사 해설자인 마이크 윌리스는 만세를 부르는 동작으로 점프 사진을 남겼다. 같은 자세를 보여준 이들은 모두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성격의 인사로 유명하다.
그렇다고 점프 동작이 딱 떨어지게 같은 사람끼리 잘 통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뮤지컬 명작 ‘왕과 나’, ‘오클라호마’, ‘사운드 오브 뮤직’를 함께 만든 콤비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는 점프 동작은 정반대였다. 데칼코마니 같은 사진을 남긴 코미디 듀오 딘 마틴과 제리 루이스는 사진 촬영 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갈라섰다.
저자는 말한다. 중력을 거부하는 도약 속에 인간의 성격과 본래의 모습이 담겨 있다고. 또 그들이 살아가고 싶었던 인생과 살아가게 될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그렇다고 심각할 것은 없다. 점프와 성격의 연관성은 증명된 바 없다. 저자도 “이 책을 바탕으로 점프를 풀이하다가 지인과 절교해도 나를 탓하지 말라”고 말하니 참고하시길. 그저 20세기 역사를 장식한 인물들의 생생한 점프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자, 책장을 덮고 힘껏 뛰어 올라보자. 2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