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살에 오스트리아에서 소록도로 온 수녀는 43년간 짓물러 달라붙은 한센인들의 손, 발가락을 맨손으로 떼어 소독해 줬다. 상처의 피고름이 얼굴에 튀어도 개의치 않았다. ‘소록도 할매’로 알려진 마리안느 스퇴거(82) 수녀의 이야기다.
26일 전남 고흥군 국립소록도병원 복합문화센터 준공식을 맞아 소록도를 다시 찾은 마리안느 수녀는 이미 80이 넘은 진짜 ‘할매’가 돼 있었다.
소록도 관계자들의 끈질긴 설득 끝에 생에 마지막이 될 지 모르는 기자간담회를 수락한 그는 11년 만에 소록도로 다시 돌아온 소감을 묻는 질문에 “아름다운 섬, 사랑하는 섬에 다시 와 정말 기쁘다”고 답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머물렀던 소록도에서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한 그였지만, 예나 지금이나 자신이 한 일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생각 때문에 그간 언론의 인터뷰를 줄곧 사양해 왔었다.
마리안느 수녀는 “소록도에 있는 한센인들을 도와 주고 싶어서 왔고, 하루하루 그런 맘으로 살았다”며 “그래서 (내가 한 행동이)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누구나 마다했던 소록도에서 일 하는 것은 그에게 힘든 일이 아니었다. 사회적 편견으로 아파 하는 한센인들을 보는 것이 마리안느 수녀에겐 큰 고통이었다. 몸이 다 치료된 후에도 사회적 편견으로 가족 품에 돌아가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마리안느 수녀는 “치료를 마친 한센인들을 가족들이 기다려주고 안아 주는 모습을 봤을 때 가장 보람이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대장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는 마리안느 수녀는 오는 6월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간다. 또 다시 자신이 치료했던 소록도 주민들과 이별을 해야 하는 그는 “소록도에서 있으면서 한센인들과 친구처럼 지냈다. 그들도 날 좋은 친구로 기억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소록도에서 지낸 세월이 행복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마리안느 수녀는 이렇게 답했다. “행복했다. (두손으로 원을 그리며)하늘만큼.”
/고흥=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