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백상 탄생 100주년 세미나> "대학에 '장기영學' 만들어 젊은이들 롤모델로 삼아야"

부총리 시절 경제규제 혁파

금리·환율 시장결정 이끌어내

헬기로 아이스크림 공수

여름학교 전달 등 사랑 실천도

28일 ‘백상 장기영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세미나’의 주제 발표 후 곧바로 이어진 토론에서 참석자들은 백상의 남다른 면모를 ‘시대를 앞서 간 통찰’과 ‘실천력’에서 찾았다.

냉전이 자유를 짓누르던 시대에 문화·스포츠 등 소프트파워의 힘에 주목했고 금리 자유화 등 규제 혁파와 관련해서도 업무 장악력을 바탕으로 시장에 힘을 실어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특히 정치·경제·체육·언론 등 전분야에 걸쳐 큰 족적을 남긴 백상의 삶을 통해 실천이 부족한 우리 사회가 자성해야 한다는 지적은 청중의 공감을 샀다. 같은 맥락에서 대학에 ‘장기영학(學)’을 만들어 젊은이의 롤 모델로 삼을 필요성도 제기됐다. 이번 토론은 권홍우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의 사회로 심상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원장, 정동구 태평양·아시아협회 회장(전 한국체육대 총장), 정대철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국민의당 고문)가 참석했다. 다음은 주요 발언.

△권홍우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주제 발표 때 담지 못한 얘기가 많을 것 같다. 언론 쪽부터 짚어보자.

△심상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소프트 파워가 현대 국가에서 가장 핵심적인 경쟁력으로 평가되고 있다. 백상이 활동했던 1960년대와 1970년대는 하드 파워 시대였다. 하지만 백상은 보는 눈이 달랐다. 일찌감치 문화와 자본을 결합한 소프트 파워를 생각했다. 지금 이 시점에도 유효한 통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권 위원=민병도 한국은행 총재가 조선은행(한국은행 전신)에 입행할 때 일본인 간부들이 ‘조선은행에는 장기영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대단한 인물이었다. 1965년에는 금리 현실화를 이뤄냈다. 45년 만에 푼 것인데 그 결과 일 년 만에 저축이 두 배로 늘어났다. 한국 경제의 고성장을 이끈 주역이라는 평가가 아깝지 않은데.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원장=백상은 금리와 환율이 시장에서 결정돼야 한다고 했다. 정부가 규제를 만들고 기업들과 수입업자들이 규제 대상이 되는데 여기에는 항상 기득권과의 유착이 있었다. 백상은 이권을 없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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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은 지금보다 더 어려운 규제를 깼다. 당시 경제관료들은 모든 부처의 경제 관련 규제 통제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완화한다는 것은 관료 입장에서 기득권을 버리는 것이다. 그게 쉬웠겠는가. 박정희 대통령이 백상을 부총리로 임명할 때 시장 자유화 조치를 하겠다고 했다. 그때 백상이 박 대통령에게 경제부처 장차관과 관련된 임명 제청권을 달라고 했다. 그 이후 3년 반 동안 경제기획원(EPB) 장관으로 있으면서 환율정책·금리정책에 소극적인 사람은 다 바꿨다.

△권 위원=한국의 두뇌로 불리는 KDI를 설립할 때 초대 원장으로 김만제 서강대 원장을 임명했다. ‘너무 소장파 아니냐’는 지적이 있어 윗선을 다시 물색하다 마지막에 박 대통령이 “김 교수가 서울경제신문에 칼럼 많이 쓰는 교수 아니냐”며 밀어줬다 한다. 서울경제신문의 위상이 대단했다는 증거다. 당시 신문이 4면 체제였는데 종합지와 경제지를 통틀어 체육면을 만들던 유일한 신문이 서울경제였다.

△정동구 태평양·아시아협회 회장=백상이 스포츠 시대의 도래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은 8명이 맡았는데 가장 오래 한 이가 바로 백상이다. 남북이 첨예한 대립을 하던 때라 스포츠 외교도 어려웠다. 그 와중에 국제무대에서 우리를 ‘코리아(Korea)’로, 북한을 ‘노스 코리아(North Korea)’로 정한 이가 장 위원이다. 국제 거물급 인사와 교류를 통해 분단국가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권 위원=백상은 소통에 강했다. 요즘 정치를 보면 이런 점이 부족하다.

△정대철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국민의당 고문)=한국 정치 현실은 백상의 메시지와 반대로 가고 있다. 백상은 인간미 있는 정치가였다. 언론을 통해 ‘10만 어린이 부모 찾아주기 행사 등을 진행했다. 매년 남이섬에서 ‘소년 여름학교’를 열었는데 더운 여름날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헬기로 아이스크림을 공수해 나눠주던 사람이다. 정치도 결국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런 백상의 정신을 잘 받들어야 한다.

△권 위원=독자들이 이런 백상의 전인적 면모를 자주 접하게 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심 교수=지난 2001년 현대그룹 정주영 창업주가 작고했을 때 서울대에서 ‘정주영학(學)’을 만들겠다는 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잠깐 반짝하고는 없는 일이 돼버렸다. 삼성그룹도 내부적으로는 호암자전(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자서전)에 대한 교육을 받지만 ‘이병철학’ 정도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우리는 소중한 역사에 대해 정제된 콘텐츠가 부족하다. 그런 맥락에서 ‘장기영 학’을 만들 필요도 있다. 백상이 추구했던 삶을 널리 보여주면 좋지 않겠나. /정리=이상훈·구경우기자 shlee@sedaily.com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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