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계의 운명이 그야말로 풍전등화입니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양대 국적 해운사가 모두 자율협약을 위해 경영권을 내놓은 상태인데요. 정부와 채권단에서는 법정관리 얘기가 나옵니다.
그간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이유로 해운업은 국책은행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왔는데,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모양입니다. 보도국 정훈규 기자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앵커]
Q. 정기자, 지난주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신청 결정 이후 해운업 구조조정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데요. 법정관리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정부와 채권단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기자]
네, 정부와 채권단이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에 일제히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데요. 산업은행은 두 회사의 법정관리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이를 두고 한진해운 경영진에게 경고를 보낸 것이라는 시각이 많은데요. 산업은행은 이번주 초 구체성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신청서를 돌려보냈습니다. 오너 사재 출연 등 희생 없이 도움을 요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부가 보내는 메세지도 다르지 않습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해운업 구조조정의 핵심인 용선료 협상 시한을 다음달 중순까지로 못박았습니다. 그때까지 협상이 안되면 법정관리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즉, 정부와 채권단이 정상화 지원의 전제조건을 하루빨리 충족하라고 두 회사를 압박하고 있는 셈입니다.
[앵커]
Q. 추가지원을 쉽게 해줄 수 없다는 얘긴데, 그렇다면 두 회사가 법정관리를 피하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합니까?
[기자]
네, 추가 지원의 핵심 전제 조건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용선료 인하와 은행채무를 제외한 채권 채무조정인데요.
용선료는 배를 빌려서 사용하는 일종의 렌탈비용인데, 채권단은 선주들을 설득해 이 비용을 대폭 낮추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업황이 좋을 때 장기계약을 맺는 바람에 현재 시세보다 최대 5배나 많은 용선료를 지불하고 있습니다.
반면 운임은 지난 6년새 1/8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해운사가 배를 사용해 벌 수 있는 돈은 줄고 있는데, 빌려 쓰는 비용은 턱없이 높으니 수익성에 문제가 생긴겁니다.
부채비율로 본 재무상황은 한진해운이 현대상선보다는 나은 편인데요.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이 지난해 말 1500%가 넘고, 한진해운은 800% 수준입니다.
그런데 한진해운도 채권단이 선결과제로 내건 채무조정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한진해운은 배를 담보로 빌린 선박금융이 부채의 절반 이상인데, 이 부분은 아예 채무조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앵커]
Q. 지금까지 법정관리 얘기가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경영진에게 보내는 경고 메세지였다면, 실제 현실화 가능성은 있는 겁니까?
[기자]
네, 단순한 경고메세지로만 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산업은행은 정부가 구조조정을 원활히 하기 위해 추진하는 국책은행의 자본확충 규모는 조선업 구조조정에 달려 있다고 밝혔는데요.
다시 말해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두 해운사는 모두 법정관리에 들어가더라도 현재 체력에서 손실흡수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설명입니다. 또 법정관리 가능성을 높게 보는 쪽에서는 조선업과 해운업의 특성 차이를 들기도 하는데요.
조선사의 경우 법정관리에 들어가 발주가 취소되면 은행들이 담보로 잡고 있는 선박은 고철 값이 됩니다. 그래서 자율협약으로 돈을 계속 대면서 선박이 건조될 때까지 고통을 감내하고, 어느 정도 회수를 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는데요.
하지만 해운사의 경우 업황이 급격히 반등하지 않는 이상 길게 끌고 가봐야 투입되는 돈만 늘어나고 더 나아질게 없습니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생존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용선료나 채권 협상이 뜻대로 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채권단이 손실흡수가 가능하고 판단한 이상 용선료를 포함한 채무 재조정을 공식적으로 받을 수 있는 법정관리가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는 겁니다.
[앵커]
Q. 일각에서 경영정상화 첫 걸음인 용선료 인하 협상이 실패해 결국 법정관리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법원도 준비에 들어갔다죠?
[기자]
네, 법원은 구조조정 수술대에 오른 양대 국적 해운사의 법정관리를 대비해 본격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관할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법인회생 신청을 가정해 회생 감독을 맡을 주심 판사와 재판장을 잠정 내정했습니다. 재판부는 팬오션 등 그간 파산부에서 경영을 정상화하고 시장에 성공적으로 복귀시킨 해운사 사례들을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를 가정한 ‘예습’인 셈입니다. 아직 법정관리는 가능성이 있을 뿐이지만, 두 해운사의 자산을 합치면 10조원이 넘는 거대한 규모인 만큼 법원도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