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끝난 TV 시리즈 ‘응답하라’의 열풍으로 과거에 대한 향수가 우리 사회에 물밀 듯이 밀려왔습니다. 88 서울올림픽 즈음의 이야기는 그 시절 청소년기를 보낸 중장년의 감성을 자극해 심지어 기업들까지 복고 마케팅에 나서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문득 언제일지 모를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면서 갑자기 내 유년 시절 속에는 어떤 말(馬)이 처음 등장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한참 생각하다 TV 드라마 ‘말괄량이 삐삐’에 등장했던 커다란 말의 이미지가 스쳐 지나갔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분명 너무 재미있어서 브라운관에 넋을 빼앗기다시피 했던 삐삐 이야기, 오늘은 그 속에서 만났던 추억의 말을 소환해봅니다.
원제 ‘삐삐 롱스타킹(Pippi Longstocking)’은 스웨덴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쓴 아동 소설입니다. 1945년부터 2000년까지 총 12권의 책이 출판됐으므로 작가는 55년 동안이나 이야기를 쓴 셈입니다. 전 세계 언어로 번역된 삐삐 이야기는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으며 TV 드라마와 영화·만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77년부터 TV로 소개됐습니다.
해적 선장인 아빠를 닮아 어른이나 자동차도 번쩍번쩍 들어 올리는 괴력의 소유자 삐삐는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한 빨간 머리 소녀입니다. 엄마는 하늘나라로 떠났고 아빠는 바다에 일 나가신(?) 덕분에 뒤죽박죽 별장에서 원숭이 ‘닐슨(nilsson)’ 그리고 ‘릴라 구벤(lilla gubben·작은 아저씨)’ 또는 ‘알폰소’라는 이름의 말 이렇게 셋이 살고 있습니다.
작은 아저씨라는 스웨덴 이름과 달리 알폰소는 실상 작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몸집이 커서 삐삐와 이웃 친구 토니, 아니카까지 셋을 한 번에 태우기도 했습니다. 하얀 몸에 점이 있는 알폰소는 승용마 품종인 아팔루사(Appaloosa)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팔루사의 귀여운 점무늬는 어린이들에게 바둑이 같은 친근감을 줍니다. 그래서인지 삐삐 친구 알폰소는 지금까지도 캐릭터 상품으로 사랑받고 있답니다.
삐삐는 금화가 가득 담긴 가방을 갖고 있는데 이것을 훔치려는 도둑들을 혼내주며 신나는 모험을 하게 됩니다. 알폰소도 아이들을 태우고 다니며 늘 함께 했습니다. 든든한 아빠처럼. 몸이 약한 어린 딸을 위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작가는 힘세고 자유로운 소녀 삐삐에게 멋진 말 친구까지 만들어줬던 것입니다.
당신의 ‘응답하라, 추억의 말’에서는 어떤 말이 떠오르시나요. 혹시 저처럼 말괄량이 삐삐의 친구 알폰소가 보고 싶다면 그와 닮은 렛츠런파크 서울의 아팔루사, ‘켈로스’ 양을 만나러 오세요.
/김정희(말박물관 학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