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실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재원확충과 관련, 한국은행에 대한 압박 수위를 크게 높였다. 경제부총리는 물론 금융위원장까지 나서 “한국판 양적완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한은이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은 재정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강변하지만 시급성 측면에서 한은의 발권력 동원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 차원에서 한은이 당연히 해야 할 역할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한은을 포함해 국책은행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이달 안으로는 산은과 수출입은행의 자본확충 규모와 방법·시기 등을 확정하고 실행에 옮긴다는 계획이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일 한 방송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구조조정 재원 마련과 관련해 “가능한 재정과 통화정책 수단의 조합을 생각하고 있다”면서 “딱 하나의 방법을 쓰기보다는 ‘폴리시믹스(Policy mix·정책 조합)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 부총리는 특히 “어느 한 방향으로만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어떤 정책 조합이 효율적인지 따져봐서 적합한 조치를 찾겠다”고 강조했다. 한국판 양적완화와 관련해서는 “구조조정 재원 마련에서 유력한 아이디어”라면서 “정책 조합에 이런 내용이 들어간다”고 했다. 사실상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해 구조조정 실탄을 마련하겠다는 선언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한은을 압박했다. 그는 “중앙은행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며 한은이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에도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언론사 부장 간담회에서 “산은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히기에 앞서 “기업 구조조정은 현재 우리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라고 말했다. 우리 경제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한은 역시 통화 당국이기에 앞서 국가 경제를 이끌어가는 정부라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실제로 구조조정은 시급을 다툴 만큼 절박하다. 재정보다는 한은의 발권력 동원이 속도 면에서 유리하다.
금융 당국이 산은의 자본확충과 관련해 한은에 요구하는 부분은 두 갈래로 나뉜다. 당장 산은이 올해 발행할 1조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코코본드) 중 일정 부분을 발행 단계에서 매입해달라는 것이다. 한은은 금융 시장 안정 및 통화량 조절 차원에서 공개시장조작을 통해 시중의 채권을 매입하고 있다. 그러나 발행 단계에서 매입하거나 코코본드와 같이 후순위채 성격의 채권을 매입한 적은 없다. 현행 법 체계하에서 가능하기는 하지만 시행에는 금통위원들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근본 대책이 되지는 못한다. 신종자본증권은 자본으로 인정되지만 확충에 비용이 들고 강화된 국제 기준에 따라 매년 자본인정비율이 일정 부분 삭감된다. 따라서 우선 급한 불을 끈 후 향후 산은법이 개정되면 재정과 더불어 한은도 발권력을 동원해 보통주 형식의 자본 확충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당국의 입장이다. /조민규기자 세종=구경우기자 cmk25@sedaily.com